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밤늦게 동네를 걷다가 무인매장이나 키오스크만 켜져 있는 가게 앞을 지나칠 때가 많습니다. 분명 조명도 켜져 있고 물건도 가득 진열돼 있는데, 사람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 순간 묘하게 서늘해지는 기분, 저만 느끼는 건 아닐 겁니다. 반대로 어떤 날은, 아무도 없어야 할 자리에 뭔가가 '있다'는 느낌에 소름이 돋기도 합니다. 있어야 할 게 없는 느낌과, 없어야 할 게 있는 느낌은 사실 전혀 다른 종류의 섬뜩함입니다. 영국의 문화이론가 마크 피셔는 이 두 가지를 각각 '으스스한 것(the eerie)'과 '기이한 것(the weird)'이라 부르고 그 둘을 실마리로 우리 삶을 실제로 움직이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 힘에 대해 묻습니다.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 기이한 것
피셔는 기이한 것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기이한 것이란 특정한 형태의 동요라고 말하고 싶다. 여기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감각이 포함된다. 기이한 존재 혹은 대상은 너무나 이상해서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고, 혹은 적어도 여기에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느끼게 한다.
저는 이 대목을 읽으며 얼마 전 우연히 본 AI 합성 영상 하나를 떠올렸습니다. 눈, 코, 입은 전부 멀쩡히 있는데 어딘가 미묘하게 어긋나 있어서 자꾸 다시 돌려보게 되더군요. 무섭다기보다 자꾸 들여다보고 싶은 쪽으로 마음이 끌렸습니다. 피셔에 따르면 러브크래프트의 괴물들이 독자를 끌어당기는 이유도 비슷합니다. 세상을 이해하던 틀이 더 이상 맞지 않는다는 걸 깨닫는 순간, 그 불편함 속에는 이상하게도 매혹이 함께 섞여 있다는 것입니다.
벽 너머를 향한 갈망
책에는 H. G. 웰스의 단편 「벽에 난 문」이 나옵니다. 한 소년이 런던 길거리에서 초록색 문을 발견하고 그 문 너머 정원에서 충만한 행복을 맛봅니다. 하지만 어른이 된 그는 그 문을 몇 번이나 다시 마주치면서도 번번이 바쁜 일 때문에 지나쳐 버리고 결국 평생 그 아쉬움을 안고 살아갑니다.
“오! 그 돌아올 때의 비참함이라니!”
이 한 줄을 보면서 저는 야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어느 밤을 생각했습니다. 분명 특별히 나쁜 일이 있었던 날도 아닌데, 그냥 똑같은 하루를 또 반복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가슴이 답답해졌던 밤이었습니다. 기이한 것이 늘 공포로만 다가오는 건 아닙니다. 가끔은 지금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 대한 갈망의 형태로도 찾아옵니다.
보이지 않지만 가장 강력한 것
피셔는 으스스한 것의 사례로 뜻밖에도 자본을 꼽습니다.
자본이란 모든 면에서 으스스한 존재이다. 무(無)에서 튀어나왔음에도 어떤 물리적 실체보다 더 강력한 영향력을 미친다.
이 문장을 읽고 나니, 제가 매일 들여다보는 쇼핑 앱이나 뉴스 피드가 왜 하필 그 상품, 그 기사를 저에게 보여주는지 한 번도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분명 어떤 힘이 작동해서 제 하루를 조금씩 바꾸고 있는데, 저는 그 힘의 얼굴을 본 적이 없습니다. 월세나 물가가 오르는 이유를 설명하는 뉴스를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원인은 있다고 하는데, 그 원인이 구체적으로 어디서 작동하는지는 늘 안개 속에 있는 느낌입니다.
텅 빈 유적 앞에서
피셔는 스톤헨지나 이스터 섬의 석상 앞에 섰을 때의 감정을 으스스한 것의 두 번째 유형으로 설명합니다.
우리는 또 다른 의문들에 직면한다. 여기서 문제는 이 구조물들을 창조한 이들이 왜 사라졌는지가 아니라─여기에는 수수께끼가 존재하지 않는다─사라진 무엇의 본질이다.
저는 이 대목에서 거창한 유적이 아니라 동네 골목의 문 닫은 가게들을 떠올렸습니다. 간판은 그대로 남아 있는데 안은 텅 비어 있는 곳들 말입니다. 왜 문을 닫았는지는 대략 짐작이 가지만 그 안에서 몇 년을 지냈을 사람들이 어떤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는지는 끝내 알 수 없습니다. 사라진 이유보다 더 오래 남는 건, 사라진 그 사람 자체에 대한 물음표인 듯합니다.
우리 안에서 작동하는 낯선 힘
후반부에서 피셔는 프로이트의 죽음 충동을 빌려, 가장 으스스한 대상은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이라고 말합니다.
타나토스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 자신이야말로 으스스한 것의 전형적인 사례가 된다. 우리 안에는 어떤 힘이 작용하고 있지만(무의식, 죽음 충동), 그 힘은 우리가 예상하는 곳에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가 예상하는 무엇도 아니다.
분명히 그만두기로 마음먹은 습관을 어느새 또 반복하고 있거나, 가족에게서 보던 어떤 태도를 저도 모르게 그대로 따라 하고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제 안에 저보다 더 오래된 무언가가 따로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나를 조종하는 게 꼭 나 하나만은 아니라는 감각, 그것이 바로 이 책이 말하는 으스스함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 있는 것 같습니다.
수수께끼를 안고 사는 법
책의 마지막 장은 조앤 린제이의 소설 『행잉록에서의 소풍』을 다룹니다. 소풍을 나간 여학생들이 바위산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끝내 그 이유는 밝혀지지 않습니다.
그들은 사라졌으며, 그들의 실종은 잊을 수 없는 공백, 외부 세계에 대한 으스스한 암시를 남길 것이다.
피셔는 이 풀리지 않는 결말을 굳이 서둘러 봉합하지 않습니다. 저도 이 책을 덮으면서 제 삶에도 끝내 설명되지 않은 채로 남겨 둔 일들이 있다는 걸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걸 이유 붙여 정리하려는 습관을 잠깐 내려놓고 그 공백을 그대로 바라보는 것. 이 책이 제게 남긴 건 정답이 아니라 그런 태도였습니다.
당신의 하루에도 이유를 알 수 없이 서늘했던 순간이나, 자꾸 눈길이 가는 이상한 장면이 있었나요? 그 감각을 서둘러 설명하려 하지 않고 잠시 들여다보고 싶은 분들에게 이 책을 권합니다.
-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내 삶을 흔드는 힘(자본, 알고리즘, 가족력)에 대해 한 번쯤 제대로 생각해보고 싶은 분
- 공포영화보다 이상하게 홀리는 이야기 쪽에 더 끌리는 분
- 모든 일에 깔끔한 설명을 붙이려는 습관을 잠깐 내려놓고 싶은 분
- 마크 피셔의 『자본주의 리얼리즘』을 읽고 그의 다른 글이 궁금해진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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