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손절"이라는 말을 참 자주 듣습니다. 안 맞는 사람, 안 맞는 관계는 일찍 끊어 내는 게 낫다는 뜻으로 쓰입니다. 저도 한때 모든 관계는 노력하면 좋아질 수 있다고 믿었다가, 아무리 애써도 어긋나기만 하는 사람을 만나고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그런데 이 고민이 아주 오래된 거라는 걸 『괴테가 읽어주는 인생』을 읽으며 알았습니다. 18세기를 산 괴테가 인간관계를 화학 실험처럼 들여다본 잠언들을 모은 책인데, 인간관계뿐 아니라 일과 사랑과 늙어감까지 짧은 문장 하나하나가 꽤 뼈아프게 다가왔습니다.

인간관계는 화학이다
괴테는 사람 사이의 궁합을 화학 물질의 결합력에 비유합니다.
사람들은 때로 친구나 오랜 지인으로 만나 포도주와 물이 뒤섞이듯이 금세 어우러지면서도 서로 상대를 변화시키지는 않는다.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사이가 원만하지 못하여 애써 융화하려고 해도 결코 한마음이 되지 못한다. 마치 물과 기름을 휘저어 한데 섞으려고 하나 금세 다시 분리되고 마는 것과 같다.
포도주와 물처럼 저절로 섞이는 사람이 있고 물과 기름처럼 아무리 저어도 다시 갈라지는 사람이 있다는 겁니다. 제가 그동안 "내가 노력을 덜 했나" 하며 자책했던 관계들이, 어쩌면 애초에 성분이 다른 조합이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드니 묘하게 마음이 놓였습니다.
나부터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
관계보다 먼저 괴테는 자기 자신을 짚습니다.
자신에게 명령하지 못하는 사람은 언제까지나, 남에게 명령받는 종과 마찬가지다.
남 탓을 하기 전에 제 감정과 습관을 제가 통제하지 못하면 결국 다른 사람이나 상황에 끌려다니게 된다는 말입니다. 관계에서 자꾸 휘둘린다고 느껴질 때, 상대보다 저 자신을 먼저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었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을 멀리하라는 조언
괴테는 분위기를 읽지 못하고 자기 말만 늘어놓는 사람, 소위 눈치 없는 사람을 특히 경계했습니다.
온갖 도둑 중에서도 가장 악질은 어리석은 자다. 이들은 당신에게서 시간과 마음, 두 가지를 훔쳐간다.
논리로는 어리석은 사람을 이길 수 없으니 물리적으로 거리를 두는 게 상책이라고 그는 말합니다. "손절"이라는 말이 요즘에야 생긴 줄 알았는데, 이미 수백 년 전에 비슷한 처방이 있었던 셈입니다. 전에 『이런 사람 만나지 마세요』를 다루면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었는데, 괴테는 이미 그때 그 답을 한 문장으로 정리해 두었던 겁니다.
결점까지 사랑하라
그렇다고 괴테가 사람을 쉽게 끊어 내라고만 말하는 건 아닙니다. 친구였던 극작가 실러는 썩은 사과를 책상 서랍에 넣어두고 그 냄새를 맡아야 글이 잘 써진다고 했습니다. 괴테는 그 이상한 습관조차 싫어하면서도 그냥 받아들였습니다.
연인의 결점을 미덕으로 여기지 못한다면 사랑한다고 할 수 없다.
지켜야 할 관계와 끊어야 할 관계를 가르는 기준이 여기 있는 것 같습니다. 성분이 다른 걸 억지로 섞으려 애쓰는 것과, 이미 섞인 사람의 결점까지 받아들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습니다.
현재가 전부다
괴테는 관계만큼이나 ‘지금’을 반복해서 강조했습니다.
카드 한 장의 패에 큰돈을 걸듯이 나는 현재에 모든 것을 걸었다.
지나간 관계를 후회하거나 아직 오지 않은 관계를 미리 걱정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쓰고 있었던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미움이 불행을 낳는다
손절한 뒤에도 그 사람을 계속 미워하는 데 마음을 쓰는 경우가 있습니다. 괴테는 이것조차 말립니다.
자신의 적을 미워하거나 박해하지 마라. 오히려 적의 장점을 인정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쉽고 큰 이익은 없다.
끊어 내는 것과 미워하는 것은 다른 일이라는 걸, 이 문장을 읽고서야 분명히 알았습니다.
마무리하며
이 책에 실린 여든여덟 개의 잠언을 다 읽고 나니, 관계에 대한 괴테의 결론은 단순했습니다. 안 맞는 사람에게 애써 맞추려 들지 말고 맞는 사람의 결점은 기꺼이 끌어안으라는 것입니다. 요즘 관계에 자주 지치는 분, "손절"이라는 말에 마음이 복잡했던 분, 짧은 문장 하나로도 생각을 오래 붙잡아 두고 싶은 분께 이 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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