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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경영

『21세기 기본소득』, 일자리가 사라진 자리에 무엇을 놓을 것인가

by summaries 2026. 10.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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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에 들어가면 이제 계산대보다 셀프 키오스크가 더 많습니다. 콜센터에 전화를 걸면 상담사 대신 AI가 먼저 받고요. 2026년 한국에서 취업을 준비하는 분들께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말은 더 이상 먼 나라 뉴스가 아닙니다. 플랫폼으로 배달을 뛰거나 단기 계약을 전전하는 분들에게는 오히려 너무 익숙한 현실이죠. 저도 주변에서 "이러다 내 일도 없어지는 거 아니냐"는 말을 꽤 자주 듣습니다.

그런 질문을 안고 『21세기 기본소득』을 펼쳤습니다. 벨기에 철학자 필리프 반 파레이스와 정치학자 야니크 판데르보흐트가 쓴 이 책은 기본소득이라는 아이디어를 가장 체계적으로 정리한 책으로 꼽힙니다. 두 저자는 처음부터 선을 분명히 긋습니다. 이건 선동 팸플릿이 아니라 기본소득에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 모두가 책상 위에 두고 참조할 자료집에 가깝다고요. 그래서인지 책은 "기본소득이 왜 좋은가"만큼이나 "기본소득이 왜 쉽지 않은가"에도 솔직합니다.

『21세기 기본소득』, 일자리가 사라진 자리에 무엇을 놓을 것인가 표지

자유의 도구, 노예의 도구

책 맨 앞에는 루소의 문장이 걸려 있습니다.

수중에 있는 돈은 자유의 도구지만, 기를 써서 벌어야 하는 돈은 노예를 만드는 도구다.

저자들이 기본소득을 정의하는 방식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재산 조사도, 근로 의무도 없이, 개인 단위로,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현금. 기존 복지를 다 없애고 그 돈으로 때우자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실업급여나 기초연금 같은 기존 제도 아래에 깔리는 바닥입니다. 책은 이걸 "형식적 자유"가 아니라 "실질적 자유"라고 부릅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할 권리만으로는 부족하고 실제로 그걸 할 수 있는 처지가 되어야 합니다.

일자리를 나눠 가진다는 생각

저자들은 자동화가 일자리를 없앤다고만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완전고용'이라는 목표 자체를 다시 보자고 제안합니다.

우리는 얼마 되지 않는 양의 버터를 빵 전체에 묻히기 위해 얇게 펴발라야 하듯이, 남아 있는 얼마 안 되는 일자리를 가급적이면 광범위하게 나눠 여러 사람이 참여해 수행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케인스가 했던 말을 저자들이 다시 꺼내온 대목입니다. 일자리를 모두에게 하나씩 쥐여주는 대신, 있는 일자리를 잘 나눠 쓰자고요. 책은 과로로 병든 사람과 일을 못 구해 병든 사람의 원인이 같다고 말합니다. 전에 다뤘던 『보통 사람들의 전쟁』에서 앤드루 양이 짚었던 '틀에 박힌 일자리'부터 사라진다는 이야기와도 이어지는 지점입니다. 기본소득은 그 자리를 메우는 바닥이자 일을 줄이고 싶을 때 줄일 수 있게 해주는 완충장치입니다.

공짜로 받는 게 아니라 원래 내 몫

가장 많이 듣는 반박은 "일하지 않는 사람한테 왜 돈을 주냐"는 말입니다. 저자들은 이 질문에 정면으로 답합니다. 소득의 대부분은 애초에 내 노력만의 몫이 아닙니다.

