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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라이프

『엄마의 언어로 세상을 본다면』, 엄마들은 왜 늘 아이에게 미안하다고 말할까

by summaries 2026. 9.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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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금요일이 추석입니다. 부모님 댁에 가는 분도, 가족을 맞이하는 분도 계실 텐데, 저는 연휴 전에 이현미 기자의 『엄마의 언어로 세상을 본다면』(부키)을 읽었습니다. 《세계일보》에 연재한 「엄마도 처음이야」를 일부 토대로 한 육아 에세이인데, 읽다 보니 엄마와 딸, 아내와 며느리라는 자리의 기록에 가까웠습니다.

엄마라면 그래야 하는데, 이상하네

저자는 출산 직후 미혼인 지인에게 "정말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정도로 아이가 예뻐 보여?"라는 질문을 받고 고개를 갸웃했다고 씁니다. 그때는 '엄마라면 그래야 하는데 이상하네' 싶었고 애정이 쌓인 뒤에야 같은 질문에 곧바로 그렇다고 답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모성을 이렇게 나눠 봅니다.

내가 생각하는 모성은 시간과 함께 깊어지는 애정이지만 사회에서는 모성을 본능적인 것, 선험적인 것, 그 무엇보다 앞서는 헌신과 희생으로 규정했다.

본능이라는 말이 붙으면 그렇게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를 탓하게 됩니다. 저자가 그랬습니다.

모성 신화는 언제부터 이렇게 무거워졌을까

저자는 윤택림의 『한국의 모성』을 끌어와 모성이 시대마다 달랐다고 짚습니다. 조선시대 여성에게는 어머니보다 며느리 역할이 더 무거웠고 희생적이고 강한 어머니상은 한국전쟁 이후에 등장했다고 합니다. 남성이 생계를, 여성이 가사와 육아를 맡는 분업은 1960~70년대에 본격화됐고요. 이후 맞벌이 가구가 늘었는데도 '엄마 책임'이라는 인식은 그대로라고 저자는 진단합니다.

이 모든 게 엄마의 역할이고 아이의 문제는 엄마 탓이고, 심지어 아이가 조금 더 크면 학업의 결과까지도 엄마의 책임으로 돌리는 모성 신화 사회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도 다 그렇게 키웠다"는 윗세대의 말은 요즘 엄마가 받는 압박이 과거 어느 때보다 크다는 점을 놓친다고도 씁니다.

미안함의 공식

복직한 뒤 퇴근하면 "얘 낮잠 잤어? 얼마나 잤어?"부터 묻던 자신을 저자는 떠올립니다. 모유 수유를 중단한 뒤로 죄책감이 시작됐습니다. 아이를 맡기고 쉴 때나 졸다 깼더니 아이가 TV를 보고 있을 때도 미안했다고 합니다. 그 마음을 들여다보니 공식이 하나 있었습니다.

나는 ‘엄마의 편의를 곧 아이에 대한 소홀’로 생각하고 있었다.

저자는 모성 이데올로기를 다룬 신송이 씨의 박사학위 논문을 읽고 나서야 숨을 돌렸습니다. 엄마에게 요구하는 역할이 너무 많고 기준이 높은 건 아닌지 묻게 됐고 자기만의 양육 원칙을 세웠다고 합니다. 같은 죄책감을 안고 사는 엄마들에게는 이렇게 말합니다.

늘 죄책감에 시달리는 엄마들에게 나는 이런 말을 전하고 싶다. 우리는 조금 더 자기편이어도 된다고. 조금 더 자신을 챙겨도 된다고.

명절 밥상 앞에서 저자가 본 풍경

추석 주간에 가장 눈에 들어온 장은 「여자는 부엌 안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였습니다. 저자는 외숙모가 만두소를 내면 외삼촌과 아이들이 함께 만두를 빚던 외가와, 남자들은 음식을 준비하는 동안 얼굴도 비치지 않다가 차려진 차례상에 절만 하던 친가를 나란히 놓습니다. 결혼 뒤 시댁에서는 시어머니가 일을 대부분 하셨는데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고 합니다.

