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회사 후배가 "요즘 배운 마케팅 이론이 벌써 옛날 얘기가 된 것 같다"고 하소연하는 걸 들었습니다. 저도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많습니다. 대학에서 배운 지식이 사회에 나와 몇 년 지나면 반쯤 쓸모없어지는 느낌 말이죠. 야마구치 슈의 『독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는 이 불안에서 출발합니다. 저자는 철학과 미술사를 전공했지만 정작 마케팅도, 경영학도, 조직론도 학교에서 배운 적이 없습니다. 전부 독학으로 익혀서 광고 회사와 컨설팅 회사를 거쳐 온 사람입니다. 그가 말하는 독학은 "책을 많이 읽는 법"이 아니라, 아예 다른 종류의 공부 시스템이었습니다.

기억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저자는 인간이 인풋한 정보의 90퍼센트 이상을 어차피 잊어버린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독학의 목표를 "많이 기억하기"에 두는 순간 이미 지는 게임이라는 겁니다.
‘기억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했다면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뇌의 외부화’이다.
대신 인풋한 정보의 핵심만 추려서 밖에 저장해두고 뇌는 그 정보를 추상화하고 다른 지식과 연결하는 데 쓰라는 이야기입니다. 저도 예전엔 책에 밑줄을 그어놓고 다시는 펼쳐보지 않는 습관이 있었는데, 돌이켜보면 그 밑줄들은 그냥 기억하려는 시도였지 활용하려는 시도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무엇을 인풋하지 않을 것인가
저자는 자신의 커리어 전략을 인문과학과 경영과학의 교차점으로 정해두고 그 기준에 맞지 않는 정보는 과감히 걸러낸다고 합니다. 일본의 정치 가십 뉴스는 아예 보지 않는다고도 했습니다.
전략은 필연적으로 차별화를 요구한다. 즉, 어떻게 하면 타인과 다른 정보를 인풋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 독학 전략 최대의 포인트이고,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인풋할 것인가’보다 ‘무엇을 인풋하지 않을 것인가’이다.
저는 이 대목에서 뜨끔했습니다. 스마트폰을 붙들고 다들 아는 뉴스를 읽는 데 하루 시간을 꽤 씁니다. 그런데 그런 정보로는 남들과 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모두가 아는 걸 나도 안다는 안도감만 줄 뿐이었죠.
마음에 맞는 인풋일수록 조심하라
공감 가는 글, 내 생각과 잘 맞는 의견만 골라 읽는 건 편안하지만 저자는 이게 오히려 위험하다고 경고합니다.
동질성이 높은 의견과 논고만 접한다면 지적 축적이 극단으로 치우쳐 독선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심리학자 어빙 재니스가 이름 붙인 '그룹싱크'라는 개념도 함께 소개됩니다. 똑똑한 사람들이 모여도 의견이 비슷하면 의사결정 품질이 오히려 떨어진다는 겁니다. 반대로 읽다가 짜증이 나거나 거부감이 드는 글이 있다면, 그 반응 자체가 나를 이해할 단서라는 이야기도 인상 깊었습니다. 강하게 싫은 것에는 보통 이유가 있으니까요.
질문이 없으면 배움도 없다
저자는 항상 작은 수첩을 들고 다니며 일상에서 문득 떠오르는 의문을 적어둔다고 합니다. 런던 올림픽 개회식을 보다가 "영국은 왜 이렇게 좋은 판타지 작품을 계속 만들어낼까"라는 의문이 생겨 적어뒀는데, 그게 나중에 조직 컨설팅 프로젝트의 통찰로 이어졌다는 일화도 나옵니다.
질문이 없다면 배움은 없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새로운 질문을 만들어내기 위해 독학을 한다.
비즈니스와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의문도 나중에 어딘가에서 연결된다고 저자는 확신합니다. 쓸모를 미리 재단하지 말고 궁금한 걸 그냥 궁금해하라는 조언으로 읽었습니다.
교양은 상식을 의심하는 기술이다
저자는 "금리는 왜 항상 플러스인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중세 유럽과 고대 이집트에는 마이너스 금리 경제도 있었습니다. 그걸 알면 지금 당연하게 여기는 상식이 사실은 특정 시대와 지역에서만 통하는 약속이었다는 게 보입니다.
눈앞의 세상에서 상식으로 통용되며 아무도 의문을 가지지 않고 믿고 있는 전제나 틀을 한 발 물러선 입장에서 상대화해보는, 즉 의심과 의문의 기술이 바로 교양의 진수다.
저자는 델이 매장 유통이라는 전제를 깨고 직접판매로 업계를 흔든 사례를 듭니다. 페덱스는 최단 경로라는 전제를 버리고 허브 시스템으로 성장했습니다. 혁신은 결국 "당연하다고 믿었던 것을 의심하는 힘"에서 나온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이 책은 이런 분들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 학교에서 배운 지식이 벌써 낡았다고 느끼는 직장인
- 책은 많이 읽는데 남는 게 없다고 느끼는 분
- 정보는 넘치는데 정작 통찰은 부족하다고 느끼는 분
- 전공과 다른 분야에서 커리어를 쌓고 싶은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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