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하루를 마치고 집에 돌아올 때, 뭔가 해냈다는 기분보다 그냥 '오늘도 버텼다'는 허탈함이 먼저 들 때가 있습니다. 조선 최고의 학자로 불리는 정약용도 이런 감정을 느꼈던 모양입니다. 《다산의 마지막 공부》는 정조가 가장 아끼는 신하였다가 18년간 유배를 떠나야 했던 다산이, 인생의 마지막 즈음에 붙잡았던 공부가 다름 아닌 '마음'이었다는 이야기에서 출발합니다.

자긍심 넘치던 학자가 마주한 허무
다산은 회갑을 맞아 스스로 쓴 묘비명에서 이렇게 털어놓습니다. 평생 경전을 공부하고 《경세유표》, 《목민심서》, 《흠흠신서》 같은 방대한 책을 써서 세상에 도움이 되고자 했다고, 그래서 학문의 본말을 갖췄다고 생각한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뒤이어 나오는 문장이 뜻밖입니다.
그러나 알아주는 이는 적고 나무라는 이는 많다. 만약 하늘이 인정해주지 않는다면, 저 횃불로 내 모든 책들을 모조리 태워버려도 좋다.
셋째 형은 처형당했고 둘째 형과 함께 유배를 떠나며 집안이 몰락하는 걸 지켜봐야 했던 사람의 말입니다. 그 고난의 끝에서 다산이 붙잡은 건 더 많은 지식이 아니라 마음을 다스리는 공부였습니다.
유배지에서 그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책
다산은 《소학》과 《심경》, 이 두 책에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특히 마음에 관한 경전이라 불리는 《심경》을 자기 공부의 매듭으로 삼겠다고 다짐합니다.
이제로부터 죽는 날까지 마음을 다스리는 일에 힘을 다하고자 하여, 경전을 공부하는 일을 《심경》 으로 맺고자 한다. 아! 능히 실천할 수 있을까!
"능히 실천할 수 있을까"라는 반문이 눈에 밟힙니다. 조선 최고의 학자조차 스스로에게 확신을 갖지 못했다는 뜻이니까요.
공부란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 일
책은 《맹자》의 한 구절을 가져옵니다.
사람들은 닭이나 개를 잃어버리면 곧 찾을 줄 알지만, 잃어버린 마음은 찾을 줄 모른다. 학문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 데 있다
저는 이 구절을 읽으며 뭘 잃어버렸는지도 모른 채 살아가는 요즘 사람들 생각이 났습니다. SNS를 들여다보다가 공연히 허무해지고 남들과 비교하다가 스스로를 괴롭히는 순간들이요. 맹자가 2,500년 전에 한 지적이 지금도 그대로 들어맞는다는 게 조금 허탈하기도 합니다.
혼자 있을 때가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서 드러나는 것
책에서 가장 눈에 띈 대목은 '신독'에 대한 다산의 해석이었습니다. 보통 신독을 '혼자 있을 때 조심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다산은 다르게 봤습니다.
신독이라는 것은 자기 홀로 아는 일에서 신중을 다해 삼간다는 것이지, 단순히 혼자 있는 곳에서 행동을 삼간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방에 홀로 앉아서 자신이 했던 일을 묵묵히 되짚어보면 양심이 드러난다.
다산은 오히려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자리에서,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저지르는 거짓과 피해를 더 경계해야 한다고 봤습니다. 겉으로 멀쩡해 보이는 사람일수록 혼자 있는 밤에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너무 높이 오른 용이 후회하는 법
《주역》 건괘에는 용의 여정을 빗댄 효사가 나옵니다. 그중 마지막 단계가 인상적입니다.
용이 너무 높이 날아올라 땅에서 멀어지면 재앙이 온다. 지도자 역시 가장 높은 자리에 올라 독선과 오만에 사로잡히면 결국 패망하게 되고, 그때는 후회해도 소용없다.
승진이든 성공이든, 자리가 높아질수록 땅에서 멀어지기 쉽습니다. 다산이 평생 마음공부를 놓지 않았던 이유도 이와 비슷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마무리
책은 다산을 인용한 다음 문장으로 마음공부의 의미를 정리합니다.
신독이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단정함을 유지하는 태도가 아니다.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단단해진 나를
만들어 가려는 간절함이다.
거창한 수양을 할 자신은 없지만 하루를 마무리하며 오늘 내가 누구에게 어떤 식으로 굴었는지 잠깐 돌이켜보는 정도는 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성과는 쌓이는데 마음은 자꾸 헛헛한 분, 혼자 있을 때는 멀쩡한데 사람들 사이에서 쉽게 무너지는 자신이 불편한 분, 고전이 어렵게만 느껴졌던 분이라면 다산과 정조, 맹자의 말을 쉽게 풀어주는 이 책이 꽤 도움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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