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식 자리에서 누군가 한참 얘기를 하고 있는데, 듣는 사람들이 휴대폰을 만지거나 다음에 자기가 할 말을 속으로 준비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으실 겁니다. 저도 돌아보면 그런 쪽이었습니다. 상대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아, 그거 나도 겪어봤는데" 하면서 제 얘기로 넘어가 버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거든요. 『나도 내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이 좋다』의 저자 크리스텔 프티콜랭은 강연에서 참가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고 합니다. "어렸을 때 부모님이 여러분의 말을 귀담아들어주며 이해하려고 애쓴다고 느낀 적이 있습니까?" 그런데 그 질문에 손을 드는 사람은 언제나 극소수라고 합니다. 저도 질문을 받았다면 쉽게 손을 들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소통을 배운 게 아니라 '소통의 단절'을 배웠다
저자는 이 지점에서 꽤 날카로운 진단을 내립니다.
어린 시절부터 우리는 소통하는 법을 조금씩 배웠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로는 ‘소통의 단절’을 배웠다.
아이가 "고기는 맛이 이상해요"라고 말하면 "말도 안 되는 소리! 얼른 먹어!"로 받아치고 넘어져 아파하는 아이에게 "별것 아니니 울지 마!"라고 하는 식의 반응을 우리는 어릴 때부터 숱하게 들으며 자랐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그리고 그 방식을 그대로 물려받아 지금은 우리가 누군가에게 똑같이 하고 있다는 겁니다. 저도 아이가 "이게 무서워"라고 하면 반사적으로 "뭐가 무섭다고 그래"라는 말이 먼저 튀어나왔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걱정을 없애주려던 말이 오히려 그 감정을 지워버린 셈이었습니다.
좋은 대화의 80퍼센트는 사실 침묵이다
책은 경청을 과소평가하는 우리의 습관을 탈무드의 문장으로 짚습니다.
인간은 입이 하나, 귀가 두 개 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입니다.
이상적인 대화에서는 경청이 전체 대화의 80퍼센트를 차지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처음 읽었을 때는 조금 과장 아닌가 싶었는데, 가만히 제 대화 습관을 돌이켜보니 그렇지도 않았습니다. 상대가 말하는 중간에 이미 할 말을 준비하고 있었던 순간이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책은 이걸 '완전한 경청'이라고 부르는데, 말 그대로 입을 다물고 상대에게만 집중하는 상태를 뜻합니다. 쉬워 보이지만 직접 해보면 끼어들고 싶은 욕구, 결론을 내리고 싶은 욕심이 자꾸 고개를 든다고 책은 솔직하게 말합니다.
우리는 각자 자기만의 '거품' 안에서 산다
저자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걸 거품 두 개가 맞닿는 장면으로 설명합니다. 그 바탕에는 이런 전제가 있습니다.
인간은 현실 세계를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없다.
같은 아파트를 둘러봐도 어떤 사람은 조명을, 어떤 사람은 소음을, 어떤 사람은 상가와의 거리를 가장 먼저 눈여겨본다는 책의 예시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결국 내가 보는 세상과 상대가 보는 세상은 처음부터 다른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신뢰 관계에 대해 이렇게 정리합니다.
신뢰 관계는 상대의 세계관에서 상대를 만나는 데 있다.
내 기준으로 상대를 설득하려 들기 전에, 먼저 상대의 거품 안으로 들어가 보라는 뜻입니다. 평소 대화에서 제가 자주 놓쳤던 순서였습니다.
'재정리' 하나로 대화의 질이 달라진다
책이 제시하는 실용적인 기술 중 가장 마음에 남은 건 '재정리'였습니다. 저자는 재정리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상대가 조금 전에 표명한 의견을 더 이해하기 쉬운 방법으로 다시 말하는 것이다.
상대가 다섯 문장쯤 말하면, 그 내용을 한두 문장으로 간단히 되짚어주기만 하면 된다는 겁니다. 평가도 해석도 덧붙이지 않고요. 저자는 이 작은 되짚기가 상대에게 "내가 당신 이야기를 놓치지 않고 있다"는 신호를 보낸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회의에서 누군가의 말을 요약해서 되묻기만 했는데도 상대가 "맞아요, 바로 그거예요"라며 눈빛이 환해지던 순간이 떠올랐습니다. 별다른 조언도 하지 않았는데 대화가 훨씬 편해졌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모든 두꺼비 안에는 왕자가 잠자고 있다
책에서 가장 좋았던 비유는 캐나다의 정신과 의사 에릭 번의 말을 인용한 부분입니다.
모든 두꺼비 안에 왕자가 잠자고 있다. 두꺼비를 죽이는 건 쓸데없는 짓이다. 왕자를 잠에서 깨우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저자가 시내버스에서 우연히 만난 할머니 이야기도 같은 맥락입니다. 몇 정거장밖에 함께 가지 않았지만 할머니가 전날 마을 축제에서 겪은 이야기를 들어주는 동안 저자는 내릴 곳을 지나칠 뻔했다고 합니다. 심리 치료사 에르베 마냉의 말도 함께 소개됩니다.
믿기지 않겠지만, 사람들의 말을 진정으로 귀담아듣게 되면 그들을 정말로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지겹다고 느꼈던 사람의 이야기도, 제대로 들어보면 생각보다 할 말이 많은 사람이었다는 걸 저도 몇 번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당신은 지금, 누구의 말을 듣고 있습니까
이 책을 덮고 나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제가 그동안 '소통'이라고 불렀던 것의 상당 부분이 사실은 번갈아 가며 혼자 말하는 시간이었다는 겁니다. 오늘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일이 있다면, 말하기 전에 한 번만 더 들어보면 어떨까요. 이런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 대화만 하면 유난히 기운이 빠진다고 느끼는 분
-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듣기보다 먼저 결론을 내버리는 습관이 있는 분
- 가족이나 동료와의 관계에서 자꾸 같은 자리를 맴도는 느낌이 드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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