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팀 회의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다들 무리라고 생각하는 일정인데도 아무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습니다. 저도 속으로는 "이건 좀 아닌데" 싶었지만 괜히 분위기 깨는 사람이 될까봐 입을 다물었습니다. 회의실을 나오면서 옆자리 동료와 눈을 마주쳤는데, 그 친구도 똑같은 표정이었습니다. 집에 와서도 그 장면이 계속 마음에 걸렸습니다. 명절에 어른들 앞에서, 친구들 모임에서 서운한 말을 들었을 때도 비슷합니다. 할 말은 분명히 있는데, 꺼내는 순간 관계가 틀어질까봐 그냥 삼켜버립니다.
오수향의 『웃으면서 할 말 다하는 사람들의 비밀』은 이런 분들을 위한 책입니다. 강연과 심리 코칭을 오래 해온 저자는 할 말을 하면서도 관계를 잃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타고난 재주가 아니라 심리학에 기초한 대화법이 있다고 말합니다. 책 속 43가지 기법 중 일상에서 바로 써먹을 만한 몇 가지를 정리해봤습니다.

같은 말도 순서를 바꾸면 결과가 달라집니다
자기소개를 할 때 단점부터 말할지, 장점부터 말할지를 두고 고민해본 적 있으실 겁니다. 책은 초두 효과를 근거로 답을 내립니다. 처음 들어온 정보가 나중 정보보다 기억에 훨씬 오래 남는다는 겁니다. 저자가 인용한 실험에서는 똑같은 내용을 순서만 바꿔 제시했을 뿐인데 사람들의 호감도가 완전히 갈렸습니다.
초두 효과는 콘크리트 효과라 불릴 정도로 그 효과가 단단하고 오래 간다. 그러니 서두에서 자신이 어필하고 싶은 장점과 매력을 제시하라. 이 순간 영양가 없는 겸손의 미덕은 잠시 접어두도록 하자.
겸손이 미덕이라고 배워온 사람일수록 이 대목에서 뜨끔합니다. 저도 면접이나 발표 자리에서 꼭 부족한 점부터 언급하고 시작했는데, 순서만 바꿔도 훨씬 당당하게 들린다는 걸 이제는 압니다.
지적은 먼저, 칭찬은 맨 마지막에
팀원이나 자녀에게 지적할 일이 있을 때, 칭찬으로 감싸서 시작해야 마음이 덜 다칠 것 같지만 책은 반대로 말합니다. 비난으로 시작해서 칭찬으로 끝맺을 때 오히려 호감도가 더 높아진다는 실험 결과입니다.
이는 비난으로 시작하다가 칭찬으로 마무리할 경우, 오히려 더 호감을 느끼는 현상을 의미한다.
마지막에 들은 말을 더 오래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책은 "문제를 지적하되, 잘한 일을 찾아 칭찬으로 마무리하자"고 권합니다. 회의에서 후배의 보고서에 피드백을 줄 때, 지적할 부분을 먼저 짚고 마지막 한마디는 꼭 잘한 점으로 끝내는 식입니다. 순서만 바꿔봐도 분위기가 달라질 것 같습니다.
"왜 저래?" 대신 "무슨 일 있었어?"
바쁜 아침, 와이셔츠가 다려져 있지 않을 때 책에 나오는 두 유형의 말이 있습니다. "당신은 집에서 하는 일이 뭐야"라고 쏘아붙이는 사람과 "요즘 집안일 때문에 정신이 없나보네"라고 넘기는 사람입니다.
요즘 집안일 때문에 정신이 없나보네. 그래도 남편 옷은 좀 신경써줘야지.
저자는 이 차이를 근본적 귀인 오류로 설명합니다.
사람들은 보통 어떤 행동의 원인을 환경, 우연한 기회 등 외부 요인보다는 개인의 성격, 동기, 기질, 태도에서 찾는다.
약속에 늦은 친구에게 "너는 항상 그렇더라" 하기 전에 "지하철이 연착했나보네"라고 물어보는 습관 하나가 말다툼으로 번질 일을 그냥 지나가는 해프닝으로 만들어줍니다.
사이가 틀어졌을수록 내가 먼저 손을 내밉니다
관계가 껄끄러워지면 누가 먼저 인사를 건네야 하는지를 두고 은근히 기 싸움을 하게 됩니다. 나이가 많아서, 직급이 높아서 먼저 못 하겠다는 이유는 사실 자존심 문제일 때가 많습니다. 책은 상호성의 법칙을 근거로 이 기 싸움에서 내려오라고 말합니다.
쉬운 말로 ‘가는 정이 있어야 오는 정이 있다’는 의미다. 한쪽은 받기만 하고 한쪽은 주기만 해서는 결코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없다. 위아래가 뭐가 중요한가. 먼저 호의를 베푸는 자세가 중요하다.
먼저 인사를 건네는 사람이 지는 게 아니라, 관계를 회복할 마음이 있는 사람이라는 걸 저도 나이가 들면서야 알게 됐습니다.
부탁할 때는 이유를 한 문장 붙여보세요
연봉 협상이든 사소한 부탁이든, "그냥 해주세요"보다 "왜냐하면"이 붙는 순간 승낙률이 달라진다는 실험이 인상 깊었습니다. 복사기 앞에서 순서를 양보해달라고 할 때 이유를 댄 쪽이 훨씬 더 많은 동의를 얻었습니다.
실제로 ‘왜냐하면’은 마법을 불러오는 설득의 단어라 할 정도로 강력한 효과를 발휘한다.
연봉 인상을 요청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연봉을 올려주셨으면 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그만큼 열심히 일했고, 그런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기 때문입니다.
막연히 "열심히 했으니 올려달라"는 말보다, 이유를 붙이는 습관이 부탁을 훨씬 단단하게 해줍니다.
몰아붙이는 말투는 의지를 갉아먹습니다
성과를 내고 싶은 마음이 클수록 말투가 세진다는 대목에서 또 뜨끔했습니다. 책은 의지력이 근육처럼 쓸수록 소진된다는 실험을 소개합니다. 강압적인 지시를 받은 그룹은 그렇지 않은 그룹보다 이후 과제 수행 능력이 눈에 띄게 떨어졌습니다.
의지력은 단순한 스킬이 아니라 팔이나 다리 근육과 비슷합니다. 많이 쓰면 피로해집니다. 그래서 하나의 일에 과하게 의지력을 쓰면 다른 일에는 그만큼의 의지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됩니다.
다그친다고 성과가 빨리 나오는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팀장이든 부모든 몰아붙이는 대신 마음을 열고 물어보는 쪽이 결국 더 멀리 간다는 걸 이 책은 실험 데이터로 확인시켜줍니다.
읽고 나서 제일 크게 바뀐 건 이겁니다. 할 말을 참느냐 마느냐보다 '어떤 순서로, 어떤 말을 앞세워서' 하느냐를 먼저 생각하게 됐습니다. 회의에서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매번 삼키고 나오는 분, 가족이나 친구 사이에서 할 말은 있는데 꺼낼 타이밍을 몰라 망설이는 분이라면 이 책에서 바로 써먹을 문장 하나쯤은 건질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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