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성은 훈련으로 길러질 수 있다"는 말 한마디로 KGB에 끌려가 25년형을 선고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소련의 발명가 겐리히 알츠슐러 이야기입니다. 그는 14세에 발명을 시작해 16세에 첫 특허를 땄고 이후 50년 가까이 200만 건의 특허를 뒤져가며 '트리즈(TRIZ)'라는 문제 해결 이론을 만들었습니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창의성이 길러질 수 있다는 믿음이 누군가에게는 체제를 흔드는 위협으로 보였고 그 믿음을 지킨 사람이 결국 삼성전자 같은 기업들이 배우러 다니는 문제 해결법을 남겼다는 것 말입니다.
저는 비슷한 문제가 반복될 때마다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생기나" 하고 억울해했습니다. 직장 갈등, 가족 사이의 해묵은 감정, 돈 문제까지요. 『다르게 보는 힘』을 읽고 나서는 생각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문제 자체보다, 그 문제를 어떤 틀로 보느냐가 더 큰 변수였다는 것을요.

소설처럼 읽히는 창의성 이론
이 책은 트리즈 전문 강사이자 제주신용보증재단 지점장으로 일했던 이종인 저자가, '홍 팀장'이라는 가상 인물을 빌려 트리즈를 소개하는 구성입니다. 채권 추심 담당자였던 홍 팀장이 공황장애를 겪은 뒤 우연히 트리즈 강의를 듣고 주변 사람들의 문제를 하나씩 풀어나가는 이야기입니다. 기업 혁신 도구로만 쓰이던 트리즈를 부부 싸움이나 왕따, 자금난 같은 생활 문제에 들여왔다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입니다. 저자는 알츠슐러의 말을 이렇게 전합니다.
"아직도 창의성이 후천적인 학습을 통해 발전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누구나 창의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 창의성은 프로세스를 통해 학습할 수 있다"
저는 이 문장에서 '프로세스'라는 단어가 유독 눈에 들어왔습니다. 창의성을 재능이 아니라 절차의 문제로 본다는 것, 그래서 누구든 그 절차를 밟으면 비슷한 결과에 닿을 수 있다는 뜻이니까요. 실제로 책 속 홍 팀장도 처음엔 트리즈 강의가 지루하고 철학적이라며 딴생각을 하다가 '모순도'라는 도구를 손에 쥐면서부터 하나씩 문제를 풀어냅니다.
문제 속에 답이 있다
트리즈의 핵심 도구는 모순도입니다. 하나의 목적을 이루려면 서로 반대되는 수단이 동시에 필요한 상황을 그림으로 그려보는 방법입니다. 책에 나오는 민들레영토 창업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지승룡 대표는 카페를 열고 싶었지만 돈이 모자랐고 겨우 구한 건물은 무허가라 영업 허가가 나지 않았습니다. 카페를 해야 하면서도 하면 안 되는 상황, 바로 모순이었습니다.
"문제 속에 답이 있습니다."
지 대표는 음료값 대신 '문화비'라는 이름으로 공간 이용료를 받는 방식으로 이 모순을 풀었습니다. 커피값을 받지 않으니 영업 허가도 필요 없었고 공간을 파는 것이니 장사는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 사례를 읽으면서 제가 겪었던 비슷한 딜레마들을 떠올렸습니다.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고 믿었던 선택이, 수단을 바꾸면 사실 둘 다 가능했던 경우가 꽤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당연한 걸 의심해야 보이는 것들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대목은 제주에서 커피나무를 키우는 농장 이야기입니다. 커피나무는 추위에 약해 겨울마다 난방비가 많이 들었습니다. 홍 팀장은 '커피나무는 추워서 죽는다'는 상식 자체를 의심해보라는 조언을 듣고 항온 창고에서 온도를 천천히 낮추는 실험을 합니다. 묘목 대부분은 죽었지만 2퍼센트는 영상 10도에서도 살아남았습니다. 급격한 변화에는 약해도 느린 변화에는 적응한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한 것입니다.
