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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역사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알고리즘은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여준다

by summaries 2026. 10.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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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알고리즘이 추천해주는 영상만 보다 보면, 어느 순간 세상 모든 사람이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반대로 댓글창에서 전혀 다른 의견을 마주치면 "저 사람들은 대체 어느 세상에 사는 거지" 싶어지기도 합니다. 뉴욕타임스 서평가 미치코 가쿠타니가 쓴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는 2018년, 트럼프 집권 1년 차의 미국을 들여다보며 이 분열의 뿌리를 추적한 책입니다. 미국의 특정 정치 상황을 다루고 있지만 가짜 뉴스와 확증편향, 필터버블을 설명하는 대목은 지금 여기의 소셜미디어 환경과도 묘하게 겹쳐 보입니다.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알고리즘은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여준다 표지

이건 사과인데, 자꾸 바나나라고 외치면

책의 서두에는 CNN이 만든 짧은 광고 문구가 나옵니다.

이것은 사과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게 바나나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그들은 ‘바나나, 바나나, 바나나’라고 거듭거듭 소리칠지 모릅니다. 온갖 모자에다 ‘바나나’라고 써넣을지도 모르죠. 그럼 여러분은 이게 바나나라고 믿기 시작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건 바나나가 아닙니다. 이건 사과입니다.

단순한 문구지만 이 책 전체가 결국 하려는 말이 여기 다 들어 있습니다. 거짓이라도 충분히 큰 목소리로, 충분히 여러 번 반복되면 사람들은 그걸 사실처럼 받아들이기 시작합니다.

사실과 허구의 차이가 사라진 사람들

가쿠타니는 한나 아렌트가 1951년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쓴 문장을 꺼내 들며 논의를 시작합니다.

전체주의 지배의 이상적인 대상은 확신에 찬 나치당원이나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사실과 허구의 차이(경험의 실재성), 진짜와 가짜의 차이(사고의 기준)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

무서운 건 이 말이 70년 전 전체주의 체제를 설명하기 위해 쓰였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이 사실 여부에 무관심해지는 순간, 누가 집권하느냐보다 더 근본적인 것이 흔들린다는 경고로 이 책은 시작합니다.

내 편이 아니면 부도덕한 사람이 되는 구조

책이 설명하는 '부족 정치'는 단순한 정치 성향 차이를 넘어섭니다. 퓨연구센터 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자 70%가 공화당 지지자를 "다른 미국인들보다 더 편협하다"고 답했고, 공화당 지지자의 거의 절반이 민주당 지지자를 "더 게으르다"고 답했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정책에 대한 의견 차이가 아니라 상대방의 인격 자체를 믿지 않게 된 것입니다. 법학자 캐스 선스타인은 이런 집단의 작동 방식을 이렇게 요약합니다.

그 집단 바깥의 정보와 견해는 의심받을 수 있고, 이런 이유로 집단의 일원들이 이야기를 계속 나눌수록 양극화 과정을 방해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만 계속 이야기를 나누면, 바깥의 반대 증거는 점점 더 쉽게 무시할 수 있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건 꼭 미국 이야기만은 아닐 겁니다. 단체 채팅방이나 커뮤니티에서 비슷한 경험, 한 번쯤 해보셨을 것 같습니다.

알고리즘은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여준다

책에서 가장 섬뜩했던 부분은 인터넷 활동가 엘리 패리저가 설명하는 '필터버블'이었습니다. 같은 단어로 검색해도 사람마다 전혀 다른 결과를 보게 된다는 겁니다.

갈수록 우리 컴퓨터 모니터는 일종의 한 방향 거울이 된다. 알고리즘이 우리가 무엇을 클릭하는지 지켜보면서 우리 관심사를 반영한다.

검색 엔진이나 뉴스피드가 내 기존 생각을 계속 확인시켜주기 때문에 내 생각이 편향됐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기 어려워집니다. 패리저는 2011년 테드 강연에서 이렇게 당부했습니다.

만약 알고리즘이 우리 세계의 관리자 역할을 한다면, 우리가 보고 싶은 것과 보고 싶지 않은 것을 결정한다면, 연관성에만 맞출 게 아니라 우리에게 불편하거나 이의를 제기하거나 중요한 다른 견해 또한 확실히 보여주게 해야 합니다.

저마다의 사실을 가질 권리는 없다

이 책이 반복해서 강조하는 문장 하나를 꼽자면, 사회학자 대니얼 패트릭 모이니핸의 말입니다.

모든 사람이 저마다의 의견을 가질 권리가 있는 것이지, 저마다의 사실을 가질 권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의견은 다를 수 있습니다. 같은 뉴스를 보고도 해석은 갈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어떤 일이 실제로 일어났는지, 숫자가 몇인지 하는 사실 자체는 모두에게 똑같아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출발점입니다. 요즘처럼 같은 사건을 두고도 서로 완전히 다른 '팩트'를 들이대는 장면을 자주 보게 되는 시절에, 생각해볼 만한 구분이라고 느꼈습니다.

이 책은 미국 독자를 향해 쓰였고 트럼프라는 특정 인물과 사건들을 집중적으로 다루지만 가짜 뉴스에 분노하기보다 먼저 "나는 왜 이걸 믿고 싶었을까"를 돌아보게 만든다는 점에서 끝까지 손에서 놓기 어려웠습니다. 이런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 SNS 뉴스피드만 보고 세상 여론을 판단하는 게 불안한 분
  • 가족·지인과 정치 얘기만 하면 매번 싸움이 나는 분
  • 가짜 뉴스가 왜 이렇게 잘 퍼지는지 구조적으로 이해하고 싶은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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