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이 배기가스 조작으로 10년 넘게 소비자를 속였다는 사실이 드러났을 때, 회사는 그걸 "당혹스러운 일"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사람 관계에서 사소한 실수를 저질렀을 때나 쓸 법한 말이죠. 이든 콜린즈워스의 『예의 바른 나쁜 인간』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합니다. 출판사 CEO로 일하다 도덕이라는 주제 하나를 붙들고 1년 동안 살인범, 은행가, 내부 고발자, 경호 전문가, 홀로코스트 생존자까지 만나고 다닌 기록입니다. 저자는 명확한 결론을 내리는 대신 "요즘 세상에서 옳고 그름의 기준이 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끝까지 붙들고 있습니다.

탐욕이 어떤 덕목보다 힘이 세다
저자는 이자율 조작 스캔들에 연루됐던 은행가를 인터뷰합니다. 은행가는 부하직원들에게 옳은 가치관을 가르쳤다며 자신에게는 책임이 없다고 말합니다. 저자는 이 상황을 지켜보며 도덕과 윤리를 구분해서 생각해야 한다고 짚습니다.
한마디로 도덕은 수용하는 가치관이고, 윤리는 집단의 책임 있는 지도자들이 무엇을 용인하고 무엇을 용인하면 안 되는지 판단할 때 기준으로 삼는 가치관이다.
회사 책임자 개인이 아니라 회사에 벌금을 매기면 위법행위는 재무 문제로 바뀌어버립니다. 벌금만 내면 이미 속죄했다고 여기는 셈이죠. 뉴스에서 대기업 임원이 억대 벌금을 내고 유유히 걸어 나가는 장면을 볼 때마다 저도 비슷한 찜찜함을 느꼈는데, 이 책은 그 찜찜함의 구조를 정확히 짚어줍니다.
내부 고발자가 치르는 대가
저자는 전 사장 마이클 우드포드를 만납니다. 일본 기업 올림푸스의 17억 달러 규모 회계부정을 고발한 사람이죠. 그는 진실을 밝힌 대가로 자리에서 쫓겨났고 30년을 함께 일한 동료들에게 배신자 취급을 받았습니다.
수치심은 그들이 아니라 제가 느껴야 한다는 분위기였죠. 대부분의 일본 기업가는 지금도 제가 올림푸스를 배신했다고 생각해요.
우드포드는 친구 부부와의 저녁식사 자리에서 "당신이 정의를 구현하겠다고 가족을 구렁텅이에 빠뜨렸다"는 말을 들었다고 회고합니다. 옳은 일을 하는 것과 손해를 감수하는 것이 이렇게까지 딱 붙어 있다는 사실이 씁쓸했습니다. 우리는 흔히 진실을 말하면 결국 보상받는다고 믿고 싶어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정직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법과 정의는 같은 말이 아니다
저자는 뉴욕에서 출판사를 운영하던 시절의 일화를 소개합니다. 회고록 저자가 과거 범죄로 번 돈을 피해자에게 배분해야 한다는 법을 적용받았던 일입니다. 그 사업에 자발적으로 큰돈을 지불한 고객들 중 누구를 "피해자"로 봐야 하느냐가 문제였죠.
정의? 정의는 다음 생에서나 찾아. 이번 생에 네가 가진 건 법이다.
법이 도덕과 나란히 갈 것 같지만 실제로는 자주 어긋납니다. 저자는 함무라비 법전부터 근대의 황당한 이혼 소송까지 훑으며 법이란 그 시대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정의를 담아낸 불완전한 도구였다는 걸 보여줍니다.
생존 앞에서 도덕은 사치가 된다
나치 강제수용소에서 살아남은 레오 솅커와의 대화가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남는 장면이었습니다. 솅커는 부모와 형제를 잃고 자신도 죽음 직전까지 갔습니다. 저자는 그에게 종교와 도덕이 그 상황에서 어떤 의미였는지 물었습니다.
중요한 건 도덕이 아니라오. 생존이 중요하지. 종교가 있든 없든, 자신의 목숨을 걸고 다른 사람을 도우려는 사람은 거의 없었소.
솅커는 나치 신분증을 위조해 살아남았고 유대인 학살자들 사이에 숨어 지내면서도 그것이 도덕과는 무관한 선택이었다고 잘라 말합니다. 안전한 자리에서 도덕을 논하는 것과 목숨이 걸린 상황에서 도덕을 논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입니다. 이 장을 읽으며 새삼 깨달았습니다.
다음 세대는 다른 지도를 그린다
책 후반부에서 저자는 20대 청년 일곱 명을 자신의 거실에 모아 격주로 토론을 벌입니다. 자신이 낡은 지도를 들고 있다는 친구의 지적을 받아들인 뒤였죠. 청년들은 도덕을 절대적인 하나의 기준이 아니라 시대와 사회에 따라 계속 재조정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지금쯤이면 인류가 도덕에 관한 한 절대주의자가 되면 안 된다는 걸 깨달았어야 해요. 역사를 봐도 기존 도덕 개념은 오염되거나 비도덕적이 되었고, 다행히 폐기되었죠.
저는 이 대목에서 제 나이대에 흔한 조바심을 들켰습니다. 세상이 옛날 같지 않다고 한탄하기는 쉽지만 그 변화 속에서 다음 세대가 나름의 방식으로 균형을 찾아가고 있다는 걸 인정하기는 생각보다 어렵더군요.
이 책은 이런 분들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 조직의 부조리를 보고도 목소리를 낼지 고민해본 분
- 뉴스에 나오는 기업 스캔들을 볼 때마다 찜찜함을 느끼는 분
- 세대 간 가치관 차이를 좁혀보고 싶은 분
- 도덕을 한 문장으로 정의할 수 없다는 걸 받아들일 준비가 된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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