미국이나 북서유럽의 부유한 나라들에서 발생하는 소득의 약 90퍼센트 혹은 그 이상은 사회적 자본이 창출하는 것이라는 결론을 피하기 힘들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허버트 사이먼의 계산을 인용한 대목입니다. 같은 사람이 미국에서 태어났을 때와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났을 때 버는 돈의 차이는 더 열심히 일해서 생기는 게 아닙니다. 쌓여온 기술과 제도와 인프라를 공짜로 물려받은 결과죠. 그러니 기본소득은 자선이 아니라 원래 공동의 몫이었던 걸 공정하게 나누는 일이라고 책은 주장합니다.

그래서 돈은 어디서 나오나

여기서부터 책이 꽤 솔직해집니다. 좋은 이야기만 하지 않습니다. 네덜란드 정부가 1인당 GDP의 25퍼센트 수준 기본소득을 모의실험했더니, 필요한 단일세율이 56.6퍼센트로 나왔다는 수치도 그대로 보여줍니다. 재원은 결코 만만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래서 저자들의 결론은 조심스럽습니다. 한 번에 넉넉한 기본소득을 깔자는 게 아니라 소득세를 재원으로 삼아 적은 액수부터 시작하고 기존 복지를 그 위에 보조로 남겨두자는 쪽입니다.

기본소득은 비용이 아니라 투자인 것이다.

당장 나가는 돈만 보지 말고 실업의 함정에서 빠져나와 더 나은 일자리를 찾거나 교육을 받을 여지가 생기는 쪽도 함께 보라는 뜻입니다.

누가 반기고 누가 꺼리는가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누가 기본소득을 좋아하고 누가 싫어하는지를 따로 짚은 장이었습니다. 노동조합은 생각보다 뜨뜻미지근합니다. 정규직 조합원들에게 당장 큰 이득이 없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플랫폼노동자나 단기 계약직처럼 불안정한 일자리에 있는 사람들, 그리고 여성들 쪽에서 지지가 더 뚜렷합니다.

재계에서도 뜻밖의 지지자가 나옵니다. 독일의 약국 체인 창업자 괴츠 베르너는 직원 2만6000명을 거느린 입장에서 오히려 기본소득을 주장합니다.

새로운 아메리칸 드림이란, 식료품, 주거, 안정 등의 기본적인 인간적 필요에 대해 전혀 걱정할 필요 없이 우리가 가진 가장 근본적인 여러 가치들에 따라 스스로를 위해 그리고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각자가 원하는 인생을 선택하고 창조할 자유를 모든 이들이 얻는다는 뜻이 될 것이다.

미국 최대 노조 중 하나를 이끌었던 앤디 스턴의 말입니다. 조직노동 안에서조차 입장이 갈립니다. 이 논의는 진영 싸움으로 간단히 정리될 문제가 아닙니다.

유토피아, 그러나 뒷문으로

저자들은 자신들의 제안이 유토피아적이라는 걸 인정합니다. 노예제 폐지나 보편 선거권도 한때는 다 그런 취급을 받았다는 말과 함께요. 그리고 신자유주의의 지적 대부였던 하이에크가 1949년에 했던 말을 가져옵니다. 사회주의자들이 성공한 이유는 유토피아를 말할 용기가 있었기 때문이고 자유주의자들에게 부족한 건 바로 그 용기라고 했던 말입니다. 저자들은 이렇게 답합니다.

하이에크 씨, 옳은 말씀이십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자유로운 사회의 유토피아는 당신의 유토피아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이는 모든 이들에게 실질적인 자유를 가져다주는 유토피아로서, 우리를 시장의 독재로부터 해방시키고 그를 통해 우리의 지구를 구출해내도록 해주는 유토피아입니다.

책은 한 번에 큰 혁명을 기대하지 말고 대신 작은 기회들을 쌓아 올리라고 말합니다. AI가 일자리를 얼마나 가져갈지 아직 아무도 정확히 모르는 지금, 이 책이 묻는 건 하나입니다. 일이 사라진 자리에 사람의 자유까지 함께 사라지게 둘 것인가, 아니면 그 자리에 디딜 발판을 놓을 것인가. 당장 답을 내리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질문을 미루지는 않아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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