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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역사

『한국 정치의 결정적 순간들』, 인사청문회 뉴스가 매번 비슷하게 흘러가는 이유

by summaries 2026. 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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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계절이 오면 뉴스는 늘 비슷한 흐름을 탄다. 새로 지명된 장관 후보자의 재산 내역이 공개된다. 가족 관계나 부동산 문제가 하나씩 불거지고 청문회장은 해명과 추궁으로 채워진다. 9월 중순 시작된 이번 개각 인사청문회도 다르지 않았다. 후보자 여러 명을 둘러싼 논란이 동시에 터지면서 인사검증 시스템이 부실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그런데 이 장면, 어디서 본 것 같지 않은가. 그 답을 강원택 교수의 『한국 정치의 결정적 순간들』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책은 대통령, 선거, 정당, 민주화라는 네 갈래로 한국 정치사를 훑는다. 정치에 대한 불만이 반복되는 이유를 저자는 제도와 구조 안에서 찾는다. 특정 인물이나 정권 탓으로 돌리지 않는다. 저자를 따라가보면 인사청문회 파문도 마찬가지다. 어느 정부가 유독 무능해서 생기는 일이 아니라 지난 20년 가까이 쌓여온 구조의 산물이다.

존안자료에서 인사수석실로

한때 고위 공직자 인사 검증은 경찰이나 국가정보원 같은 정보기관이 모아온 존안자료로 이뤄졌다. 이 방식은 언론 보도에 자주 발목을 잡혔다. 예상치 못한 의혹이 청문회 직전이나 도중에 터져 장관 임명 자체가 흔들리는 일이 잦아졌다. 노무현 정부는 검증을 외부 기관에 맡기는 대신 청와대가 직접 챙기는 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장관 등 고위 공직자의 임명과 관련된 인사 검증은 과거에는 경찰, 국정원 등 각 정보기관에서 올리는 이른바 존안자료를 통해 이뤄졌다. 그런데 이러한 외부 기관의 검증에도 불구하고 언론 등에서 예기치 못한 문제점들을 지적하면서 장관 임명에 어려움이 발생하게 되자 노무현 정권에서는 청와대가 직접 인사 검증을 담당하도록 하면서 인사수석실을 만들었다.

인사수석실은 검증 실패에 대한 대응으로 태어난 조직이다. 처음부터 완벽한 검증 시스템을 설계해둔 것이 아니다. 사고가 날 때마다 조직을 새로 만들며 대응해온 역사가 여기서 시작된다.

이름은 바뀌어도 반복되는 실패

그렇게 만들어진 인사수석실도 영원하지 않았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름과 소속이 달라졌다. 그 계기 역시 매번 검증 실패였다.

그 이후 청와대의 인사 기능은 이명박 정부 때는 인사수석을 없애고 비서실장 직속 인사비서관이 그 역할을 담당하도록 했는데 2009년 검찰총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 검증 실패 이후 다시 수석급인 인사기획관직으로 바꿨다. 박근혜 정부 역시 2014년 6월 인사수석직을 만들었고 문재인 정부도 마찬가지로 인사수석직을 두고 있다.

조직 개편의 계기는 매번 검증 실패였다. 인사비서관에서 인사기획관으로, 다시 인사수석으로 이름이 바뀌는 동안에도 검증이 뚫리는 근본 이유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정부가 바뀌어도 비슷한 논란이 되풀이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 역사 자체가 하나의 패턴이다.

권한을 가진 조직은 스스로 줄지 않는다

청와대는 왜 인사 검증까지 끌어안게 되었을까. 저자는 조직의 속성에서 이유를 찾는다.

사실 권력을 가진 조직이 스스로 권력의 한계를 규정하고 이를 지키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조직은 어디에서나 한번 생겨나면 관할 영역이나 권한을 확대시키고자 하는 경향을 갖는다.

