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글로 빛나는 오늘
에세이·라이프

쉰 살에 경차로 바꾸고 알게 된 것들 - 《매운 인생, 달달하게 달달하게》

by summaries 2026. 9. 27.
반응형

"우리는 최선을 다했다. 왜 고개를 숙이느냐." 아시아축구연맹 23세 이하 챔피언십 결승에서 진 베트남 선수들에게 박항서 감독이 건넨 말입니다. 경제학자 우석훈은 이 말을 듣고 울었다고 합니다. 최선을 다하라는 말은 수없이 들었지만 고개를 숙이지 말라는 말은 누구에게도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쉰을 앞둔 나이에 저자는 아이의 투병과 함께 인생의 밑바닥을 지나왔습니다. 《매운 인생, 달달하게 달달하게》는 그 시기를 통과하며 쓴 글을 모은 책입니다.

쉰 살에 경차로 바꾸고 알게 된 것들 - 《매운 인생, 달달하게 달달하게》 표지

아무것도 안 되던 시절, 아홉수

둘째 아이가 폐렴으로 반복해 입원하던 시기, 저자는 외부 활동을 모두 접고 아이 곁에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해에는 정말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고 말합니다.

"그해에는 정말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크게 생각한 일은 크게 안 되었고, 작게 생각한 일도 크게 안 되었다. 실제로 뭔가 하려고 한 일은 다 잘못되었고, 머릿속에서 생각만 한 일도 망가졌다."

그는 이 시기를 '아홉수'라고 부릅니다.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미신이지만 인생에는 아무리 애써도 통하지 않는 시기가 분명히 있다는 걸 겪어본 사람은 안다는 겁니다. 아이의 체중이 평균에 도달한 날, 그 아홉수도 함께 끝났다고 저자는 씁니다. 갑자기 좋은 일이 생긴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더 나쁜 일은 오지 않았습니다.

경차를 타면 알게 되는 것들

이 시기 저자는 지출을 줄이려고 차를 없애고 아내의 빨간색 모닝을 빌려 타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뜻밖의 깨달음을 얻습니다.

"차는 사람의 인격이라는 말이 있다. 경차를 2년째 타다보니까 이게 얼마나 어이없는 개소리인지 알게 되었다. 차는 차주의 인격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 대신 재력과는 약간의 상관관계가 있다. 그렇지만 한국에서 차가 하는 가장 큰 역할은 어깨싸움인 것 같다."

빨간 모닝 앞에서는 벤츠도 형님, BMW도 큰형님입니다. 누구에게도 양보받지 못하지만 저자는 오히려 그 안에서 겸손과 여유를 배웁니다. 강남에서 만나자는 약속은 발레파킹 자리가 없다는 이유로 슬그머니 거절하게 됩니다. 그렇게 어깨싸움에서 완전히 빠져나옵니다.

"더 높은 곳을 향해 달려나가는 것이 행복이 아니라, 지금이 편안한 것이 행복이다. 벤츠를 타기 위해 평생을 달려가는 사람보다는, 지금 아내 차를 빌려타는 내가 더 행복하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덧붙입니다. "경차도 그런대로 탈 만해." 승진이나 연봉, 남들 보기에 그럴듯한 성취를 좇느라 지쳐본 사람이라면 이 말이 그냥 웃어넘길 이야기로 들리지 않을 겁니다.

분노는 짧게, 즐거움은 길게, 행복은 가득

20대에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겪으며 살았던 저자는 그 시절을 '분노는 가득, 즐거움은 필요 없고, 행복 따위는 꺼져'였다고 회상합니다. 힘든 게 곧 정의롭고 진지한 삶이라 믿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쉰을 지나며 그는 이렇게 마음을 고쳐 씁니다.

"인생은 전쟁이 아니고, 삶은 전쟁터가 아니다. 세상이 전쟁터고 매순간 최선을 다하라고 배웠던 한국의 어느 50대가 이제 비로소 그 전쟁터에서 걸어나오게 되었다. 나는 더 이상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는 식으로 살고 싶지 않다."

그가 지난 2년간 쓴 글들 중에서 스스로 가장 마음에 든 문장은 "분노는 짧게, 즐거움은 길게, 행복은 가득"이었다고 합니다. 최선을 다하는 것과 정성을 다하는 것은 다르다는 것, 돈이나 지위가 진정한 행복을 주지 않는다는 것. 이 정도는 쉰이 되어야 알게 된다고 그는 말합니다. 아직 그 나이가 아니어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목이 있습니다.

이 책은 성공담도 아니고 극복기도 아닙니다. 그저 어깨싸움에서 빠져나와 조금 느리게 걷기로 한 한 사람의 기록입니다. 최선을 다하는 삶에 지쳐 있는 분, 남들과 비교하며 어깨에 힘을 주고 사는 게 버겁게 느껴지는 분에게 이 책을 권합니다. 자녀를 키우며 뜻대로 되지 않는 시기를 지나고 있는 분에게도 권하고 싶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