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에세이·라이프30 스웨터 한 벌에 담긴 시간 — 《아무튼, 스웨터》를 읽고 아침저녁으로 바람이 제법 차가워지면서 옷장 깊은 곳에 넣어뒀던 스웨터를 다시 꺼내는 계절이 왔습니다. 저는 이맘때마다 옷 하나에도 이렇게 많은 기억이 딸려 나온다는 사실에 조금 놀랍니다. 시인 김현이 쓴 《아무튼, 스웨터》를 읽으면서 스웨터라는 평범한 옷 한 벌이 사람의 시간을 얼마나 많이 품고 있는지 다시 생각해보게 됐습니다.보풀이 잡혀야 비로소 생기가 도는 옷책은 스웨터를 "스웨터리 스웨터"와 그렇지 않은 스웨터로 나누어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전통적이고 기본에 충실한 스웨터, 오래 입어 보풀이 잡힌 스웨터일수록 오히려 더 생기 있어 보인다는 겁니다. 새 옷이 주는 깔끔함과는 다른, 시간이 쌓여야만 나오는 멋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스웨터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현재하는 옷이다.저는 이 문장을 읽고 제 .. 2026. 10. 24. 인생의 파편들이 모여 무늬가 될 때, 《마크툽》 요즘처럼 환절기에 몸도 마음도 지칠 때면, 저는 거창한 자기계발서보다 짧은 이야기 한 토막이 더 위로가 될 때가 있습니다. 파울로 코엘료가 신문에 1년간 연재했던 짧은 글들을 모은 《마크툽》이 딱 그런 책입니다. 한 편 한 편이 짧은 우화나 일화인데, 묶어놓고 보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하나의 질문으로 이어집니다.유리 조각으로 지은 집책의 첫 이야기부터 마음을 붙잡습니다. 1899년 꿈에서 천사를 본 한 남자가 깨진 유리와 타일 조각들을 모아 40년에 걸쳐 집을 짓습니다. 이웃들은 그를 제정신이 아니라고 여겼지만 그는 담담하게 이렇게 말합니다.조각들 하나하나가 모여 아름다움을 이룬다오.코엘료는 이 이야기를 자신의 삶에 포개어 봅니다.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의 인생 역시 그에게 일어난 모든 일.. 2026. 10. 20.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 글이 막힐 때 이윤기가 건네는 말 요즘 서점 베스트셀러 칸을 보면 '글쓰기'를 다루는 책이 유난히 많습니다. 챗GPT가 대신 써주는 시대인데도 다들 '내 문장'을 갖고 싶어 하는 걸까요. 저도 메모 앱에 쌓인 초고만 수십 개인데, 끝까지 밀어붙인 글은 몇 안 됩니다. 그러다 소설가이자 번역가 이윤기의 산문집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를 읽었습니다. 글쓰기 '기술'을 조목조목 알려주는 책이 아니라, 평생 글과 번역을 업으로 산 사람이 자신의 실패와 습관을 솔직하게 풀어놓은 책이었습니다.글을 쓰는 이유는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이윤기는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라는 질문에 멋진 대답을 준비해두지 않습니다. 쓰지 않고는 못 배길 운명이었다는 식의 낭만적인 설명도 거부하고 그저 인생이 그렇게 풀렸다고 말합니다.문학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 2026. 10. 19. 『괴테가 읽어주는 인생』, "손절"이 유행하는 이유를 괴테는 이미 알고 있었다 요즘 "손절"이라는 말을 참 자주 듣습니다. 안 맞는 사람, 안 맞는 관계는 일찍 끊어 내는 게 낫다는 뜻으로 쓰입니다. 저도 한때 모든 관계는 노력하면 좋아질 수 있다고 믿었다가, 아무리 애써도 어긋나기만 하는 사람을 만나고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그런데 이 고민이 아주 오래된 거라는 걸 『괴테가 읽어주는 인생』을 읽으며 알았습니다. 18세기를 산 괴테가 인간관계를 화학 실험처럼 들여다본 잠언들을 모은 책인데, 인간관계뿐 아니라 일과 사랑과 늙어감까지 짧은 문장 하나하나가 꽤 뼈아프게 다가왔습니다.인간관계는 화학이다괴테는 사람 사이의 궁합을 화학 물질의 결합력에 비유합니다.사람들은 때로 친구나 오랜 지인으로 만나 포도주와 물이 뒤섞이듯이 금세 어우러지면서도 서로 상대를 변화시키지는 않는다. 반면에 어떤.. 2026. 10. 17.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 마흔다섯에 안정된 삶을 내려놓은 이유 요즘은 누구나 뭔가를 씁니다. SNS에 일상을 올리고 블로그에 생각을 정리하고 메모 앱에 하루를 기록합니다. 저도 이 글을 쓰면서 종종 궁금해집니다.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이, 정말 누군가에게 닿는 글일까, 아니면 그냥 제 속을 풀어내는 혼잣말에 그치는 걸까. 그런 고민을 안고 소설가 이윤기의 산문집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를 펼쳤습니다. 번역가이자 소설가로 평생을 글과 씨름한 사람의 솔직한 고백이, 생각보다 깊은 위로와 자극을 함께 주었습니다.쓰지 않고는 못 배겨서 쓴 글은 울림이 없다작가는 자신이 써온 글을 돌아보며 뜻밖의 고백을 합니다. 감정이 차올라서 어쩔 수 없이 토해내듯 쓴 글이 오히려 독자에게 아무 감동을 주지 못했다는 겁니다.쓰지 않고는 못 배길 것 같아서 쓴 것들이 있기는 하.. 2026. 10. 14. 『야생의 위로』, 25년째 우울증과 함께 산 사람이 매일 숲으로 걸어 나가는 이유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면 소파에서 넷플릭스를 켜는 게 제일 쉬운 선택입니다. 밖에 나가는 건 괜히 큰일처럼 느껴지고요. 그런데 영국의 박물학자 에마 미첼은 25년 동안 우울증을 앓으면서도 기분이 바닥을 칠 때마다 소파에서 몸을 일으켜 숲으로 걸어 나갔다고 합니다. 『야생의 위로』는 그 1년간의 산책을 계절별로 기록한 책입니다.25년째 우울증 환자입니다솔직히 말하겠다. 나는 지난 25년 내내 우울증 환자였다.이렇게 담담하게 고백하며 책이 시작됩니다. 우울증을 극복한 사람의 성공담이 아니라, 지금도 우울증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 매일 쓰는 생존 기록이라서 오히려 믿음이 갔습니다.뇌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그저 집 밖으로 나가 오두막 맞은편의 가시자두나무와 보리수를 보는 것만으로도 내면에서 뇌가 안도의 한숨을 내.. 2026. 10. 12. 이전 1 2 3 4 5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