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리 맨 앞 장에 또 새해 계획을 적어놓고 사흘도 못 가 흐지부지된 경험이 저한테도 있습니다. 영어공부를 하려고 책상에 앉았는데 갑자기 먼지 쌓인 모니터가 눈에 들어와서 청소부터 하다 하루를 다 써버린 적도 있고요. 그럴 때마다 "나는 왜 이렇게 게으를까" 하고 스스로를 탓했는데, 정신과 전문의 최명기 저자의 《게으름도 습관이다》를 읽고 나서 그 질문 자체가 잘못됐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불안해서 딴짓을 하는 것이었다
책은 영어공부를 미루고 책상 정리부터 하게 되는 흔한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중요한 일 앞에서 자꾸 다른 일부터 손대는 이유를 저자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결국 참지 못하고 그 필요 없는 일부터 하느라 정작 중요한 일을 미뤘던 경험, 한 번쯤 있지 않나요? 대체 그때 내가 왜 그랬을까 생각해보면, 답은 간단합니다. 바로 ‘불안해서’ 그런 것이죠.
저는 이 문장을 읽고 조금 억울한 마음이 풀렸습니다.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라 결과가 불안해서 몸이 먼저 피했던 거라고 하니, 저 자신을 탓하는 대신 그 불안의 이유를 들여다볼 수 있게 됐습니다.
번아웃은 게으름이 아니라 경고음이다
끝없이 야근하고 과제에 쫓기다 어느 순간 손 하나 까딱하기 싫어지는 상태, 저자는 이걸 게으름과 분명히 구분합니다.
이런 모습을 겉으로만 봤을 땐 당연히 ‘게으름을 피운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게으름은커녕 치료를 요하는 대단히 위험한 상태입니다.
주변에서 "쟤 요즘 왜 저렇게 늘어졌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저는 이제 그 사람이 정말 게으른 건지 아니면 완전히 소진된 건지부터 생각해봅니다. 둘을 구분하는 것만으로도 다그치는 대신 쉬게 해줄 수 있는 여지가 생깁니다. 번아웃과 직장인의 불안에 대해서는 예전에 다른 책을 소개하면서 조금 더 다룬 적이 있는데, 궁금하신 분은 이 글도 함께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어릴 때 들은 핀잔이 의욕을 꺾는다
숫자로 계속 평가받고 야단맞으며 자란 사람은 점점 의욕을 잃어버린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좋은 이야기도 한두 번인데, 이런 힐난을 어렸을 때부터 계속 들어온 사람은 점점 의욕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경우를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이라고 하죠.
"넌 왜 이렇게 게으르니"라는 말을 어릴 때부터 들어온 사람이 커서도 그 말을 그대로 믿고 자신을 게으른 사람으로 단정짓는다는 대목에서, 저도 모르게 제가 누군가에게 그런 말을 쉽게 던진 적은 없었는지 돌아봤습니다.
화를 못 내는 사람이 대신 미룬다
계속 압박하는 어머니 밑에서 자란 자식의 사례를 통해 저자는 '수동공격적 성격'을 설명합니다.
결국 어머니가 무언가를 시키면 그 앞에서는 일단 하겠다고 하고 뒤로는 딴청을 피우기 시작합니다. 시키는 것을 제때 완수하면 할수록 어머니가 계속 무언가를 시킬 것이 틀림없기 때문에 가능하면 일을 뒤로 미루려는 것입니다.
직장에서 상사 앞에서는 "네 알겠습니다" 해놓고 뒤로는 자꾸 미루게 되는 경우, 사실은 그 일 자체가 싫은 게 아니라 그 사람에게 쌓인 억눌린 감정이 미루는 행동으로 새어나오는 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민한 사람일수록 느리고, 느리면 게을러 보인다
작은 소리, 작은 자극에도 신경이 쓰이는 사람들에 대한 설명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너무 예민한 사람들이 무언가를 할 때 속도도 느릴 뿐더러(당연한 말이지만 이는 누군가의 눈에 게으른 것으로 비칠 수 있습니다) 최종 결과물에 실수가 많은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죠.
일 처리가 느린 동료를 보며 답답하다고 생각했던 순간들이 떠올랐습니다. 느린 데는 꼼꼼함이나 민감함처럼 전혀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있다는 걸 알고 나니, 속도만으로 사람을 판단하던 제 습관을 다시 보게 됐습니다.
완벽하게 하려다 시작도 못 한다
책 마지막 부분에서 저자는 흔한 격언 하나를 뒤집습니다.
흔히 “시작이 반”이라고들 말합니다. 저는 이런 말을 들으면 “아니요, 시작이 99퍼센트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처음부터 완벽한 계획을 세우려다 보면 그 복잡함 때문에 오히려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하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일단 손에 잡히는 것부터 건드려 보라는 조언이 생각보다 큰 위로가 됐습니다.
매번 계획만 세우고 작심삼일로 끝나는 분, 스스로를 게으른 사람이라고 쉽게 단정해온 분, 그리고 주변 사람의 느린 속도를 자꾸 답답하게만 여겼던 분이라면 이 책으로 자신을 다르게 들여다보시길 권합니다.
'심리·마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몇 명쯤 안 보고 살아도 괜찮습니다』, 우정도 끝날 수 있다는 걸 말해주는 책 (0) | 2026.10.16 |
|---|---|
| 『아까 화냈어야 했는데』, 화를 못 내는 건 성격이 아니라 자존감의 문제였습니다 (0) | 2026.10.15 |
| 『인생의 무게를 가볍게 하는 심리학』, 거절 못 해서 떠안은 짐은 결국 청구서로 돌아온다 (0) | 2026.10.14 |
|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 팀장님 기분에 따라 사무실 공기가 바뀌는 이유 (0) | 2026.10.12 |
| 『상실을 이겨내는 기술』, "그냥 사귀던 사람이잖아"라는 말이 가장 아플 때 (0) | 2026.10.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