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장을 보다 보면 나물 코너 앞에서 손이 멈춥니다. 삼색나물로 흔히 올리는 도라지, 고사리, 시금치 중에서 둘이 오늘 소개할 책에 나옵니다. 명절 무렵에는 "자연 그대로라 몸에 좋다"는 말도 유난히 자주 들립니다. 식물학 박사 스쥔의 『식물학자의 식탁』은 그 말을 조금 다르게 읽게 만드는 책입니다. 1부 제목부터 '식물학자의 경고'입니다.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먹는 식물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하나씩 짚어 줍니다. 사례는 중국 이야기지만 식재료는 우리 밥상과 겹치는 것이 많습니다.
식물은 사람 먹으라고 자라지 않았습니다
책 전체를 관통하는 생각은 이 문장에 담겨 있습니다.
야생 식물들은 인류의 수요를 위해 생겨난 게 아니라 스스로 성장하고 번식하는 데 목적이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그래서 식물은 어린잎이나 꽃송이에 독 물질을 모아 두고 몰래 훔쳐 먹는 동물에 대응합니다. 우리가 나물로 뜯는 곳이 하필 어리고 연한 줄기와 잎입니다. 저자는 그 부위가 식물의 방어가 가장 삼엄한 곳이라고 짚습니다. 오랜 육종을 거친 재배 채소는 다릅니다.
맛은 별로일지 몰라도 독이 없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공룡이 먹었다던 고사리
저자는 친구들과 베이징 근교로 등산을 갔다가 농가에서 산채무침을 시켰습니다. 나온 것은 통조림 고사리싹에 마늘가루를 조금 넣어 무친 게 전부였는데 친구들은 "공룡이 먹었다던 그거잖아!" 하며 감탄했다는군요. 저자는 설명을 꺼내려다 아내의 눈빛을 보고 입을 다물었습니다.
공룡이 고사리를 먹었는지는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공룡이 번성한 시기의 주식은 남양삼나무 같은 나자식물이었고 양치식물은 식후 디저트 정도였을 거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고사리가 지금도 사랑받는 까닭은 뭘까요. 저자는 아마 산과 들에 대한 정 때문일 거라고 추측합니다.
그래서 야생 식물을 먹는 것이 실속 있는 행동이라기보다 하나의 의식으로 변해버렸다.
차례상에 고사리를 올리는 마음도 이런 게 아닐까요. 맛이 특별해서라기보다 올라와 있어야 상이 완성되는 느낌 말입니다. 저는 그게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의식에 손질이라는 단계가 붙어 있었다는 건 이 책을 읽고서야 알았습니다.
손질하지 않은 고사리는 위험합니다
책은 고사리 장 끝에 팁을 따로 붙여 경고합니다. 절대 다수의 양치식물에는 화학 무기인 시안화물이 들어 있습니다.
제대로 잘 처리하지 않으면 혀가 마비되거나 심하게는 목숨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
쌀뜨물에 24시간 이상 담갔다가 끓는 물에 살짝 데칩니다. 아린맛과 쓴맛이 사라질 때까지 찬물에 다시 24시간 이상 담근답니다. 명절 전에 어머니들이 고사리를 불리고 삶고 우려 두던 수고가 괜한 게 아니었구나 싶었습니다.
산에서 캔 것이 더 몸에 좋을까
저자는 야생 식물이 영양도 더 풍부하다는 말을 따져 봅니다. 애기원추리는 비타민 C가 100그램당 340밀리그램으로 배추(47밀리그램)보다 훨씬 높습니다. 대신 독이 있습니다. 명아주는 72밀리그램인데 맛이 없어 배추만큼 먹기 어렵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야생 식물로 비타민 C를 보충하는 건 그저 아름다워 보이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산나물을 먹는 첫째 원칙은 전문가의 지도 아래 캐고 잘 모르는 것은 캐지 않는 것입니다. 이번 연휴에 성묘하러 산에 가시는 분들도 이 한 줄은 기억해 두면 좋겠습니다.
시금치와 두부는 같이 먹어도 됩니다
시금치에는 옥살산이 많아 칼슘이 100그램당 99밀리그램으로 풍부해도 몸은 그중 5%밖에 흡수하지 못합니다. 옥살산은 결석의 원인으로도 지목되어서 시금치와 두부를 같이 먹으면 독성이 배가 된다는 말까지 돌았습니다. 저자는 이 주장이 비과학적이라고 잘라 말합니다. 두부의 칼슘과 만난 옥살산은 침전물이 되어 몸 밖으로 나가므로 혈액에 들어가 결석을 만들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이유입니다.
물론 옥살산 섭취량을 줄이는 것이 건강에 도움이 되기는 한다. 옥살산은 물에 잘 녹기 때문에 물에 데친 시금치가 훨씬 안전하다.
시금치나물은 데쳐서 무치니 마음이 놓였습니다. 저자는 이런 당부도 남깁니다.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적당한 섭취량이 있고, 음식의 다양성을 높이는 것이 건강을 지키는 황금원칙이라는 걸 기억할 필요가 있다.
감은 공복에 조심하세요
추석 과일 바구니에는 감도 자주 들어 있습니다. 감의 떫은맛은 열매에 든 타닌에서 나옵니다. 위 속에서 위액의 단백질이 타닌과 만나 응고하고 감 껍질과 과육이 뒤섞이면 영락없는 콘크리트가 됩니다. 이것이 위석입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뭐니 뭐니 해도 공복인 상태에서 감을 다량 섭취하지 않는 것이다.
콜라를 마시면 위석이 풀린다는 민간요법은 도움이 안 됩니다. 상복부 통증이나 식욕부진, 구토 같은 징조가 보이면 가능한 한 빨리 의사를 찾으라고 합니다. 곶감 표면의 하얀 가루는 95%가 당이라니, 약이라기보다 그냥 단맛인 셈입니다.
마무리하며
책을 덮고 '자연 그대로'라는 말이 조금 다르게 들렸습니다. 저자는 시금치 장을 이렇게 마무리합니다.
세상에 있는 물종은 본래 인류를 위해서 생긴 것이 아니다.
먹거리를 겁내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식물이 자기를 지키려고 만든 것을 우리가 빌려 먹는 셈입니다. 손질하고 익히고 적당히 먹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뜻으로 읽었습니다. 책을 읽고 저는 이런 질문을 해봤습니다.
- 올해 명절 나물을 무칠 때 고사리와 시금치를 어떻게 손질하는지 집안 어른께 물어본 적이 있는가
- '천연'이나 '자연산'이라는 말만 믿고 확인 없이 먹은 것은 없나
- 감이나 곶감을 공복에 몰아서 먹지는 않는지
명절 음식이 왜 그런 방식으로 손질되어 왔는지 궁금했던 분께 이 책을 권합니다. 건강 정보 속 '천연 효능' 이야기를 한 번쯤 의심해 보고 싶었던 분, 식물과 음식 이야기를 과학 지식으로 가볍게 읽고 싶은 분께도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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