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던 사람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모습을 뉴스에서 종종 봅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저 사람은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너무 잘나서 그렇게 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역사평론가 한정주가 쓴 《사기 인문학》을 읽으면서 2천 년 전 사마천이 《사기》에 남긴 사람 보는 눈이 지금의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걸 새삼 느꼈습니다.

목숨보다 중요한 일이 있던 사람
《사기》의 저자 사마천은 황제에게 미움을 사 궁형이라는 치욕적인 형벌을 받았습니다. 당시 그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벌금, 사형, 궁형 세 가지였습니다. 차라리 죽는 게 나을 법한 그 형벌을 받아들인 이유는 단 하나,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역사서 집필이라는 사명이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단 한 번 죽을 뿐이지만, 어떤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고 어떤 죽음은 깃털보다 가볍습니다. 죽음을 사용하는 방법이 다른 까닭입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제가 지금 하는 일의 무게를 가늠해봤습니다. 당장의 수치심이나 손해를 피하는 것과, 정말로 끝까지 해내야 할 일을 구분하는 기준이 저한테는 분명한지 되물어보게 됩니다. 사마천에게 그 기준은 명확했고 그래서 그는 치욕을 견디고 《사기》를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유능한 폭군이 몰락하는 이유
은나라 주왕은 타고난 지혜와 말재주가 뛰어난 인물이었습니다. 그 뛰어남이 자만으로 자라난 게 문제였습니다. 누구의 간언도 필요 없다고 여긴 주왕은 결국 귀신도 두려워하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하다가 나라를 멸망으로 이끌었습니다.
스스로 세상에서 가장 뛰어나고 지혜롭다고 자만하는 사람은 자신의 말과 행동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비판하는 사람을 가장 싫어합니다.
능력이 부족해서 실패하는 사람보다, 능력이 뛰어나서 아무 말도 듣지 않다가 실패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 책의 지적이 뜨끔했습니다. 저도 뭔가를 잘한다고 느낄 때 오히려 다른 사람의 지적을 더 쉽게 흘려듣는 순간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성공이 독이 된 패자의 최후
제나라 환공은 명재상 관중의 보좌를 받아 춘추시대 최초의 패자가 됐습니다. 그런데 관중이 죽자 그가 그토록 경계했던 간신들을 중용했고 환공이 죽은 뒤에는 그의 시신이 67일 동안이나 방치되는 비참한 결말을 맞았습니다.
성공은 그에게 큰 독이 되어 끔찍한 최후를 초래했던 것입니다.
성공하기 전에는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던 사람이, 성공한 뒤에는 똑같은 말을 귀찮아하는 경우를 저도 여러 번 봤습니다. 환공의 이야기를 보면 겸손이 가장 필요한 순간은 역설적으로 겸손할 필요가 없다고 느껴지는 순간입니다.
경청이 마음을 얻는다
주공 단은 어린 조카 성왕을 대신해 섭정하면서도 천자의 자리를 넘보지 않았고 늘 자신을 낮추며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 덕에 주나라는 3천 년 중국사에서 첫손에 꼽히는 태평성세를 이뤘습니다.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면 그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저는 회의 자리에서 제 생각이 맞다고 믿을 때 남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압니다. 주공처럼 권력을 다 가졌으면서도 경청하는 태도를 지키는 사람은 흔치 않습니다. 그래서 더 오래 존경받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혼자 잘난 사람과 사람을 모으는 사람
항우는 힘과 재주 모두에서 유방을 압도했습니다. 그런데 역사는 결국 유방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책은 그 이유를 둘의 성정 차이에서 찾습니다.
항우는 자신이 지닌 걸출한 힘과 재주만 믿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구하기보다 독단적으로 행동하는 편을 선호했습니다.
반면 유방은 별다른 재주가 없었기에 늘 사람의 도움이 필요했고 그래서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능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혼자 다 잘하는 사람보다 주변 사람을 잘 쓰는 사람이 결국 더 멀리 간다는 이야기, 조직에서 일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체감했을 것입니다.
체면 때문에 놓친 마지막 기회
해하 전투에서 대패한 항우는 고향으로 돌아가 다시 군대를 모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강을 건너기만 하면 재기할 수 있었는데도 그는 끝내 강을 건너지 않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하늘이 이미 나를 망하게 하는데 내가 왜 강을 건너겠는가! 내가 처음 군대를 일으켰을 때 강동의 젊은이 8천 명과 함께 강을 건너 서쪽으로 진격했는데, 지금 한 사람도 같이 돌아오지 못했다.
고향 사람들을 볼 면목이 없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체면을 지키려다 재기의 가능성 자체를 없애버린 셈입니다. 반면 유방은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체면 따위는 가볍게 내려놓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쪽이 더 인간적인가를 따지는 건 별개의 문제지만 어느 쪽이 살아남았는가는 분명합니다.
2천 년도 더 된 이야기인데 등장인물을 지금 회사나 뉴스 속 인물로 바꿔 넣어도 그대로 들어맞는다는 게 이 책을 읽는 내내 신기했습니다. 사람이 성공하고 몰락하는 방식은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가 봅니다. 이런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 역사 속 인물의 성공과 실패에서 삶의 교훈을 찾고 싶은 분
- 리더십이나 조직 생활에 대한 고민이 있는 분
- 《사기》를 읽어보고 싶었지만 방대한 분량에 부담을 느꼈던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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