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스타트업 창업자들 사이에서 "모험을 걸었다"는 말을 자주 씁니다. 저도 예전에 이 표현을 들을 때마다 그냥 비유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남종국 교수의 『이탈리아 상인의 위대한 도전』을 읽으면서 알게 됐습니다. 이게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천 년 전 상인들이 회계장부에 적어 넣던 계정 이름이었습니다. 중세 이탈리아 상인들은 새 사업을 시작할 때마다 장부에 '벤투라(ventura)' 계정을 열었습니다. 모험, 혹은 행운이라는 뜻입니다. 사업 자체가 늘 벤투라였던 겁니다.
이 책은 11세기부터 15세기까지 베네치아, 제노바, 피렌체, 시에나의 상인들이 어떻게 지중해와 유럽을 오가며 오늘날 자본주의의 기틀이 될 상업 기술을 만들어냈는지를 다룹니다. 화려한 성공담이 아니라 정치권력과의 유착과 파산, 돈과 신앙 사이에서 흔들렸던 상인들의 구체적인 얼굴을 보여주는 책입니다.

전쟁 지원의 대가로 얻은 특혜, 그리고 그 청구서
1081년, 남부 이탈리아의 노르만족이 비잔티움제국을 침략하자 황제는 베네치아에 함대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베네치아는 응했고 그 대가로 콘스탄티노플 시장에서 관세를 거의 면제받는 파격적인 특혜를 얻어냈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습니다.
“비잔티움의 부富가 거의 모두 이탈리아인들의 수중에 들어갔다. 더욱 나쁜 것은 그들의 거만함이다.”
12세기 후반 비잔티움 연대기 작가 키나모스가 남긴 말입니다. 한 번 내준 특혜는 되돌리기 어려웠습니다. 비잔티움은 이후로도 위기 때마다 베네치아와 제노바에 손을 벌려야 했고 그때마다 상업 특혜는 더 늘어났습니다. 제국의 경제는 조금씩 이탈리아 상인들의 손으로 넘어갔습니다. 지금 봐도 낯설지 않은 장면입니다. 급한 불을 끄려고 내준 조건이 나중에는 되돌릴 수 없는 구조가 되어버리는 일, 회사에서도 나라에서도 심심찮게 벌어지니까요.
귀족이 장사를 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
저자는 이탈리아 상업도시가 유독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로 한 가지 구조적 특수성을 짚습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귀족과 성직자에게 상업 활동이 금지되어 있었지만 이탈리아 도시국가에서는 귀족이 직접 장사를 했다는 겁니다.
지배계급인 귀족의 적극적인 상업 활동이 중세 이탈리아 상업도시의 성공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남부와 북부 이탈리아의 차이에서도 잘 드러난다.
상업에 소극적이었던 남부 이탈리아는 북부의 성장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지배층의 이해관계와 상인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도시는 국가 차원에서 상업을 밀어줄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은 곳은 그러지 못했고요. 결국 누가 돈을 버는 일을 '체면 상하는 일'로 여기지 않았느냐가 도시 하나의 운명을 갈랐다는 이야기입니다.
교회는 상인을 어떻게 봤을까
중세 교회의 공식적인 경제 윤리는 상인에게 결코 우호적이지 않았습니다.
“상인은 신을 결코 기쁘게 할 수 없거나 거의 그렇게 하기가 힘들다.”
12~13세기 교회가 공식적으로 내세운 말입니다. 그런데도 상인들은 회계장부 맨 앞에 '신과 이윤의 이름으로'라는 문구를 적어 넣었습니다. 돈을 벌겠다는 마음과 구원받고 싶다는 마음이 한 사람 안에 나란히 있었던 겁니다. 이 모순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 마지막 장에 나옵니다. 프라토 상인 프란체스코 디 마르코 다티니입니다.
선술집 아들에서 국제 거상으로, 그리고 돈이냐 구원이냐
다티니는 프라토의 가난한 선술집 주인 아들로 태어나 15세에 아비뇽으로 떠나 홀로 사업 기반을 닦았습니다. 젊은 시절 그에게 돈과 구원은 전혀 다른 문제였습니다.
아비뇽 시절 다티니에게 돈과 구원의 문제는 어느 정도 분리되어 있었다. 다시 말해, 돈과 이윤을 금기시하는 전통적이고 기독교적인 윤리의식이 다티니가 돈을 버는 데 심각한 장애 요소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 그가 나이가 들면서 태도를 완전히 바꿉니다. 여섯 차례나 흑사병을 겪고 죽음을 가까이서 느꼈습니다. 그리고 평생 곁을 지킨 벗 라포 마체이의 끈질긴 충고를 받아들여 전 재산에 가까운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남기기로 결심합니다.
결국 상인들은 중세 말에도 여전히 돈과 영생을 모두 얻지 못한 채 돈과 지옥 사이에서 치열한 투쟁을 계속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티니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열심히 돈을 벌었으면서도 그 돈에 완전히 편해지지 못하는 마음이 지금 우리한테도 별로 낯설지 않다고요. 성공한 뒤에도 '이렇게 벌어도 되는 건가' 싶은 순간이 있잖아요. 다티니는 그 답을 자기 재산을 되돌려주는 것에서 찾았습니다.
정치와 손잡은 은행, 그리고 그 끝
14세기 초 피렌체의 바르디와 페루치 상사는 유럽 최대의 은행 가문으로 성장했습니다. 이들의 성공은 잉글랜드 왕실, 남부 이탈리아 앙주 가문, 교황청 같은 유럽 최고 권력과의 결탁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유착이 몰락의 씨앗이었습니다.
페루치 상사(1343)와 바르디 상사(1346)는 어리석게도 지나치게 많은 돈을 백년전쟁을 준비하는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 3세에게 빌려 줬다가 받지 못하는 바람에 파산했다.
이미 대부의 대가로 양모무역에서 막대한 이익을 챙기고 있었는데도 굳이 파산 위험까지 감수하며 왕에게 계속 돈을 빌려준 겁니다. 큰손 고객 하나에게 너무 깊이 물려버린 결과가 어떤지, 700년 전 피렌체 은행가들의 이야기가 지금 봐도 남 얘기 같지 않았습니다.
이 책은 이런 분들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 창업이나 투자에서 '리스크를 진다'는 말의 무게를 새삼 느끼고 싶은 분
- 정치와 사업이 얽힐 때 생기는 위험을 역사적 사례로 보고 싶은 분
- 돈을 버는 일과 마음이 편해지는 일이 왜 자꾸 어긋나는지 궁금한 분
- 중세사를 딱딱한 연표가 아니라 사람 이야기로 읽고 싶은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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