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째 연락을 안 하는데도 가끔 생각나는 사람이 있지 않으신가요. 반대로 매일 연락하지만 만나고 나면 괜히 마음이 무거워지는 관계도 있을 겁니다. 『몇 명쯤 안 보고 살아도 괜찮습니다』는 친구관계 연구로 30년을 보낸 사회학자 젠 예거가 쓴 책입니다. 저자는 설문에 응한 171명 중 68퍼센트가 친구에게 배신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는 조사 결과를 전하며 우정도 끝날 수 있다는 걸 솔직하게 말합니다. 좋은 친구 이야기만 가득한 책들 사이에서, 이 책은 '놓아도 되는 관계'를 정면으로 다룹니다.

평생 가는 우정이라는 신화
저자는 결혼이 평생 지속되지 않을 수 있다는 건 많은 사람이 받아들이면서도 우정은 끝나면 안 된다는 이상한 믿음이 퍼져 있다고 지적합니다.
친구관계가 끝나거나 실패해서는 안 된다는 낭만적인 이상 때문에 사람들은 반드시 끝내야 마땅한 친구관계를 붙잡고 지속시키면서 불필요한 고통을 받고 있다.
저도 '몇 년 알고 지낸 사이인데'라는 이유만으로 불편한 관계를 계속 끌고 간 적이 있습니다. 그 관계를 끝내는 게 실패처럼 느껴졌던 건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게 꼭 실패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친구에게 배신당하는 건 생각보다 드문 일이 아니다
저자가 소개하는 사례들은 과장이 아니라 실제 설문과 인터뷰에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직장 동료의 거짓 소문으로 해고당한 사람, 결혼식 들러리가 돈을 훔쳐간 사람 이야기까지 등장합니다.
“가벼운 친구casual friend, 가까운 친구close friend, 절친best friend에게 배신을 당한 적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응답한 171명 중 116명(68퍼센트)이 ‘예’라고 답했고 55명(32퍼센트)만이 ‘아니오’라고 답했다.
저는 이 숫자를 보고 조금 놀랐습니다. 배신이라는 말이 너무 무겁게 들려서 내 경험은 거기 해당하지 않는다고 넘겨왔는데, 생각해보면 서운함이나 거리감을 느꼈던 관계가 분명 있었습니다.
좋을 때만 친구인 사람을 구분하는 법
저자는 상황이 좋을 때만 곁에 있다가 어려운 시기엔 사라지는 유형을 흔한 배신의 한 형태로 꼽습니다.
좋을 때만 친구가 되는 사람은 파괴적이거나 해로운 친구의 흔한 유형이다. 상황이 좋을 때는 당신 곁에 있지만 어려운 시기가 오면 사라진다.
이런 유형은 한 번의 사건으로 드러나기보다 몇 번의 패턴으로 서서히 보이기 시작합니다. 제 주변에도 경조사나 힘든 시기에만 조용해지는 사람이 떠올랐습니다. 당장 화를 낼 일은 아니지만 그만큼의 거리를 두고 기대치를 조정하는 게 맞겠다 싶었습니다.
비밀을 지키는 능력이 신뢰의 다음 순서다
저자는 친구관계에서 신뢰와 정직 다음으로 중요한 게 비밀을 지키는 능력이라고 말합니다. 친구가 믿고 털어놓은 이야기를 함부로 옮기는 순간 관계의 기반이 흔들린다는 겁니다.
그 비밀을 허락 없이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행동은 가까운 친구관계나 절친 관계의 초석인 사생활 존중과 신의를 저버리는 일이다.
누군가에게 고민을 털어놓을 때 저는 늘 '이 사람이 이걸 다른 데 옮기지 않을까'를 먼저 생각합니다. 그게 지나친 경계심이라고 여겼는데, 이 책을 보면 지극히 합리적인 판단 기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관계를 끝내도 복수는 피해야 한다
해로운 관계라도 끝내는 방식은 신중해야 한다고 저자는 당부합니다. 감정적으로 끝내는 순간, 그 관계가 나중에 다른 방식으로 다시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관계를 끝내는 방법이 관계를 끝내겠다는 결심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것을 명심하라.
저도 한때 관계를 정리하면서 마지막에 서로 날카로운 말을 주고받은 적이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말들이 관계를 끝내는 데는 아무 도움도 되지 않았고 오히려 더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몇 명쯤 못 봐도 괜찮다는 말의 진짜 의미
이 책의 결론은 모든 관계를 끝까지 붙잡으라는 게 아니라, 관계를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 자체를 다시 보라는 데 있습니다. 저자는 자신이 겪은 여러 관계의 단절을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이렇게 말합니다.
변화는 타인이 아닌 내 안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누군가와의 관계가 자연스럽게 멀어졌을 때, 그걸 꼭 내 잘못이나 관계의 실패로 받아들이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위로가 됐습니다. 모든 사람을 붙잡고 살 필요는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저는 이 책을 읽고서야 제대로 받아들인 것 같습니다.
이런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 끝난 관계를 왜 끝났는지 몰라서 계속 생각하게 되는 분
- 불편한 관계를 '오래 알았다'는 이유만으로 유지하고 있는 분
- 친구가 많아야 좋다는 압박에서 벗어나고 싶은 분
- 관계를 정리한 뒤의 죄책감에서 벗어나고 싶은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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