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만 있으면 누구든 성공할 수 있다." 저도 꽤 오랫동안 이 말을 별 의심 없이 믿었습니다. 노력한 사람이 보상받는 게 당연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노력이 부족했을 거라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토머스 프랭크의 『민주당의 착각과 오만』을 읽으면서 제가 믿어 온 그 "공정함"이 누군가에게는 아주 편리한 핑계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책은 미국 민주당 이야기입니다.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노동자와 서민을 대변하겠다던 정당이 어떻게 변호사와 금융인, 명문대 졸업생들의 정당으로 바뀌어 갔는지를 추적합니다. 저는 책을 읽으며 굳이 한국의 특정 정당이나 인물을 떠올리려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이 책이 정말로 묻고 있는 질문에 머물러 보았습니다. 좋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왜 가난한 사람을 구하지 못했을까, 하는 질문 말입니다.

"민중의 정당"이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저자는 197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68년 대선에서 패배한 민주당은 당을 개혁하겠다며 맥거번 위원회를 꾸렸습니다. 여성과 소수자, 젊은 층의 비율을 당 대표단에 의무적으로 반영하는 좋은 변화도 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당의 가장 오래된 지지층이던 노동조합의 자리는 조용히 사라졌습니다. 그 자리를 채운 것은 대학을 나온 전문직 종사자들이었습니다. 저자는 이것이 우연이 아니라 당시 민주당 전략가들이 직접 글로 남긴 선택이었다고 말합니다.
불평등 문제는 민주당의 현재 지도부가 어떤 사람들인지를 보여 주는 거울이다. 불평등 문제는 그들의 자기 인식과 직결된 문제이다.
이 대목을 읽으며 제 주변을 돌아봤습니다. 제가 믿고 지지하는 쪽이 정말 저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을 대변하고 있는지, 아니면 저와 비슷한 "학력"과 "말투"를 가진 사람들을 대변하고 있는 건 아닌지, 솔직히 자신 있게 답하기 어려웠습니다.
"학교만 열심히 다니면 된다"는 그 말
책에서 가장 많이 반복되는 문장이 있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능력에 걸맞은 보수를 받고 있으며, 당신에게 걸맞은 보수란 당신이 학교생활을 어떻게 했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빌 클린턴이 입버릇처럼 했던 말입니다. 저자는 이 말이 불평등을 완화하는 전략이 아니라 정당화하는 방편이었다고 지적합니다. 학위가 없는 사람의 가난은 제도의 실패가 아니라 그 사람 개인의 실패로 치환되기 때문입니다.
불평등 문제는 제도가 실패했기 때문이 아니라 바로 당신이 실패했기 때문이다.
오바마 정부에서 국가 경제 위원회를 이끌었던 래리 서머스의 말은 더 솔직합니다.
우리 사회에 불평등 문제가 증가했다면 그 원인 중 하나는 사람들이 마땅히 대우받아야 할 방식에 더욱 가깝게 대우받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저는 이 문장을 읽고 한참 멈춰 있었습니다. "능력에 맞는 대우"라는 말이 이렇게 쓰일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당신은 혹시 누군가의 가난을 보며 "저 사람이 노력을 덜 했겠지"라고 조용히 생각해 본 적 없으신가요. 저는 있습니다.
학위가 없으면 누구 탓도 할 수 없는 도시
저자는 민주당이 압도적으로 우세한 매사추세츠 주 보스턴을 예로 듭니다. 대학과 벤처 자본, 생명 공학 기업이 몰려 있는 이 도시는 "혁신"을 숭배합니다. 자전거 도로와 예술 거리, 스타트업 인큐베이터가 넘쳐 납니다. 그런데 불평등 지표로 보면 매사추세츠는 미국에서 가장 불평등한 주에 속합니다. 공화당이 막은 것이 아니라 진보적인 사람들이 스스로 설계한 결과였습니다.
만약 보스턴에 사는데 학위가 없다면 당신은 자신 말고는 다른 누구도 탓할 자격이 없는 셈이다.
