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좀 만나던 사람 아니었어? 왜 그렇게까지 힘들어해." 이별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말입니다. 반려동물을 떠나보냈을 때도 비슷합니다. "그냥 기르던 동물이잖아"라는 말 앞에서 슬픔을 더 꺼내놓기가 어려워집니다. 심리치료사 가이 윈치는 『상실을 이겨내는 기술』에서 바로 이 지점이 마음의 상처를 더 깊게 만든다고 말합니다.

왜 이별의 고통은 쉽게 무시당할까
저자는 사랑의 상실, 그중에서도 연인과의 이별과 반려동물의 죽음에 주목합니다. 가족이나 배우자를 잃었을 때는 주변에서 당연히 애도를 표하지만 이 두 가지 상실은 '공식적으로 애도가 허락되는' 범주 밖에 놓이기 쉽다는 겁니다.
사회로부터 고통을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사회의 둔감하고 무지한 인식을 그대로 내면화하게 된다. 사회가 들이미는 기준이 그들의 감정과 모순되더라도 그들은 감정을 억누르거나 숨겨야 한다는 강박을 느낀다.
슬픔 자체도 힘든데, 그 슬픔을 드러내도 되는지부터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라니. 책을 읽으면서 저도 비슷하게 머뭇거렸던 순간들이 떠올랐습니다.
암은 이겨냈지만 이별은 이겨내지 못한 사람
책에 나오는 캐시는 두 번의 암 투병을 꿋꿋이 견뎌낸 사람입니다. 그런데 6개월 사귄 연인에게 이별을 통보받은 뒤로는 몇 달째 일상을 추스르지 못합니다. 친구들도 처음엔 곁을 지켰지만 시간이 지나자 점점 인내심을 잃어갑니다.
타인들은 우리가 실제 느끼는 고통의 크기만큼 우리를 연민하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가 얼마큼의 고통을 느낄지 가늠한 뒤 딱 그만큼의 연민을 보인다.
캐시의 친구들이 유독 매정했던 건 아닙니다. 저자는 우리 모두가 암묵적으로 '이쯤이면 됐다'는 기준을 세워두고 그 선을 넘으면 공감을 거둬들인다고 말합니다. 생각해보면 저도 누군가의 슬픔에 그런 기준을 들이댄 적이 있는 것 같아 조금 찔렸습니다.
"그냥 기르던 개잖아"라는 말 앞에서
15년을 함께한 반려견 보버가 세상을 떠나던 날, 벤은 상사에게 며칠간의 휴가를 요청합니다. 돌아온 대답은 이랬습니다.
그냥 기르던 개일 뿐이잖아. 자네는 무슨 어머니 돌아가신 거처럼 구는군.
부모님을 여의었을 때는 회사도 애도휴가를 줬지만 15년을 함께 산 반려동물의 죽음에는 그런 배려가 없었습니다. 관계의 깊이와 사회가 인정하는 슬픔의 크기가 꼭 비례하지는 않는다는 걸, 이 장면에서 뚜렷하게 느꼈습니다.
마음이 아픈 게 아니라, 정말로 아픈 겁니다
저자가 소개하는 뇌과학 연구는 꽤 인상적입니다. 이별 직후의 사람들에게 과거 연인의 사진을 보여주며 뇌를 촬영했더니, 놀라운 결과가 나왔습니다.
실험참여자들이 이별로 인한 슬픔을 다시 체험했을 때 활성화된 뇌의 특정 부위는 그들이 견딜 수 없는 신체적 고통을 경험할 때 활성화되는 뇌의 부위와 정확히 같았다.
마음이 아프다는 말은 비유가 아니었던 겁니다. 이별 후에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만큼 무기력해지는 걸 '유별나다'고 여길 게 아니라, 몸이 실제로 아픈 상태로 봐야 한다는 겁니다.
헤어진 사람을 못 잊는 건 의지의 문제가 아닙니다
캐시가 헤어진 주말의 사진과 문자를 몇 달째 뒤지는 걸 두고 저자는 중독에 가까운 반응으로 설명합니다.
실제로 열렬한 사랑을 하다가 이별을 겪은 사람의 뇌는 코카인이나 헤로인 금단현상을 겪고 있는 중독자들의 뇌와 매우 유사한 반응을 보인다.
마음을 독하게 먹으면 바로 잊힐 거라고 쉽게 생각하지만 뇌 입장에서는 금단현상을 견뎌내는 중이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왜 아직도 못 잊었어"라는 말이 얼마나 가혹한 말인지도 다시 보이기 시작합니다.
SNS로 전 애인을 들여다보는 밤
책에는 헤어진 지 20년이 지났는데도 가끔 가명 계정으로 옛 연인의 SNS를 들여다보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저자는 이게 흔하면서도 꽤 위험한 습관이라고 짚습니다.
장소와 시간에 상관없이 우리는 손안의 스마트폰으로 시공간을 가로질러 순간이동을 하고, 얼마든지 타인의 삶을 관찰할 수도 있다.
저도 피드를 넘기다가 반가운 얼굴을 발견하고 나도 모르게 한참 들여다본 적이 있습니다. 별다른 의미 없다고 생각했는데, 책을 읽고 나니 그 손짓 하나가 아직 아물지 않은 자리를 괜히 더 건드리는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은 결국 한 가지를 분명히 합니다. 슬픔을 인정받지 못한 사람에게 벌어지는 일입니다.
고통을 인정받지 못하면 그는 타인이나 사회가 자신에게 가하는 비판을 내면화하고, 그 결과 자기비판에 빠지고, 나아가 절실히 필요한 공감과 지원을 스스로 거부하게 된다.
그러니 지금 누군가 "별것도 아닌 일로 왜 그래"라는 말을 듣고 있다면, 그 말은 틀렸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혹시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말을 하고 있었다면, 이 책이 그 기준을 한번 다시 생각해보게 해줄 겁니다.
이런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 이별이나 반려동물의 죽음을 겪고 왜 이렇게까지 힘든지 스스로도 의아한 분
- 슬퍼하는 친구 곁에서 뭐라고 말해줘야 할지 막막했던 분
- 헤어진 사람의 SNS를 자꾸 들여다보는 자신을 이해하고 싶은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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