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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라이프

『먹고사는 게 전부가 아닌 날도 있어서』, 부캐가 유행어가 되기 전 이미 여러 이름으로 살아온 사람

by summaries 2026. 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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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자기소개서나 SNS 프로필에 직함 하나만 적어놓는 사람은 드물다. 회사원이면서 밤에는 그림을 그린다.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낮에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한다. 본업 하나로는 어딘가 불안하다는 감각이 시대의 공기처럼 퍼져 있다. 2026년 한국의 노동시장은 여기에 아예 이름까지 붙였다. N잡, 부캐 이코노미. 그런데 이 말이 유행하기 훨씬 전부터, 이미 방송 작가였다가 번역가가 되었다가 또 어느 날 글 쓰는 사람이 되어가던 사람이 있었다. 노지양의 에세이 『먹고사는 게 전부가 아닌 날도 있어서』는 그렇게 여러 개의 이름을 오가며 살아온 기록이다.

『먹고사는 게 전부가 아닌 날도 있어서』, 부캐가 유행어가 되기 전 이미 여러 이름으로 살아온 사람 표지

번역가는 그림자다

저자는 14년 넘게 번역가로 일하며 80여 권의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 그런데도 이 직업을 조금도 화려하게 그리지 않는다.

사실 번역으로는 자리를 잡았다 할 수도 있지만 번역가는 아무리 많은 책을 번역해도 그림자일 뿐이고 일은 곧 자발적 고립을 의미한다.

이름이 표지 안쪽 작은 글씨로만 남는 직업, 성과가 늘 남의 이름을 달고 세상에 나가는 일. 여러 개의 정체성을 갖는다는 건 이렇게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노동을 오래 버텨내는 일이기도 하다. 이 문장이 그걸 먼저 짐작하게 한다.

노트북 하나로 어디서나 일한다는 판타지

“디지털 노마드”라는 말에 이끌린 사람들은 노트북 하나만 있으면 자유가 따라온다고 믿는다. 저자는 이 상상에 정면으로 다른 말을 건다.

왜 번역가가 프리랜서이되 자유방목형 디지털 노마드가 될 수 없는지만큼은 꼭 이야기하고 싶다.

프리랜서라는 형태와 자유로운 삶이라는 내용은 종종 겹치지 않는다. 부캐나 사이드 프로젝트라는 말이 흔해질수록 그 뒤에 붙는 마감과 고립은 오히려 덜 이야기된다. 이 책은 그 간극을 굳이 짚고 넘어간다.

보너스도 명절 선물도 없이

회사원 남편과 자영업 번역가인 자신의 살림을 나란히 놓아보는 대목에서 저자는 자기 처지를 숨기지 않는다.

반면 부모님의 피를 물려받은 나는 자영업, 그것도 영세자영업인 번역을 하고 있어서 내가 벌지 않으면 공짜로 들어오는 것이 없다. 보너스도 없고 추석 선물도 없다.

여러 개의 일을 오간다는 건 그만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진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매번 자기가 번 돈으로만 버텨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N잡을 예찬하는 이야기에서 자주 빠지는 부분이 바로 이 안전망의 부재다.

라디오에 나가 “다 가졌다”고 느낀 순간

어쩌다 라디오 프로그램 게스트로 나가 방송을 무사히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밤, 저자는 뜻밖의 감정을 느낀다.

그 순간만큼은 ‘다 가졌다’고 생각했다.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하고 온 숀다 라임스라도 된 것처럼.

번역가, 아내, 엄마, 그리고 잠깐 방송인이었던 하루. 여러 정체성을 오가는 삶은 피곤하지만 예상치 못한 순간에 스스로를 다시 보게 만들기도 한다. 부캐가 주는 진짜 보상은 어쩌면 이런 작은 순간일지도 모른다.

번역하는 사람에서 글 쓰는 사람으로

책날개의 저자 소개는 이런 문장으로 끝난다.

번역하는 사람에서 글 쓰는 사람으로 천천히 이동 중으로 첫 책 《먹고사는 게 전부가 아닌 날도 있어서》에는 일과 삶, 꿈과 현실, 어제와 내일 사이에서 방황하는 동안 때로는 위로가, 때로는 격려가 되어주었던 단어들의 다정한 마음을 담았다.

새로운 이름을 얻는 과정은 하루아침에 일어나지 않는다. 저자는 14년을 번역가로 일한 뒤에야 “글 쓰는 사람”이라는 이름을 조심스럽게 붙였다. 부캐는 마케팅 용어가 아니라 이런 긴 이동의 결과에 더 가까울 것이다.

그래서 여러 개의 이름을 가진다는 것

N잡이나 부캐 이코노미라는 말은 자주 산뜻하게 포장된다. 본업 따로, 취향 따로, 브랜딩 따로. 하지만 이 책이 보여주는 여러 개의 이름들, 방송 작가였다가 번역가였다가 이제는 글 쓰는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은 그런 기획의 결과가 아니다. 생계와 좌절, 그럼에도 놓지 않은 문장들이 오래 쌓여 만들어졌다. 이름을 하나 더 얻는다는 건 화려한 확장이 아니라 조용한 버티기의 다른 이름일 수 있다.

이 책을 권하고 싶은 사람들

지금 당신이 본업 말고 붙이고 싶은 이름은 무엇인가. 그 이름을 갖기 위해 감당해야 할 것은 또 무엇인가.

  • 본업 외에 다른 이름을 갖고 싶은데 그 무게가 먼저 걱정되는 사람
  • 프리랜서로 일하며 안전망 없는 불안을 느껴본 사람
  • 하나의 직업만으로는 나를 다 설명할 수 없다고 느끼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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