이 문장이 유독 마음에 걸렸던 건, 저 역시 "자기 계발"과 "역량 강화" 같은 말을 들을 때마다 왠지 안심이 됐던 기억 때문입니다. 내가 노력하면 바뀔 수 있다는 믿음은 위로가 되지만 그 믿음이 내 윗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책임을 면제해 주는 알리바이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이 책에서 처음 생각해 보았습니다.
혁신이라는 이름의 해고 통지서
우버와 에어비앤비 같은 "공유 경제"는 진보 정치인들에게 열렬한 환호를 받았습니다. 저자는 이들이 만들어 낸 것이 대부분 안전 규정이나 노동법을 우회하는 방법일 뿐, 새로운 가치가 아니라고 지적합니다. 크라우드 워킹 업체의 한 대표는 이 구조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인터넷이 등장하기 이전에는 사람을 구하고, 10분 동안 일을 시키고, 그 10분이 지났을 때 해고하기가 무척 까다로웠을 것이다. 하지만 첨단 기술의 도움으로 당신은 이제 실제로 사람을 구하고, 그들에게 적은 보수를 지불하고,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었을 때 그들을 처분할 수도 있다.
이 말을 소개하는 어투가 자랑스럽다는 게 더 무섭게 느껴졌습니다. 우리도 "유연한 고용", "플랫폼 노동" 같은 말을 자주 씁니다. 그 말이 누구의 입장에서 유연한 건지, 저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 한 번도 제대로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선한 사람들의 자선, 닿지 않는 바닥
책 후반부는 힐러리 클린턴을 다룹니다. 저자는 그녀의 선의 자체를 의심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선의가 향하는 방향을 묻습니다. 국무 장관 시절의 소액 대출 운동, 클린턴 재단의 각종 행사는 모두 "여성 기업가의 역량 강화"를 말합니다. 하지만 복지 개혁으로 무너진 미국의 가장 가난한 여성들에게는, 그런 행사 어디에서도 자리가 없었습니다.
요컨대 현대 진보주의가 한 일은 이렇다. 규제를 받지 않는 선(善)의 거래를 통해 인류의 한 계급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정해진 의식에 따라 다른 계급의 죄를 사면해 준다.
저는 이 대목에서 조금 불편했습니다. 저도 기부를 하고 좋은 일에 마음이 움직이고 선한 행동에 뿌듯함을 느낍니다. 그런데 그 뿌듯함이 정작 더 어려운 질문, 즉 "왜 이 사람들은 가난한가"라는 질문을 피해 가는 방식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자 동네에서 바라본 풍경
저자는 클린턴과 오바마가 해마다 휴가를 보낸 섬 마서스비니어드와, 1990년대에 노동 쟁의가 벌어졌던 공업 도시 디케이터를 나란히 놓습니다. 디케이터를 지배하는 기업의 최고경영자는 평범한 노동자보다 약 261배를 법니다. 같은 나라, 같은 시대의 두 풍경입니다.
그 번지르르하고 매끄러운 진보주의자들의 선(善) 의식이 깨진 다음에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당과 국가의 경로가 바뀔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일은 그 문제가 우리라는 사실을 깨달은 이후에만 가능할 것이다.
저자가 말하는 "우리"는 미국 진보 진영을 가리키지만 저는 이 문장을 읽으며 제 자신의 "우리"는 누구인지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내가 속한 쪽이 옳다고 믿는 마음과, 그 믿음이 실제로 누구를 돕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일은 전혀 다른 작업이라는 걸, 이 책이 계속 일러 주었습니다.
이 책은 미국 정치 이야기지만 던지는 질문은 국경을 가리지 않습니다. 내가 지지하는 쪽이 정말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을 대변하고 있는지, 아니면 나와 비슷한 학력과 말투를 가진 사람들의 모임으로 좁아지고 있는지, 한 번쯤 스스로에게 물어볼 만한 책입니다. 이런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 "공정"이나 "능력주의"라는 말에 자주 걸려 멈춰 서는 분
- 내가 지지하는 정치 세력이 정말 누구를 대변하는지 궁금한 분
- 선의로 하는 일이 왜 세상을 바꾸지 못하는지 답답했던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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