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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 빛나는 오늘
에세이·라이프

이유 없이 마음이 가라앉는 밤, 저는 낯선 방 하나를 떠올립니다

by summaries 2026. 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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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나쁘지 않은 하루였는데 설거지를 마치고 소파에 앉으면 괜히 마음이 내려앉는 밤이 있습니다. 딱히 슬픈 일도, 화날 일도 없었는데 말이죠. 그런 밤마다 저는 『아무튼, 게스트하우스』를 꺼내 듭니다. 약사이자 두 아이 아빠인 저자 장성민이 지난 20여 년간 세계 곳곳의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사람들과 순간들을 담은 에세이입니다. 근사한 여행 자랑 대신 낯선 침대에 누워서야 비로소 보이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라서 자꾸 손이 갑니다.

이유 없이 마음이 가라앉는 밤, 저는 낯선 방 하나를 떠올립니다 표지

이유 없는 우울, 도망칠 곳 하나

책은 아무 이유 없이 우울이 찾아오는 밤에서 시작합니다. 아이를 재우고 아내와 맥주 한잔하고 돌아보면 부족할 것 없는 하루였는데도 저자는 이상하게 가라앉습니다. 화가 날 이유도 슬퍼할 이유도 찾지 못해 더 답답한 그 감정을 그는 이렇게 적습니다.

명백한 이유가 있다면 나을 것 같다.

저도 비슷한 밤이 있습니다. 이유를 찾으면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유가 없으니 그냥 견디는 수밖에 없는 밤 말입니다. 저자는 그런 순간마다 예전 인도의 어느 게스트하우스에서 낯선 이들과 밤새 이야기를 나누다 울어버렸던 기억을 꺼내 스스로를 다독입니다. 꼭 해결하지 않아도, 마음속에 도망칠 곳 하나를 품고 있는 것만으로 밤은 조금 수월하게 지나갑니다.

“사랑받는 느낌이 드는 방”을 고르는 감각

저자가 게스트하우스를 고르는 기준은 시설도 가격도 아닙니다. 방문을 열었을 때 드는 느낌 하나입니다.

들어섰을 때 따뜻하고 사랑받는 느낌이 드는 방이 가끔 있는데 그런 방을 잡을 수 있다면 그 여행은 반 이상 성공이다.

생각해보면 저도 집을 구할 때, 일을 고를 때 결국 비슷한 감각에 기댔던 것 같습니다. 조건표로는 설명이 안 되는 그 느낌 말입니다. 화려한 조건보다 내가 어디서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인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는 걸, 저자는 낯선 방문을 여는 순간마다 다시 배우는 것 같습니다.

도미토리를 떠나보내며 배운 것

젊을 때 저자는 도미토리를 사랑했습니다. 좁고 시끄럽지만 그 덕에 낯선 이들과 금방 친구가 됐으니까요. 그런데 삼십대 후반, 상하이의 옛 유스호스텔을 다시 찾았다가 코골이 때문에 룸메이트와 부딪히고 결국 짐을 싸 나옵니다.

세월은 가차 없이 흐른다. 어떤 것들은 가고 어떤 것들은 남는다.

좋아했던 방식을 더는 편하게 즐기지 못하게 됐다는 걸 알아채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조금 쓸쓸합니다. 예전엔 밤새 놀아도 끄떡없던 몸이, 예전엔 아무렇지 않던 낯선 사람과의 방이 이제는 버거워지는 것처럼요. 그걸 억지로 부정하지 않고 그냥 인정하는 저자의 태도가 오히려 편안해 보였습니다.

겁먹지 마, 똔 삐어 뿌시

캄보디아·태국 국경을 걷다가 저자는 멕시코 친구 마누엘과 함께 노점에서 음료수를 사 마십니다. 그런데 지나가던 유럽 여행자들이 바가지라며 시비를 겁니다. 저자는 늘 그렇듯 대충 얼버무리며 넘어가려 하지만 마누엘은 대신 화를 내고는 그의 양팔을 잡고 이렇게 말합니다.

헤이, 똔 삐어 뿌시.(겁쟁이처럼 굴지 마.)

저도 불편한 상황에서 그냥 웃으며 넘어가는 쪽입니다. 굳이 부딪히지 않으려는 습관인데, 가끔은 그게 자신감 부족을 얼버무리는 방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소한 순간에도 내 의견을 밝히는 연습, 그런 작은 용기가 어쩌면 저에게 필요한지도 모르겠습니다.

꼰대가 되지 않는 법

라다크의 한 게스트하우스, 음악을 틀고 즐겁게 놀던 자리에 술 취한 중년 남자가 끼어들어 분위기를 깹니다. 다들 그를 밀어내고서야 겨우 파티를 이어가는데, 옆에 있던 선배가 낮은 목소리로 말합니다.

야 봤지. 조심해야 돼. 꼰대 되는 거 한순간이야. 우리도 이제 자칫하면 저렇게 되는 거야.

나이 들수록 후배들 앞에서 나도 모르게 내 생각을 강요하고 있진 않은지 돌아보게 되는 대목이었습니다. 꼰대가 되는 게 두려워서 아예 입을 닫는 것도 답은 아니겠지만 최소한 지금 이 순간을 눈치챌 수는 있어야겠다 싶었습니다.

우리 집이 게스트하우스가 되었을 때

약국을 개업하고 미군기지 근처 낯선 동네로 이사한 저자는 외로움에 매 주말 친구들을 불러들입니다. 처음엔 즐거웠지만 손님이 끊이지 않자 서서히 지쳐가고 어느 날 문득 자신이 돈 안 받는 게스트하우스 주인처럼 살고 있다는 걸 깨닫습니다.

우리는 안 보면 보고 싶고, 옆에 오래 있으면 떠나 보내고 싶은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명절이나 연말마다 손님을 치르고 나면 유독 진이 빠지는 이유를 이 문장에서 찾았습니다.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과 거리를 두고 싶은 마음이 같이 있어도 이상한 게 아니라는 것, 그 둘을 인정해야 오히려 관계가 오래간다는 걸 이 책에서 배웠습니다.

이런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이유 없이 마음이 가라앉는 밤이 잦은 분, 예전만큼 사람 만나는 일이 편하지 않아진 걸 느끼는 분, 낯선 사람과 나눈 짧은 대화에서 뜻밖의 위로를 받아본 적 있는 분이라면 이 책이 반가울 겁니다.

당신에게도 그런 게스트하우스가 있나요? 잠시 도망칠 수 있는 낯선 방, 혹은 낯선 마음 하나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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