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글로 빛나는 오늘
반응형

에세이5

스웨터 한 벌에 담긴 시간 — 《아무튼, 스웨터》를 읽고 아침저녁으로 바람이 제법 차가워지면서 옷장 깊은 곳에 넣어뒀던 스웨터를 다시 꺼내는 계절이 왔습니다. 저는 이맘때마다 옷 하나에도 이렇게 많은 기억이 딸려 나온다는 사실에 조금 놀랍니다. 시인 김현이 쓴 《아무튼, 스웨터》를 읽으면서 스웨터라는 평범한 옷 한 벌이 사람의 시간을 얼마나 많이 품고 있는지 다시 생각해보게 됐습니다.보풀이 잡혀야 비로소 생기가 도는 옷책은 스웨터를 "스웨터리 스웨터"와 그렇지 않은 스웨터로 나누어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전통적이고 기본에 충실한 스웨터, 오래 입어 보풀이 잡힌 스웨터일수록 오히려 더 생기 있어 보인다는 겁니다. 새 옷이 주는 깔끔함과는 다른, 시간이 쌓여야만 나오는 멋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스웨터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현재하는 옷이다.저는 이 문장을 읽고 제 .. 2026. 10. 24.
인생의 파편들이 모여 무늬가 될 때, 《마크툽》 요즘처럼 환절기에 몸도 마음도 지칠 때면, 저는 거창한 자기계발서보다 짧은 이야기 한 토막이 더 위로가 될 때가 있습니다. 파울로 코엘료가 신문에 1년간 연재했던 짧은 글들을 모은 《마크툽》이 딱 그런 책입니다. 한 편 한 편이 짧은 우화나 일화인데, 묶어놓고 보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하나의 질문으로 이어집니다.유리 조각으로 지은 집책의 첫 이야기부터 마음을 붙잡습니다. 1899년 꿈에서 천사를 본 한 남자가 깨진 유리와 타일 조각들을 모아 40년에 걸쳐 집을 짓습니다. 이웃들은 그를 제정신이 아니라고 여겼지만 그는 담담하게 이렇게 말합니다.조각들 하나하나가 모여 아름다움을 이룬다오.코엘료는 이 이야기를 자신의 삶에 포개어 봅니다.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의 인생 역시 그에게 일어난 모든 일.. 2026. 10. 20.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 마흔다섯에 안정된 삶을 내려놓은 이유 요즘은 누구나 뭔가를 씁니다. SNS에 일상을 올리고 블로그에 생각을 정리하고 메모 앱에 하루를 기록합니다. 저도 이 글을 쓰면서 종종 궁금해집니다.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이, 정말 누군가에게 닿는 글일까, 아니면 그냥 제 속을 풀어내는 혼잣말에 그치는 걸까. 그런 고민을 안고 소설가 이윤기의 산문집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를 펼쳤습니다. 번역가이자 소설가로 평생을 글과 씨름한 사람의 솔직한 고백이, 생각보다 깊은 위로와 자극을 함께 주었습니다.쓰지 않고는 못 배겨서 쓴 글은 울림이 없다작가는 자신이 써온 글을 돌아보며 뜻밖의 고백을 합니다. 감정이 차올라서 어쩔 수 없이 토해내듯 쓴 글이 오히려 독자에게 아무 감동을 주지 못했다는 겁니다.쓰지 않고는 못 배길 것 같아서 쓴 것들이 있기는 하.. 2026. 10. 14.
『아무튼, 양말』, 서랍 속 양말 한 짝이 하루를 바꾸는 방식 서랍 정리를 하다가 똑같은 양말이 세 켤레나 있는 걸 발견한 적 있으신가요. 저는 그걸 보고 "또 샀구나" 하며 웃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별것도 아닌 물건인데 왜 자꾸 손이 가는 걸까요. 프리랜서 작가 구달이 쓴 에세이 『아무튼, 양말』을 읽으면서 작은 물건 하나에 마음을 쓰는 일이 생각보다 삶을 꽤 많이 지탱해준다는 걸 다시 느꼈습니다.발끝에 우선순위를 둔다는 것작가는 소설가 카뮈의 일화로 책을 엽니다. 결혼을 앞둔 카뮈가 어머니에게 선물로 받고 싶은 걸 말해달라는 질문에 내놓은 대답이 뜻밖입니다.어머니가 결혼 선물로 무엇을 받고 싶으냐고 묻자 카뮈는 하얀 양말 한 다스라고 대답했다. 당시 카뮈는 흰 양말만 신고 다녔다.가난한 형편에도 늘 깨끗한 흰 양말을 갖춰 신었던 카뮈를 두고 작가는 이렇게 적습니.. 2026. 10. 9.
『먹고사는 게 전부가 아닌 날도 있어서』, 부캐가 유행어가 되기 전 이미 여러 이름으로 살아온 사람 요즘 자기소개서나 SNS 프로필에 직함 하나만 적어놓는 사람은 드물다. 회사원이면서 밤에는 그림을 그린다.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낮에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한다. 본업 하나로는 어딘가 불안하다는 감각이 시대의 공기처럼 퍼져 있다. 2026년 한국의 노동시장은 여기에 아예 이름까지 붙였다. N잡, 부캐 이코노미. 그런데 이 말이 유행하기 훨씬 전부터, 이미 방송 작가였다가 번역가가 되었다가 또 어느 날 글 쓰는 사람이 되어가던 사람이 있었다. 노지양의 에세이 『먹고사는 게 전부가 아닌 날도 있어서』는 그렇게 여러 개의 이름을 오가며 살아온 기록이다.번역가는 그림자다저자는 14년 넘게 번역가로 일하며 80여 권의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 그런데도 이 직업을 조금도 화려하게 그리지 않는다.사실 번역으로는 자리를 잡.. 2026. 9. 23.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