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뉴스를 보면 한국 조선업이 다시 호황이라는 이야기가 자주 나옵니다. 수주량이 역대급이라느니, 몇 년 치 일감을 이미 확보했다느니 하는 소식들이요. 그런 기사를 볼 때마다 저는 몇 년 전에 읽었던 책 한 권이 떠오릅니다. 화려한 수주 실적 뒤에서 실제로 배를 만드는 사람들, 그중에서도 하청의 하청, 또 그 밑의 하청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나, 조선소 노동자》입니다.

2017년 5월 1일, 멈추지 않은 조선소
이 책은 2017년 5월 1일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 벌어진 크레인 충돌 사고를 증언한 아홉 사람의 구술 기록입니다. 그날은 노동절, 법정 유급휴일이었지만 거제조선소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출근 기록에는 1623명이 평소처럼 나와 일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오후 2시 52분, 800톤급 골리앗 크레인이 32톤급 지브 크레인을 들이받았고 붐대가 사람들이 쉬던 3층 휴게 공간으로 무너져내렸습니다. 여섯 명이 숨지고 스물다섯 명이 다쳤습니다.
스무 살, 경제적 독립을 꿈꾸며
책에 담긴 아홉 명의 목소리 가운데 저는 스무 살에 조선소로 내려간 한 청년의 이야기가 오래 남았습니다. 대학에 떨어진 좌절감과 어머니와의 갈등 속에서, 그는 혼자 살 힘을 기르겠다고 결심합니다.
조선소에서 일하면서 혼자 살 수 있는 힘을 기르자고 생각했어요. 경제적인 힘이요. 완벽하게 경제적으로 독립하는 게 목표였어요.
최저시급이 5210원이던 시절, 조선소 일당 9만 원은 매력적인 숫자였습니다. 숙식이 해결되니 돈이 모였고 그는 용접에서 도장으로, 다시 더 돈을 많이 주는 해양플랜트 현장으로 옮겨 다닙니다. 그렇게 옮겨 간 곳이 하필 삼성중공업의 마틴링게 프로젝트였습니다.
"조선소는 시스템이 구려요"
그가 몸으로 겪어낸 조선소의 구조는 단순합니다. 원청은 숙련공 임금을 기준으로 하청에 일을 맡기지만 하청은 그 돈으로 숙련공 한 명과 초보자 여러 명을 섞어 씁니다.
조선소는 초보자가 많아야 돈이 되는 구조예요. 원청에서 하청에 일을 맡길 때 노동자 임금에 해당하는 돈을 주겠죠? 예를 들어 원청에서 하청에 내린 일이 일당 20만 원 정도 받는 숙련공 열 명이 필요한 일이라고 해봐요. 그런데 하청회사에서는 필요한 인원을 다 숙련공으로 고용하는 게 아니라 숙련공 한 명에 초보자 여러 명을 붙이는 식으로 꾸려요. 숙련공은 20만 원 줘야 되는 걸 초보자는 10만 원만 주면 되거든요.
숙련공을 많이 데려올수록 자신의 몸값도 오른다는 걸 알게 된 그는 친해진 동료들을 설득해 함께 삼성중공업으로 자리를 옮깁니다. 사고가 나기 꼭 한 달 전의 일이었습니다. 그는 지금도 그날의 결정을 자책합니다.
마음이 아픈 건 어떻게 증명해야 할까
사고 이후 그에게 남은 것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였습니다. 크레인이 보이면 숨이 막히고 잠들기가 무서워 불을 켜놓고 잤습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상처가 없다는 이유로, 그는 자신의 고통을 증명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했습니다.
마음이 아픈 건 눈에 보이지 않잖아요. 이 사람들이 꾀병으로 볼까 봐 무서웠어요.
그리고 이렇게 덧붙입니다.
차라리 팔다리가 잘렸으면 동정이라도 받을 텐데 그러지도 못하잖아요.
산재 신청 과정에서 그를 담당했던 근로복지공단 직원은 전화를 끊으며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목소리는 되게 건강하게 들리시네요.
그는 그 한마디에 무너졌다고 말합니다. 산재가 인정되기까지 1년이 걸렸고 그사이 그는 가장 힘든 시간을 혼자 견뎌야 했습니다.
"저 언제 괜찮아질까요?"
책 속 그의 마지막 질문은 담당 의사에게 던진 것이었습니다.
저번 주에 병원 가서 선생님한테 물어봤거든요. ‘저 언제 괜찮아질까요?’ 의사 선생님이 그래요. ‘일단 제가 시키는 대로 약 잘 드셔주시고… 저 믿으세요.’
이 책을 읽고 나니 뉴스에서 보던 '수주 호황'이라는 단어가 다르게 읽혔습니다. 숫자 위로 쌓이는 선박과 해양 플랜트 뒤에는, 다단계 하도급 구조 속에서 누구의 책임도 되지 않는 채로 다치고 병드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습니다. 그리고 그 위험은 늘 가장 어리고 가장 급했던 사람에게 먼저 가 닿습니다.
조선업이나 건설업처럼 다단계 하도급이 흔한 산업 구조에 관심이 있는 분, 산업재해라는 단어를 뉴스 속 숫자가 아니라 한 사람의 목소리로 듣고 싶은 분, 그리고 '동정받을 자격이 있는 고통'과 '없는 고통'을 가르는 우리 사회의 시선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은 분들께 이 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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