검증 권한을 쥔 조직이 스스로 그 범위를 줄이는 경우는 드물다. 장관과 차관을 검증하던 손길이 과장급이나 공기업 인사까지 뻗어간 것도 이 경향의 연장이라고 저자는 짚는다. 인사청문회 시즌마다 검증 범위와 깊이를 놓고 말이 많아지는 것도 이 구조 위에서 벌어진다.

청문회라는 창, 그 뒤의 사적 조직

민주화 이후 국회의 견제 장치는 분명히 늘었다. 국정조사, 국정감사, 인사청문회까지. 그런데 저자는 이 제도들만으로는 근본적인 답이 되지 못한다고 본다.

국정조사, 국정감사, 인사청문회 등 국회의 대통령 견제 권한이 커졌고 법원이나 헌법재판소의 정치적 영향력도 커졌다. 그럼에도 우리 정치가 근본적으로 강한 대통령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집권당, 국무회의와 같은 제도적으로 주어진 기구에 의존하지 않고 청와대 비서실과 같은 보다 사적인 조직에 통치를 크게 의존하기 때문이다.

인사청문회는 국회의 공적 견제 장치다. 그러나 검증의 실권은 청와대라는 사적 조직 쪽에 쌓여 있다. 청문회장에서는 정보가 드러난다. 후보자를 실제로 걸러내는 과정은 그와 별개로 돌아간다. 둘 사이의 거리가 이 구조에서 나온다.

캠프와 불신이 만든 인사 구조

청와대 비서실이 이렇게까지 커진 데는 이유가 더 있다. 저자는 대통령 선거가 캠프 중심으로 치러지는 관행과 관료제를 향한 대통령의 불신을 함께 짚는다.

더욱이 후임 대통령이 전임자의 정책을 폐기하는 경우가 많아서, 전임 정부의 핵심 정책을 맡아 열심히 일한 것이 인사 평가 때 ‘전임 정부 사람’, 심지어 ‘적폐’로 몰려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게 되었다.

관료 조직을 믿지 못하니 검증과 인사는 대통령과 개인적으로 신뢰를 쌓은 캠프 인사들에게 간다. 그 결과 검증 과정이 몇몇 사람의 판단 안에 좁게 갇힌다. 후보자 개인의 문제로 보이는 장면 뒤에는 이렇게 쌓여온 구조적 좁힘이 있다.

저자가 말하는 진짜 대안

그럼 해법은 인사청문회를 더 세게 하는 것일까. 저자의 답은 조금 다른 곳을 향한다.

정치는 서로 다른 입장을 갖는 집단끼리 타협과 양보에 의해 합의를 도출해내는 과정이다. 그래서 정치는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고 통합을 촉진하는 기능을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이러한 정치가 존재하지 않는다. 정치가 다시 살아나야 한다.

저자가 힘주어 말하는 곳은 국회다.

국회는 국민의 대표자가 모여 있는 곳으로, 이곳에서 모여 협의 및 논의하며 국정을 이끌고 나가는 방식이 대통령 혼자서 모든 것을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보다 훨씬 바람직한 방향이다.

국회와 내각 같은 공적 기구 전체가 제 역할을 되찾는 쪽이 먼저라고 읽힌다. 인사청문회 하나를 강화하는 일은 그다음이다.

맺는 말

다음 인사청문회 뉴스를 볼 때 우리가 던질 질문도 조금 달라질 수 있다. 이 후보자가 왜 이런 문제를 안고 지명되었는가. 여기에 두 가지를 더 물어볼 만하다. 왜 이런 문제가 매번 청문회 직전에야 드러나는지, 그 검증의 권한이 지금 누구 손에 있는지. 정치 뉴스를 볼 때마다 비슷한 논란이 반복된다고 느끼는 사람이라면 이 책에서 얻어갈 것이 많다. 특정 정권 비판을 넘어 제도의 구조를 이해하고 싶은 독자, 대통령제와 선거와 정당의 역사를 한 번에 정리해보고 싶은 독자에게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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