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만 보면 섬뜩합니다.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서울대학교 법의학자 유성호 교수님도 이 반응을 예상했다고 책 첫머리에 적어두셨더군요. 그런데 막상 읽어보면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매주 월요일 부검실로 출근하는 사람이 정작 하고 싶었던 말은 죽음이 아니라 삶이었습니다. 저도 이 책을 읽으면서 가족의 마지막 순간을, 그리고 언젠가 저에게도 올 그 순간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떠올려봤습니다.

법의학자의 가방 속, 압축된 한 사람의 생
저자는 부검을 맡을 때마다 사망자의 기록을 가방에 넣어 다닌다고 합니다. 경찰 수사 기록, 가족의 진술, 병원 진료 차트 같은 것들이죠. 이 얇은 기록이 실제로는 한 사람의 인생 전체와 맞먹는 무게로 다가온다고 말합니다.
오늘도 지금 내 가방 안에는 두 사람의 죽음 기록이 들어 있다. 그리고 나는 그 기록을 통해 그 사람이 지나온 삶을 더듬어본다.
생각해보면 저도 매일 이런 기록을 남깁니다. 카드 내역, 메신저 대화, 사진첩. 누군가 이걸 나중에 들여다본다면 저라는 사람이 어떤 식으로 읽힐까요.
사망 원인과 사망 종류, 같은 죽음도 다르게 읽힌다
법의학에서는 사망 원인(의학적 진단명)과 사망 종류(자연사·자살·타살·사고사)를 따로 구분합니다. 같은 익사라도 상황에 따라 분류가 완전히 갈린다니 흥미로웠습니다.
물에서 건져낸 주검을 의학적이나 과학적으로 검사해 사망 원인이 익사임이 밝혀졌다 하더라도, 스스로 투신했다면 자살일 것이고, 술에 취한 채 수영하다가 익사했다면 사고사이며, 강제로 물을 먹여 죽였다면 타살이다.
결과는 똑같이 익사여도 거기에 이르기까지의 맥락을 얼마나 꼼꼼히 들여다보느냐에 따라 다른 이야기가 됩니다. 사람도 그렇지 않을까요. 결과만 보고 판단하기엔 그 사람이 거쳐온 맥락이 너무 많으니까요.
노인 자살, "사회적 타살"이라는 말
책에서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대목은 노인 자살 통계였습니다. 1985년에는 10만 명당 10명이 채 안 되던 80대 자살률이 2010년에는 123.3명까지 치솟았다고 합니다. 저자는 이걸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사회 구조의 문제로 봅니다.
노인 자살은 사실상 사회적 타살이라고도 할 수 있다. 본인의 모든 것을 자식들에게 투자하고 결국 스스로는 사회적 안전망이 없는 상태에서 죽음으로 내몰린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제 주변에도 자식 뒷바라지에 모든 걸 쏟아붓고 정작 본인 노후는 챙기지 못한 어른들이 계십니다. 명절에 안부 전화 한 통이라도 더 자주 드려야겠습니다.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 — 자살은 충동이 아니라 준비의 결과
많은 사람이 자살을 순간적인 충동으로 오해합니다. 그런데 저자는 자살 시도자 인터뷰와 연구를 근거로 정반대 이야기를 합니다.
그렇듯 우리가 자살에 대해 갖고 있는 상식, 즉 죽고 싶어 죽는 것이라거나 즉흥적인 판단의 결과라는 것은 모두 틀린 말이다. 세상에 진정으로 죽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는 법이다.
그래서 저자는 마포대교의 자살 방지 캠페인처럼 누군가 한 번만 붙잡아줘도 상당수가 삶으로 돌아온다고 강조합니다. 준비된 결심이라는 건 거꾸로 말하면 붙잡을 시간도 그만큼 있었다는 뜻이겠지요.
내 인생의 마지막 문장은 내가 써야 한다 — 연명의료와 죽을 권리
책 후반부는 연명의료를 다룹니다. 저자는 자신이 직접 사전의료지시서를 작성해 아들에게 맡겨두었다고 밝히면서 삶을 자기 손으로 써온 사람이 왜 마지막 장만은 남에게 맡기느냐고 묻습니다.
왜 삶의 가장 중요한 마지막 스토리를 내가 못 쓰고 다른 사람이 쓰게 하는 것일까? 내 인생의 마지막은 반드시 내가 종결지어야 한다.
저는 아직 유언장은커녕 이런 대화를 가족과 나눠본 적도 없습니다. 이 책을 읽고서야 알았습니다. 나이 들어서 꺼낼 게 아니라 건강할 때 미리 해둬야 할 이야기였습니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는 것이 삶을 사는 법
책의 마지막 문장은 "카르페 디엠"이 아니라 "메멘토 모리"입니다. 현재를 즐기라는 말보다 죽음을 기억하라는 말로 책을 맺은 이유를 저자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자신이 어떠한 모습이기를 바라는지 끊임없이 묻고 답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삶은 더욱 풍성해지고 깊은 의미를 품는다.
죽음을 생각하는 게 우울한 일이라고만 여겼는데 이 책을 덮고 나니 오히려 오늘 하루를 대하는 태도가 조금 달라졌습니다. 미뤄뒀던 연락 한 통, 하고 싶었던 말 한마디를 더 서두르게 되더군요.
죽음을 다루지만 다 읽고 나면 결국 오늘을 어떻게 살 것인가로 돌아오는 책입니다. 이런 분들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 가족의 임종이나 장례를 앞두고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 분
- 부검이나 사망 판정 같은 절차가 실제로 어떻게 이뤄지는지 궁금했던 분
- 자살 문제를 개인의 일탈로만 보지 않고 사회 구조 차원에서 다시 생각해보고 싶은 분
- 연명의료나 사전의료의향서를 아직 남의 일처럼 여겨온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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