"과거의 경험에 의한 판단 (특히 성공 경험)이 행동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 이것이 바로 블랙 스완의 경고입니다."
이 실험 이야기를 읽다 보니 제가 '당연히 안 될 것'이라고 미리 선을 그어둔 일들이 떠올랐습니다. 사실은 안 해본 것이지, 안 되는 것은 아니었던 경우가 많지 않았나 싶습니다.
위기와 기회는 동전의 양면
커피나무 문제를 풀고 나자 새로운 문제가 생겼습니다. 제주산 원두가 수입 원두보다 비쌌던 것입니다. 책은 여기서 가격을 낮추는 것과 브랜드를 새로 만드는 것, 두 가지 선택지를 놓고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위기와 기회는 동전의 양면이라고 생각합니다."
가격을 내리는 쪽은 당장 급한 불을 끄는 소극적 해법이고 브랜드를 만드는 쪽은 적극적 해법입니다. 커피나무를 직접 보여주고 손님이 직접 로스팅하게 하면서 저렴한 수입 원두와는 다른 경험을 파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싸게 파는 것'과 '제값을 받는 것' 사이에서 늘 전자를 먼저 떠올렸던 제 습관을 돌아봤습니다.
사람 사이의 문제도 뒤집어 보면 풀린다
트리즈가 기술 문제에만 적용되는 건 아닙니다. 책은 직장 내 왕따, 고부갈등에 가까운 부부 문제까지 다룹니다. 왕따를 당하던 동료의 동생 이야기에서, 트리즈 스승 김익철 선생은 가해자들이 '마음을 바꾸지 않는 이유'부터 보라고 말합니다.
"직장에서 왕따를 당하면 주눅이 들겠죠. 그러면 사람들을 피하게 되고, 그럴수록 더욱 왕따가 고착되는 구조입니다."
악순환을 끊으려면 당사자가 스스로 상황을 바꿀 힘을 되찾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때로는 제3자의 힘을 빌리는 '호가호위'식 해법도 필요하다는 조언이었습니다. 부부 갈등 사례에서도 비슷했습니다. 시아버지와 아내 사이에 낀 아들이 직접 나서지 못하자 집안 어른들을 동원해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되돌려준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는 제가 당사자들 사이에 끼어 섣불리 조언하려 했던 순간들이 떠올라 조금 민망해졌습니다.
사업은 이윤이 아니라 사람을 남기는 것
여행 2일차에 등장하는 오설록 티뮤지엄, 금복식당, 오메기떡집은 모두 같은 원리로 움직입니다. 입장료를 받지 않거나, 만드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거나, 더 달라면 아낌없이 더 주는 쪽을 택했습니다.
"사업은 이윤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남기는 겁니다."
먼저 하나를 내주면 신뢰가 쌓이고 신뢰가 쌓이면 사람이 모인다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이 원리가 가게 운영에만 해당하는 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관계에서든 일에서든, 손해를 보지 않으려고 먼저 챙기는 쪽보다 먼저 내주는 쪽이 결국 더 오래간다는 걸, 저도 몇 번은 경험으로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책 속 트리즈 여행에 참가한 사람들은 사흘 동안 제주를 돌며 밥을 먹고 바다를 보는 사이, 몇 달을 끌어안고 있던 문제의 실마리를 하나씩 찾아갑니다. 거창한 이론보다, 자기 문제를 의심하고 뒤집어 보려는 태도 하나가 더 크게 작용했던 듯합니다. 이런 분들께 이 책을 권하고 싶습니다.
- 같은 문제가 반복된다고 느끼면서도 해결책이 안 보이는 분
- '이건 원래 안 되는 거야'라고 미리 단정해버리는 습관이 있는 분
- 직장이나 가족 안의 갈등을 조금 다른 각도로 풀어보고 싶은 분
- 창의성이 타고나는 재능이라고만 믿어온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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