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라", "열정을 따르면 답이 나온다"는 말을 요즘 어디서든 듣습니다. 그런데 정말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몰입하고 있는데도, 문득 뭔가 허전하다고 느껴본 적 없으신가요? 저는 퇴근 후 좋아하는 취미에 푹 빠져 있다가도 가끔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지" 싶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 철학 교수 수전 울프의 『삶이란 무엇인가』는 바로 이 어긋남을 파고드는 책입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 다 되는 걸까요
울프 교수는 먼저 "자신의 열정을 발견하고 추구하라"는, 우리가 가장 흔하게 듣는 조언을 '성취 관점'이라 부르고 분석합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일에 몰입할 때 우리가 느끼는 감정을 성취감이라 정의합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할 때, 완전히 몰입해 있을 때, 가슴을 뛰게 만드는 활동에 참여할 때 우리가 느끼는 감정을 ‘성취감(feeling of fulfillment)’이라고 정의해보자.
하지만 이 성취감은 온전히 주관적입니다. 본인만 몰입하고 있다면 그 대상이 무엇이든 상관없게 되어버립니다. 저도 한때 누가 봐도 의미 없어 보이는 일에 몰두하면서 "난 행복한데 뭐"라고 넘긴 적이 있는데, 울프 교수는 바로 이 지점을 의심해보라고 말합니다.
성취감을 느끼는 시시포스
울프 교수는 그리스 신화의 시시포스를 끌어옵니다. 영원히 바위를 밀어 올려야 하는 그에게, 신이 자비를 베풀어 그 노동 자체에서 성취감을 느끼도록 만들어줬다고 가정해보자는 것입니다. 이제 시시포스는 바위 굴리기를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로 여기며 열정적으로 몰입합니다. 그렇다면 그의 삶은 더 좋아진 걸까요?
신의 자비가 있다고 해도, 그래서 자신의 노동을 통해 성취감을 느끼게 됐다고 해도 그가 하는 일의 본질은 전혀 바뀌지 않은 것이다.
주관적으로는 완벽한 만족감을 느끼지만 그 바위 굴리기 자체에는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열정만 있으면 다 괜찮다는 말이 왜 허전하게 들리는지, 이 비유를 보고 나서야 이해가 됐습니다.
나보다 큰 무언가에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
그래서 울프 교수는 또 하나의 조건을 덧붙입니다. "자신보다 더 큰 존재에 관여하라"는, 역시 흔히 듣는 조언입니다. 혼자만의 열정에 그치지 않고 나와 무관하게 존재하는 가치와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두 조건을 합쳐야 비로소 의미 있는 삶에 가까워집니다.
삶의 의미는 가치 있는 활동에 대한 ‘적극적인 관여(active engagement)’ 과정에서 그 존재를 드러낸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면서도 동시에 나와 상관없이도 가치가 있는 일. 둘 중 하나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이 설명을 읽으면서 제가 왜 어떤 몰입은 뿌듯하고 어떤 몰입은 허무하게 끝나는지 조금 알 것 같았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그렇다면 아무도 내가 하는 일의 가치를 몰라줄 때는 어떨까요. 울프 교수는 인정받지 못한 예술가나 우선순위를 빼앗긴 과학자의 사례를 들어, 그들이 버텨내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자신과 동떨어져서 존재하는 가치를 보호하고 강화하며 창조하는 일을 발견해 추구함으로써 우리는, 공평무사하고 무관심한 가상의 관찰자의 시선과 다른 모든 이들의 시선으로부터 이해받고 존경받고 인정받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누가 알아주든 말든, 그 일이 정말 가치 있다는 확신만 있다면 삶은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성과나 인정에 쉽게 휘둘리는 저로서는 이 대목이 가장 오래 남았습니다.
이 책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명확한 답을 주지는 않습니다. 대신 내가 지금 몰입하고 있는 그 일이 정말 가치 있는 일인지, 아니면 그저 성취감만 주는 바위 굴리기인지 돌아보게 합니다. 이런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 열정만 있으면 다 된다는 말에 뭔가 허전함을 느꼈던 분
- 남들이 인정해주지 않으면 금방 흔들리는 분
- 지금 하는 일의 의미를 철학적으로 한번 점검해보고 싶은 분
'인문·사회·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음식이 상식이다』, 랍스터가 한때 "빵보다 못한" 가난의 상징이었다는 사실 (0) | 2026.10.11 |
|---|---|
| 『공부의 철학』, 공부는 더하는 게 아니라 버리는 것이라는 말 (0) | 2026.10.09 |
| 『예의 바른 나쁜 인간』, 옳은 일을 했다고 보상받는 건 아니었습니다 (0) | 2026.09.30 |
| 『이탈리아 상인의 위대한 도전』, 사업을 시작할 때 장부에 '모험'을 적어 넣던 사람들 (0) | 2026.09.29 |
| 헷갈리면 무죄입니다 - 재심 변호사 박준영이 본 사법 정의 (0) | 2026.09.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