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헷갈리면 무죄입니다 - 재심 변호사 박준영이 본 사법 정의

by summaries 2026. 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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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심을 청구한 사람 가운데 실제로 누명을 벗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대한변호사협회 자료를 보면 2011년부터 2016년 상반기까지 재심 청구자 8,700여 명 중 2,095명이 무죄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숫자에는 헌법재판소가 위헌으로 결정한 간통죄, 혼인빙자간음죄 사건까지 섞여 있습니다. 살인 같은 강력 사건에서 국가기관의 개입 없이 재심 무죄를 받은 사례는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박준영 변호사의 『우리들의 변호사』는 바로 그 손에 꼽히는 사례들을 변호했던 기록입니다. 수원 노숙 소녀 살인 사건과 무기수 김신혜 사건,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 사건,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 기사 살인 사건이요. 박 변호사는 완도의 작은 섬 노화도에서 태어나 국선 변호사로 생계를 이었습니다. 어떻게 재심 전문 변호사가 되었는지, 그 과정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따라가 보려 합니다.

헷갈리면 무죄입니다 - 재심 변호사 박준영이 본 사법 정의 표지

유명해지고 싶어서 시작한 일

박준영 변호사는 왜 재심 사건에 매달리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늘 같은 대답을 합니다.

처음엔, 유명해지고 싶어서였습니다.

학벌도 인맥도 없이 국선 변호로 생계를 이어 가던 사람이 담담하게 털어놓는 문장입니다. 저는 이 대답이 오히려 믿음이 갔습니다. 거창한 사명감을 앞세우기보다 개인적인 동기를 인정하고 시작한 일이 결국 여러 사람의 억울함을 풀어냈다는 사실이요. 무언가를 시작할 때 마음이 완전히 깨끗하지 않아도 됩니다. 결과가 정직하기만 하면 됩니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걸 보여 줍니다.

헷갈리면 무죄입니다

무기수 김신혜 사건을 처음 맡았을 때 박 변호사도 헷갈렸다고 합니다. 기록만 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 대목들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김신혜 씨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건 기록 보면 헷갈린다고 하셨죠? 그러니까 무죄죠!

무죄 추정의 원칙은 헷갈리는 상태라면 무죄로 보아야 한다는 뜻이라고 책은 설명합니다. 이 대목을 읽으며 제 생활 속 판단 습관을 돌아봤습니다. 기사 하나, 댓글 하나만 보고 누군가를 쉽게 단정 짓던 순간들이요. 헷갈릴 때 유죄 쪽으로 기울었던 건, 어쩌면 제가 더 쉬운 결론을 원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허위 자백은 매를 맞아야만 나오는 게 아니다

수원 노숙 소녀 살인 사건에서 무죄를 받아 낸 가출 청소년 중 한 명은 왜 하지도 않은 일을 자백했느냐는 물음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안 했다고 난리쳐도 검사가 몰아붙여서, 난동 피우면 없던 죄도 생길까 봐, 막장이다 생각하고 인정했어요.

보호자도 없고 도와줄 사람도 없는 미성년자 다섯 명과 노숙인 두 명, 모두 일곱 명이 자기가 죽였다고 자백한 사건이었습니다. 상식적으로 믿기 힘든 숫자지만 책은 허위 자백이 꼭 폭행이나 협박 때문에만 생기지는 않는다고 말합니다. 빠져나갈 구멍이 안 보이고 자백하면 그나마 나아질 것 같다는 생각만으로도 사람은 하지 않은 일을 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저도 살면서 궁지에 몰렸을 때 어떤 선택을 했는지 떠올려 봤습니다.

네가 감독이냐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 사건의 현장검증 영상 이야기입니다. 지적장애가 있는 세 사람이 경찰의 지시에 따라 범행을 재연하는 장면인데, 한 경찰이 직접 테이프를 들고 시범을 보이자 옆에 있던 다른 경찰이 웃으며 말합니다.

네가 감독이냐!

이 한마디가 이 사건의 실체를 그대로 보여 줍니다. 경찰이 대본을 쓰고 연출까지 한 자백극이었던 겁니다. 17년 뒤 진범이 따로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 세 사람은 무죄를 받았습니다. 억울한 사람을 만든 건 흉악한 의도가 아니라 빨리 사건을 끝내고 싶은 마음 하나였습니다. 그게 오래 남았습니다.

엄마, 진짜 나는 안 했는데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 기사 살인 사건의 최성필 씨는 사건이 났을 때 열다섯 살이었습니다. 목격자로 경찰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걸었다가 사흘 뒤 범인으로 지목됩니다. 여관에서 맞고 경찰서 숙직실에서 또 맞은 뒤 자백했습니다. 면회 온 엄마에게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 진짜 나는 안 했는데, 내가 아니라고 말을 해도 믿어 주질 않아.

열다섯 살이 감옥에서 열 번의 봄을 보내고 스물다섯 살에 나왔습니다. 진범은 이미 2003년에 잡혔지만 검찰이 기소하지 않았습니다. 최성필 씨는 2016년에야 재심으로 무죄를 받았습니다.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제 아이가 이만 한 나이에 이런 일을 겪는다면 어땠을까 생각하다가 책을 잠시 덮었습니다.

재심도 리콜이 되어야 한다

박준영 변호사는 재심이 왜 필요하냐는 질문에 자동차 이야기로 답합니다.

자동차 팔다가 결함이 발견되면 어떻게 합니까? 당연히 회수하고 리콜 조치에 들어갑니다.

사람이 하는 일에는 오류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바로잡을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책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유죄가 확정되면 증거물을 폐기해 버리는 경우가 많아서 나중에 DNA 재감정 같은 방법으로 무죄를 밝혀내는 일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미국의 이노센스 프로젝트가 344명의 무죄를 밝혀낸 것과 비교하면, 우리는 리콜할 방법조차 제대로 마련해 두지 않은 셈입니다.

이 책은 사법 시스템을 시원하게 무너뜨리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진범을 잡았다가 풀어 준 검찰, 기록을 폐기해 버린 시스템, 여전히 사과받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함께 담겨 있습니다. 그럼에도 박준영 변호사가 계속 이 일을 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억울한 사람 옆에 한 사람이라도 있어야 한다는 것. 이런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 뉴스에서 재심 무죄 기사를 볼 때마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렸을까 궁금했던 분
- 사법 정의라는 말이 너무 멀게 느껴졌던 분
- 사람을 믿는다는 게 어떤 힘을 가질 수 있는지 궁금한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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