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렇게 불평등한 일이 많아요? 그리스 재무장관을 지낸 경제학자 야니스 바루파키스는 딸에게 이 질문을 받고 만족스러운 답을 하지 못했다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딸에게 편지를 쓰듯 경제사를 처음부터 다시 풀어낸 책이 《작은 자본론》입니다. 뉴스에서 자산 격차나 양극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저도 비슷한 질문을 던지곤 했습니다. 왜 어떤 나라는 부유하고 어떤 나라는 가난한가. 왜 같은 사회 안에서도 격차가 이렇게 벌어지는가. 이 책은 그 답을 찾으려고 인류가 농사를 짓기 시작한 순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애버리지니는 왜 영국을 침략하지 않았을까
바루파키스는 딸에게 뜻밖의 질문을 던집니다. 영국인은 오스트레일리아에 쳐들어가 애버리지니의 땅을 빼앗았는데, 왜 그 반대는 일어나지 않았을까요.
"왜 애버리지니 전사들이 도버에 상륙한 다음, 재빨리 런던을 향해 밀고나가서 자기들에게 감히 저항하는 영국인을 모두 죽이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까? 너희 학교에서는 어떤 선생님도 이런 질문을 해 볼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을 것이다."
흔한 답은 유럽인이 더 영리했다는 것이지만 저자는 이 답을 단호히 거부합니다. 진짜 이유는 DNA가 아니라 '잉여 생산물'에 있습니다.
잉여 생산물이 만든 것들
농경이 시작되면서 인류는 처음으로 먹고 남는 곡식을 갖게 됩니다. 저자는 이 잉여 생산물을 진짜 경제의 출발점으로 봅니다.
"잉여 생산물이란 그해에 생산되었거나 그 전해에 비축해 둔 토지 생산물을 말한다. 먹고살거나 씨앗으로 보관하는 데 충당하고 나서도 남아서 나중을 위해 저장해 두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만들 만큼 남는 생산물이다."
잉여 생산물은 그 자체로는 그저 남는 곡식일 뿐인데, 이걸 지키고 나누는 과정에서 글자, 부채, 화폐, 국가, 군대, 심지어 잉여 생산물을 관리해줄 성직자까지 줄줄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애버리지니는 야생 동물과 열매가 풍부해 농경이 필요 없었으니 이런 것들을 발명할 이유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영국인이 상륙했을 때 벗어날 방법이 없었던 겁니다. 인종이나 능력의 차이가 아니라 순전히 지리적 조건이 잉여 생산물을 만들 수 있었느냐 없었느냐의 차이였다고 저자는 설명합니다.
피는 왜 돈을 주면 오히려 덜 모일까
저자는 '실제 가치'와 '교환 가치'를 구분하며 흥미로운 예를 듭니다. 혈액 기증자에게 돈을 주는 나라와 무료로 기증받는 나라 중 어느 쪽에 헌혈량이 더 많을까요.
"실제로 자발적이고 무료로 혈액 기증을 한 나라보다 기증자가 돈을 받는 나라에서 기증된 혈액 양이 훨씬 더 적다. 남을 돕기 위해 자신의 피를 주려고 하고 이러한 마음의 대가로 돈을 받는 것을 싫어하는 기증자가 돈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보다 명백히 더 많다."
도움을 줬다는 기쁨의 실제 가치는 5유로 같은 작은 교환 가치로 환산되는 순간 오히려 사라져버립니다. 저자는 오스카 와일드의 말을 빌려 이렇게 정리합니다. "냉소적인 사람이란 가격은 모두 알면서도 가치는 하나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모든 것에 가격을 매기려는 사회일수록 정작 값을 매길 수 없는 것들의 가치는 점점 희미해진다는 지적입니다.
기계가 일을 잘할수록 이윤이 사라지는 역설
이 책에서 가장 곱씹게 되는 대목은 자동화에 관한 부분입니다. 모든 기업가의 꿈은 노동자를 불평도 없고 노동조합도 요구하지 않는 로봇처럼 만드는 일입니다. 저자는 그 꿈이 실현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를 묻습니다.
"대기업이 인간의 노동력을 기계로 대체하고 인간의 노동력이 기계 장치처럼 기능하도록 더 잘 훈련시킬수록 우리 사회가 생산하는 제품의 가치는 더 많이 떨어지고, 기업의 이윤 또한 더욱더 적어진다."
인간이라는 요소가 사라진 생산에는 교환 가치도 함께 사라진다는 논리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이렇게 덧붙입니다.
"역설적인 것은 기업이 노동자의 저항을 분쇄하여 노동자를 말 잘 듣는 안드로이드로 바꾸는 데 실패해야 결국에는 시장 사회가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요즘 자동화나 AI가 일자리를 대체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걱정과 함께 묘한 안도감도 듭니다. 이 책의 논리를 따라가면 인간을 완전히 몰아낸 생산 방식은 기업 입장에서도 자기 발등을 찍는 셈이 됩니다. 인간이 예측할 수 없게 반항하고 자기에게 프로그램된 것을 넘어서는 존재라는 사실이 아이러니하게도 시장 사회를 지금까지 지탱해온 힘이었다는 겁니다.
딸에게 경제를 설명하려던 아빠의 편지는 결국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불평등이 얼마나 우연한 지리적 조건과 역사적 선택에서 시작됐는지를 보여줍니다. 경제 뉴스를 볼 때마다 막연히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그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웠던 분들, 자동화와 일자리에 대한 불안을 다른 각도에서 정리해보고 싶은 분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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