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회사 게시판이나 뉴스에 희망퇴직, 권고사직 공고가 유독 자주 올라옵니다. 저도 그런 기사를 볼 때마다 괜히 제 자리를 한 번 더 들여다보게 됩니다. 내가 없어도 이 자리는 금방 채워질까, 하는 질문이요. 세스 고딘의 『린치핀』은 바로 이 불편한 질문 앞에 선 사람들을 위해 쓴 책입니다.

쉽게 대체되는 사람 비율이라는 이름
고딘은 공장의 시대를 설명하면서 섬뜩한 용어 하나를 꺼냅니다.
공장의 시대에 경영자들은 쉽게 대체할 수 있는 노동력 비율(PERL, Percentage of Easily Replaced Laborers)을 높게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회사가 저를 쉽게 갈아 끼울 수 있게 만들수록, 회사는 더 적은 임금으로도 사람을 쓸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저는 이 대목을 읽으며 제가 다니는 회사의 업무 표준화 작업이 떠올랐습니다. 누구나 보고 그대로 따라 할 수 있도록 매뉴얼을 만드는 일, 사실 그 매뉴얼이 완성되는 순간 저는 조금 더 쉽게 교체될 사람이 되는 거였습니다.
우리가 서명한 거래는 이미 끝났다
부모 세대가 믿었던 거래는 단순합니다. 고딘은 그 핵심 덕목을 이렇게 나열합니다.
맡은 일을 하라.
시간 맞춰 출근하라.
열심히 일하라.
상사의 말을 들어라.
참아라.
시스템의 일부가 되어라.
그러면 보상을 받을 것이다.
저는 이 문장들이 제 아버지 세대의 인생 설계도와 똑같다고 느꼈습니다. 성실하게, 시키는 대로, 오래 다니면 회사가 나를 책임져 준다는 믿음이요. 그런데 고딘은 이 거래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아웃소싱과 자동화가 그 약속을 먼저 깨버렸다는 겁니다.
노동자도 자본가도 아닌 자리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일까요. 고딘은 마르크스와 애덤 스미스가 함께 전제했던 두 계급 구도 바깥을 가리킵니다.
린치핀은 다른 사람의 기계를 이용해 생산하고, 남들이 시키는 일만을 하는 프롤레타리아가 아니다. 부르주아 귀족도 아니다. 린치핀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어떤 것에 영향을 미쳐 자신만의 권력과 가치를 만들어낸다.
이 문장을 읽고 나서야 제가 회사에서 느끼는 불안이 어디서 오는지 조금 또렷해졌습니다. 저는 늘 관리자가 될지 실무자로 남을지, 둘 중 하나를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고딘이 말하는 세 번째 자리는 직급과 상관없습니다. 인간관계, 통찰, 신뢰처럼 매뉴얼로 옮길 수 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사람의 자리입니다.
꼭 필요한 사람이 되는 건 재능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 자리는 타고난 사람만 갈 수 있는 걸까요. 고딘은 분명히 선을 긋습니다.
이러한 속성은 모두 선택이다. 재능이 아니다. 마음만 먹으면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이다.
열정, 유연함, 관계를 맺는 능력. 이런 것들을 저는 줄곧 '어떤 사람은 원래 그렇게 태어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그게 기질이 아니라 매일 다시 고르는 선택이라고 말합니다. 조금 뻔한 말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저는 이 문장 앞에서 제가 스스로 포기하고 있던 것들을 떠올렸습니다.
할 수 없는 걸까, 하고 싶지 않은 걸까
그리고 고딘은 변명의 여지를 좁히는 질문을 던집니다.
할 수 없는 것인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인가?
저는 이 두 줄을 읽고 나서 한동안 멈춰 있었습니다. '할 수 없다'는 말로 덮어놓았던 일들이, 실은 '하고 싶지 않다'거나 '위험을 지고 싶지 않다'는 말이었다는 걸 인정하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고딘은 이 선택을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합니다. 다만 할 수 없어서라는 핑계만큼은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합니다.
이 책은 당장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벌이라고 등을 미는 책은 아닙니다. 대신 지금 하는 일 안에서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몫을 스스로 맡아보라고, 그 자리에서부터 꼭 필요한 사람이 되는 연습을 시작해보라고 권합니다. 요즘 자리가 불안하게 느껴지는 분, 매뉴얼대로만 일하다 지쳐가는 분, 회사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 떳떳한 이유를 찾고 싶은 분이라면 한 번쯤 이 책을 펼쳐보셔도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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