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 수산물 코너에서 랍스터를 보면 다들 한 번쯤 가격표에 눈이 가게 됩니다. 고급 요리의 대표주자니까요. 그런데 한때 미국에서는 이 랍스터가 가난한 사람이나 죄수에게 억지로 먹이던 음식이었다면 믿어지시나요. 음식문화 칼럼니스트 윤덕노의 『음식이 상식이다』를 읽다 보면, 우리가 지금 당연하게 여기는 음식들의 과거가 실은 꽤 달랐다는 걸 알게 됩니다.

랍스터는 원래 가난한 사람들이 먹던 음식이었습니다
1620년 미국에 도착한 청교도들에게 한 농장주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여러분에게 제공할 수 있는 식사는 따뜻한 빵 대신에 물 한 잔과 랍스터밖에 없습니다." 빵이 모자라니 랍스터로 때우라는 뜻이었습니다.
미국에서 랍스터는 '가난의 상징'이었다. 주로 가난한 집 어린이나 하인들이 먹는 음식이었고, 죄수들에게는 질리도록 공급됐던 요리였다.
너무 흔해서 아메리칸 인디언들은 밭에 뿌리는 비료로도 썼다고 하니, 지금 레스토랑에서 파는 가격을 생각하면 상상이 잘 안 됩니다. 저자는 이 반전을 두고 이렇게 정리합니다.
한때 미국에서 '가난의 상징'으로 꼽혔던 랍스터가 지금은 고급 레스토랑에서 즐기는 '부의 상징'으로 바뀌었으니 정말 가재가 용 됐다.
음식의 값어치가 음식 자체보다 그 음식을 둘러싼 이야기와 시대에 더 좌우된다는 걸, 랍스터 한 접시가 보여주는 셈입니다.
토마토, 법정까지 간 채소 논쟁
토마토가 채소인지 과일인지를 놓고 미국 연방대법원까지 간 사건이 있었습니다. 1887년 관세법 개정으로 채소에만 수입 관세를 매기자 토마토 수입업자가 "토마토는 과일"이라며 소송을 걸었던 겁니다.
1893년 미국연방대법원은 '토마토는 채소'라고 최종 판결을 내려 지루한 논쟁을 잠재웠다.
저도 토마토를 썰어 먹을 때마다 과일인지 채소인지 애매하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한 세기 넘도록 법적으로도 애매했던 문제였다니 괜히 반가웠습니다.
사랑의 사과라 불린 오해
토마토의 수난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가지과 식물이라 독이 있다고 오해받아 한동안 먹지 않았고 나중에는 엉뚱한 통역 실수 때문에 최음제로까지 둔갑했습니다.
토마토가 '독이 든 열매'에서 '최음제'가 된 이유는 통역상의 오류 때문에 벌어진 해프닝이었다고 한다.
프랑스인이 이탈리아 요리사의 설명을 잘못 알아들은 게 와전되어 이런 오명이 생겼다는 겁니다. 지금은 세계 어디서든 흔하게 먹는 토마토가 이런 억울한 사연을 품고 있었다니, 식탁 위 흔한 재료 하나도 그냥 당연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프렌치프라이는 왜 정치인의 화풀이 대상이 됐을까
2003년 미국 하원의회는 이라크 전쟁에 반대한 프랑스가 못마땅하다는 이유로, 구내식당 메뉴판의 '프렌치프라이'를 '프리덤 프라이'로 바꿔버렸습니다. 그런데 정작 프렌치프라이의 원조는 프랑스가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주미 프랑스 대사관에서 "프렌치프라이는 벨기에 음식"이라고 성명을 발표, 미국 하원을 비꼬았던 것을 보면 진짜 원조는 프랑스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감자튀김 하나로 외교전까지 벌어졌다는 게 우습지만, 음식 이름에 국가의 자존심이 걸리는 일이 생각보다 흔하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아무 포도주나 샴페인이라 부를 수 없는 이유
경사스러운 자리에서 흔히 터뜨리는 샴페인도 사실 아무 발포성 포도주나 부를 수 있는 이름이 아닙니다. 프랑스 상파뉴 지방에서 만든 것에만 붙일 수 있는, 국제 조약으로 보호받는 이름입니다.
상파뉴 지방에서 생산되는 발포성 포도주에만 샴페인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도록 했는데도 사람들한테 '샴페인'이라는 단어가 일반화된 것은 미국 때문이다.
미국이 베르사유 조약의 해당 조항을 비준하지 않아서 일반 명사처럼 퍼졌다는 겁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별생각 없이 쓰는 단어 하나에도 이런 국가 간의 셈법이 숨어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만리장성보다 먼저 먹어야 할 음식
중국에는 이런 말이 있다고 합니다.
북경에 와서 만리장성을 보지 않으면 남자가 아니고, 북경오리를 먹지 않으면 평생 여한으로 남는다(不到長城非好漢, 不吃烤鴨眞遺憾).
황제가 이틀에 한 번꼴로 먹었다는 이 요리는 사실 남경 거지들이 훔친 오리에 진흙을 발라 급하게 구워 먹던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합니다. 지금은 가장 귀한 손님에게 대접하는 요리가, 한때는 가장 가난한 사람들의 즉흥 요리였다는 사실이 랍스터 이야기와 묘하게 닮아 있습니다.
책 서두에 윤덕노 작가가 《대학》의 한 구절을 인용한 대목이 있습니다.
마음이 없으면 봐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먹어도 그 맛을 모른다(心不在焉 視而不見 聽而不聞 食而不知其味).
랍스터든 토마토든 북경오리든, 그 안에 쌓인 이야기를 알고 나니 다음에 먹을 때는 조금 다르게 느껴질 것 같습니다. 당연하게 여기던 식탁 위의 음식들이, 사실은 하나하나 사연을 품고 여기까지 왔다는 걸 생각하면서요.
이런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 장을 보거나 외식을 할 때 음식 이름의 유래가 궁금했던 분
- 어색한 자리에서 꺼낼 만한 가벼운 이야깃거리를 찾는 분
- 역사나 문화를 음식이라는 익숙한 통로로 접하고 싶은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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