문제는 명절 노동에 왜 여자들만 동원돼야 하는지, 남편에게 주어진 저 자유로움의 권한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내 삶은 결혼으로 인해 더 나아진 게 맞는지 등의 문제의식이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친척 언니가 시댁에서 하루 종일 일하는데 늦게 도착한 윗동서가 "동서, 점수 좀 땄겠네?"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어머니에게 들은 대목도 나옵니다. 어머니는 말을 그렇게 하느냐고 하셨고 저자도 같은 생각이었지만 더 크게 본 것은 구조였습니다.

엄마, 근데 가장 큰 문제는 여자들끼리 이런 신경전을 하게 만드는 이 사회의 문화가 아닐까?

누구 잘못인지 가리기보다 구조를 묻는 쪽이라 읽기가 편했습니다. 저자가 바라는 것은 가족이 함께 음식을 준비하는 명절입니다. 아들에게 살림을 가르치겠다는 다짐도 거기서 나옵니다.

육아가 불러낸 어린 시절

제가 가장 오래 붙잡은 대목은 부모님 이야기였습니다. 저자의 아버지는 술과 폭언으로 가족을 힘들게 했고 어린 저자는 어머니와 이모네로 피신하는 밤을 여러 번 겪었습니다. 결혼과 출산에 비관적이었던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이를 키우면서 그 기억이 다시 올라왔습니다.

육아는 성장 과정의 상처를 마주하는 과정이었다. 어린 시절의 상처는 어떤 형태로든 나타나 자녀 양육에 영향을 미친다.

마음이 풀린 계기는 손주 앞에서 달라진 아버지의 모습이었습니다.

자녀에게는 쑥스러워서, 부끄러워서, 바빠서, 혹은 아이의 사랑스러움을 잘 몰라서 드러내지 못했던 마음을 손주에게는 솔직하게 보여 주었다. 나와 아빠는 수십 년간 서로에게 애정 표현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아이는 나로 하여금 부모님을 다시 바라보게 했다.

다 화해했다고 매듭짓는 글은 아닙니다. 가끔 원망이 고개를 들기도 하지만 조금 늦게라도 아빠를 좋아하게 돼서 다행이라고 쓸 뿐입니다. 명절에 부모님 앞에서 마음이 복잡해지는 분이라면 이 대목이 오래 남을 것 같습니다.

아빠도 처음이었고, 육아는 외톨이가 됐다

남편 이야기도 나옵니다. 출산 후 처음 부부만 남은 일요일, 시어머니를 터미널에 모셔다드리러 나간 남편이 친구와 휴대폰을 보러 가느라 늦었습니다. '우리끼리'가 아니라 '나 혼자'가 됐다며 서러웠던 날입니다. 나중에 저자는 그날의 남편을 이렇게 돌아봅니다.

나뿐 아니라 남편도 초보 아빠였다. 그걸 일찍 깨달았다면 좀 더 너그럽게 남편을 대했을 텐데.

마지막 장은 시선을 집 밖으로 돌립니다. 저자가 보는 오늘의 육아는 개인이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입니다.

오늘날의 부부에게는 이러한 ‘가족 사회’가 없다. 오로지 부부 두 사람의 힘으로 아이를 키워야 한다. 외톨이 육아의 시대인 것이다.

이 장은 "이제는 사회가 육아를 도와야 한다"는 말로 끝납니다.

마무리하며

책을 덮고 나서 엄마들의 입에 '미안하다'가 왜 그렇게 붙어 있는지 생각했습니다. 저자의 답은 엄마 개인의 부족함이 아니라 사회가 엄마에게 얹어 온 기준과 그걸 혼자 감당하게 둔 구조였습니다. 이번 연휴에 가족을 만난다면 이런 질문을 들고 가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 우리 집 명절 음식 준비와 설거지는 누가, 어떻게 나눠 하고 있는가
  • 육아 중인 가까운 사람에게 "잘하고 있어"라는 말을 해 준 적이 있는가
  • 부모님이 미처 표현하지 못한 마음이 있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육아 중인 분, 명절 준비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던 분, 부모님과의 관계를 다시 보고 싶은 분께 권합니다. 다만 가정폭력과 부모의 갈등 같은 무거운 가족사가 나오는 책이라 연휴 직전에 읽기에는 마음이 가라앉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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