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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역사

『가난이 조종되고 있다』, 가난은 게으름이 아니라 권력의 문제라고 말하는 책

by summaries 2026. 10.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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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에서 복지 예산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댓글창에는 비슷한 문장이 달립니다. "본인이 열심히 안 사니까 가난한 거다." 저도 한때는 그 말에 완전히 동의하진 않아도,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에드워드 로이스의 『가난이 조종되고 있다』를 읽으면서 이 질문을 제가 너무 쉽게 넘겨왔다는 걸 알았습니다. 미국의 빈곤 문제를 다루는 책이지만 "가난은 왜 생기고 왜 사라지지 않는가"라는 질문 자체는 국경을 가리지 않더군요.

『가난이 조종되고 있다』, 가난은 게으름이 아니라 권력의 문제라고 말하는 책 표지

가난은 게으름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의 문제다

저자는 책을 쓴 이유를 서문에서 분명히 밝힙니다. 가난한 사람 개개인의 결함이 아니라, 자원과 기회가 처음부터 불평등하게 분배되는 구조 자체를 들여다봐야 한다는 겁니다.

가난이 생기고, 지속되고, 악화되는 이유는 가난한 사람 개개인의 단점이나 결함 때문이 아니라 정치와 경제 권력의 재분배 면에서 불평등이 뿌리 깊고, 그 결과 필수 자원과 기회의 재분배조차 불평등해졌기 때문이다. 가난은 근본적으로 권력의 문제다.

이 문장을 읽고 나니, 제가 가난을 개인의 선택 결과로만 바라봤던 건 사실 가장 쉬운 설명을 고른 것뿐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군가의 형편을 그 사람의 성실성으로 환산해버리면, 더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없어지니까요.

부자 나라인데 왜 가난한 사람이 더 많을까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중 하나지만 빈곤율로 보면 선진국 사이에서 유독 높은 축에 속합니다. 책은 이 모순을 숫자로 짚습니다.

1990년대 중반, 미국의 전체 빈곤율은 부유한 여타 18개 선진국 평균 빈곤율의 2배를 넘었고, 아동과 노인의 빈곤율은 전 세계 평균의 약 3배에 달했다.

나라가 부유하다고 해서 그 부가 저절로 바닥까지 흘러가는 게 아니라는 걸, 이 통계가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결국 세금을 얼마나 걷고 어디에 쓰느냐 하는 정치적 결정이 빈곤율을 끌어올리기도, 끌어내리기도 한다는 게 책의 핵심 주장입니다.

선택의 폭이 좁은 사람에게 '잘못된 선택'이라는 말

가난한 사람들이 늘 나쁜 선택을 해서 가난이 이어진다는 말은 흔합니다. 책은 그 선택이라는 것이 얼마나 좁은 울타리 안에서 이루어지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줍니다.

아픈 아이를 두고 직장에 갈 것이냐 집에 남을 것이냐, 차를 수리할 것이냐 배관시설과 난방시설을 고칠 것이냐, 안과에 가느냐 치과에 가느냐 아니면 처방약을 타러 가느냐, 생필품을 사느냐 아니면 집세를 밀리지 않고 내느냐, 카드빚을 늘리느냐 아니면 아이들에게 선물이나 옷을 사주고 영화 보는 일을 단념하고 참을 것이냐, 투잡을 뛰느냐 아이들 교육에 더 신경을 쓰느냐 아니면 지역 정치에 참여하느냐, 주변 환경이 좋은 더 나은 집을 구하느냐 아니면 은퇴를 대비해 저축을 하느냐.

이 목록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저라면 저 중 몇 개나 한꺼번에 떠안지 않고 살아왔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자원이 한정된 상태에서 내리는 선택은 애초에 '나쁜 선택'과 '좋은 선택'으로 나눌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어느 쪽을 포기해도 손해인 딜레마에 가깝습니다.

최저임금은 오르지 않는데 사장님 연봉은 왜 저렇게 뛸까

최저임금이 물가를 따라가지 못하는 동안 다른 쪽의 소득은 전혀 다른 속도로 불어났습니다. 책은 이 격차를 하나의 숫자로 압축합니다.

1968년에서 2004년까지, 기업 수익은 85% 증가한 반면 최저임금은 41% 감소했다. 그리고 1980년에서 2004년까지, 최저임금 대비 기업 최고경영자(CEO)의 평균 소득은 97배에서 952배로 급증했다.

같은 36년 동안 한쪽은 두 배 가까이 불어나고 다른 쪽은 반 토막이 났다는 건, 시장이 저절로 그렇게 움직인 결과가 아니라 누군가는 지키고 누군가는 지키지 못한 협상의 결과라는 뜻입니다. 책은 이 지점에서 노동조합의 힘이 약해진 것과 최저임금이 오르지 않는 것이 같은 흐름 위에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도 완전히 무력하지는 않다

책은 구조적인 문제를 말하면서도 손을 놓으라고 하지 않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지장을 초래하는 힘'이 있다고 짚습니다.

근로자, 소비자, 세입자, 학생, 복지 수혜자, 지역사회 주민으로서 우리는 모두 협력과 합의, 상호의존이라는 하나의 망에 얽혀 있고, 이 연결망은 우리의 지속적인 참여와 지지가 있어야 계속해서 존재할 수 있다.

이 책을 덮으면서 가장 오래 남은 건 숫자보다 이 문장이었습니다. 혼자서 임금 체계나 세금 정책을 바꿀 수는 없지만 최저임금 인상 운동이 140개가 넘는 도시에서 실제로 성공했다는 책 속 사례를 보면, 무력하다고 느꼈던 지점이 생각보다 더 많이 열려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미국 이야기이긴 하지만 가난을 그 사람의 문제로만 돌리고 넘어가지는 않았는지 스스로 돌아보고 싶은 분들, 뉴스에 나오는 복지 논쟁을 숫자로 한 번 짚어보고 싶은 분들께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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