반응형 인문·사회·역사42 『예의 바른 나쁜 인간』, 옳은 일을 했다고 보상받는 건 아니었습니다 폭스바겐이 배기가스 조작으로 10년 넘게 소비자를 속였다는 사실이 드러났을 때, 회사는 그걸 "당혹스러운 일"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사람 관계에서 사소한 실수를 저질렀을 때나 쓸 법한 말이죠. 이든 콜린즈워스의 『예의 바른 나쁜 인간』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합니다. 출판사 CEO로 일하다 도덕이라는 주제 하나를 붙들고 1년 동안 살인범, 은행가, 내부 고발자, 경호 전문가, 홀로코스트 생존자까지 만나고 다닌 기록입니다. 저자는 명확한 결론을 내리는 대신 "요즘 세상에서 옳고 그름의 기준이 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끝까지 붙들고 있습니다.탐욕이 어떤 덕목보다 힘이 세다저자는 이자율 조작 스캔들에 연루됐던 은행가를 인터뷰합니다. 은행가는 부하직원들에게 옳은 가치관을 가르쳤다며 자신에게는 책임이 .. 2026. 9. 30. 『이탈리아 상인의 위대한 도전』, 사업을 시작할 때 장부에 '모험'을 적어 넣던 사람들 요즘 스타트업 창업자들 사이에서 "모험을 걸었다"는 말을 자주 씁니다. 저도 예전에 이 표현을 들을 때마다 그냥 비유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남종국 교수의 『이탈리아 상인의 위대한 도전』을 읽으면서 알게 됐습니다. 이게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천 년 전 상인들이 회계장부에 적어 넣던 계정 이름이었습니다. 중세 이탈리아 상인들은 새 사업을 시작할 때마다 장부에 '벤투라(ventura)' 계정을 열었습니다. 모험, 혹은 행운이라는 뜻입니다. 사업 자체가 늘 벤투라였던 겁니다.이 책은 11세기부터 15세기까지 베네치아, 제노바, 피렌체, 시에나의 상인들이 어떻게 지중해와 유럽을 오가며 오늘날 자본주의의 기틀이 될 상업 기술을 만들어냈는지를 다룹니다. 화려한 성공담이 아니라 정치권력과의 유착과 파산, 돈과 신앙.. 2026. 9. 29. 헷갈리면 무죄입니다 - 재심 변호사 박준영이 본 사법 정의 재심을 청구한 사람 가운데 실제로 누명을 벗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대한변호사협회 자료를 보면 2011년부터 2016년 상반기까지 재심 청구자 8,700여 명 중 2,095명이 무죄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숫자에는 헌법재판소가 위헌으로 결정한 간통죄, 혼인빙자간음죄 사건까지 섞여 있습니다. 살인 같은 강력 사건에서 국가기관의 개입 없이 재심 무죄를 받은 사례는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박준영 변호사의 『우리들의 변호사』는 바로 그 손에 꼽히는 사례들을 변호했던 기록입니다. 수원 노숙 소녀 살인 사건과 무기수 김신혜 사건,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 사건,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 기사 살인 사건이요. 박 변호사는 완도의 작은 섬 노화도에서 태어나 국선 변호사로 생계를 이었습니다. 어떻게 재심 전문 변호사.. 2026. 9. 28.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 부검대 앞에 서면 삶이 더 선명해집니다 제목만 보면 섬뜩합니다.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서울대학교 법의학자 유성호 교수님도 이 반응을 예상했다고 책 첫머리에 적어두셨더군요. 그런데 막상 읽어보면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매주 월요일 부검실로 출근하는 사람이 정작 하고 싶었던 말은 죽음이 아니라 삶이었습니다. 저도 이 책을 읽으면서 가족의 마지막 순간을, 그리고 언젠가 저에게도 올 그 순간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떠올려봤습니다.법의학자의 가방 속, 압축된 한 사람의 생저자는 부검을 맡을 때마다 사망자의 기록을 가방에 넣어 다닌다고 합니다. 경찰 수사 기록, 가족의 진술, 병원 진료 차트 같은 것들이죠. 이 얇은 기록이 실제로는 한 사람의 인생 전체와 맞먹는 무게로 다가온다고 말합니다.오늘도 지금 내 가방 안에는 두 사람의 죽음 기록이 들.. 2026. 9. 26. '착한 남자'인 나도 몰랐던 것 — 『맨박스』가 건네는 질문 "남자답게 좀 굴어." 이 말, 살면서 한 번쯤 들어보거나 써본 적 있을 겁니다. 저도 어릴 때 넘어져 울면 이 말을 들었고 커서는 후배나 조카에게 비슷한 말을 쓴 적이 있습니다. 반가정폭력 운동가 토니 포터는 이 말의 뿌리를 '맨박스'라고 부르고 거기 갇힌 남자들의 이야기를 책 한 권에 풀어놓습니다.『맨박스: 남자다움에 갇힌 남자들』이 특이한 건, 저자가 '나쁜 남자'가 아니라 자신을 포함한 '착한 남자'들에게 말을 건다는 점입니다.맨박스, 이름 붙여진 감옥'맨박스'는 남자아이가 자라면서 은연중에 배우는 규칙들의 총합입니다. 울면 안 된다, 도움을 청하면 안 된다, 여자보다 약해 보이면 안 된다 같은 것들이요. 누구도 대놓고 가르치지 않지만 다들 자연스럽게 따라 합니다.사회적으로 강요된 남성성 규범인 .. 2026. 9. 24. 『무례한 시대를 품위 있게 건너는 법』, 지하철에서 가슴을 맞고도 아무 말 못 하는 이유 출근길 지하철에서 문이 열리자마자 뒤에서 어깨를 세게 밀고 나가는 사람을 만난 적, 다들 한 번쯤 있으실 겁니다. 그 순간엔 화가 나다가도 "요즘 다들 그렇지 뭐" 하고 넘어가곤 합니다. 독일 저널리스트 악셀 하케의 『무례한 시대를 품위 있게 건너는 법』(쌤앤파커스)을 읽으면서 저는 그 "다들 그렇지 뭐"라는 한마디가 얼마나 많은 걸 덮어버리는지 생각했습니다."먼저 내리면 타라고!" — 우리가 매일 지나치는 것이 책의 한국어판에는 변호사 김예원 씨가 쓴 발문이 실려 있는데, 거기 나온 장면 하나가 오래 남았습니다. 출근길 지하철 플랫폼에서 벌어진 일입니다.이건 명백히 폭행이다. 주변을 살피니 CCTV가 보인다. 빨리 증거를 확보하면 형사 고소도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지하철 안은 고요했고 내 앞에 섰던 .. 2026. 9. 23. 이전 1 2 3 4 5 6 7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