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유리창에 비친 제 얼굴을 보다가 흠칫 놀랄 때가 있습니다. 분명 마음은 몇 년 전 그대로인데 눈가 주름이나 표정은 낯설게 느껴지는 순간이요. 미레유 길리아노의 『프랑스 여자는 늙지 않는다』를 집어 든 것도 그런 날이었습니다. 저자는 예순을 훌쩍 넘긴 프랑스 여성이자 전직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임원입니다. 제목만 보면 동안 비법서 같지만 책이 내내 다루는 주제는 나이 드는 것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거울부터 제대로 보기
노화 대처법의 첫 단계에 저자는 뜻밖에도 '마음가짐'을 놓습니다. 건강, 운동, 성형 같은 항목보다 먼저요.
우리는 거울 속에서 현재의 자신을 보지 못하고 흔히 과거의 자신을 본다. 때로는 우리가 되고 싶은 모습이나 생각하는 모습에 사로잡혀 있기도 하다.
저도 이 문장에서 뜨끔했습니다. 사진 속 몇 년 전 얼굴을 기준으로 지금 얼굴을 평가하고 있었더라고요. 정작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연습은 한 적이 없었습니다.
극단으로 치닫는 두 가지 태도
미국 여성들의 노화 대처 방식을 두고 저자가 내놓은 관찰이 흥미롭습니다. 죽기 살기로 젊어 보이려 애쓰거나 아니면 아예 포기해버리거나 둘 중 하나로 쏠립니다. 그러면서 대학 친구 데니스 이야기를 꺼냅니다. 유행 지난 옷, 얼굴과 안 맞는 화장, 완전히 구식인 헤어스타일. 저자는 이걸 '포기'의 징후라고 부릅니다.
시간이 갈수록 우리의 ‘마음가짐’은 자꾸만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나는 당당하게 나이 먹고 목적의식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감이 붙은 반면, 데니스는 나이 먹는 것에 무관심하고 자꾸만 위축되고 있다.
책이 말하는 '당당하게 나이 먹기'는 그 사이 어딘가에 있습니다. 극단으로 애쓰지도 않고 손을 놓지도 않으면서 자신을 계속 돌보는 자리입니다.
물구나무서는 일흔의 남자, 잭
인쇄업자 잭은 저자가 뉴욕에서 알고 지낸 사람입니다. 50대에 암을 이겨낸 뒤 삶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일흔이 넘어서도 40대 못지않게 열정적으로 일했다고 합니다. 비결을 묻자 그는 사무실 바닥에 그대로 물구나무를 서 보였습니다.
“아침마다 요가를 하고, 물구나무서기를 20분 동안 해요. 그리고 몸에 좋은 음식을 먹죠.”
거창한 비법이 아니라 매일 반복하는 작은 습관이었습니다. 저자의 보모 이베트도 그랬습니다. 여든이 넘어서도 뉴욕 여행을 계획하던 분이죠. 잭과 이베트의 공통점은 하나였습니다. 살고자 하는 의지와 마음가짐이 남달랐다는 것.
급격한 변화 대신 '조금씩 꾸준히'
연초마다 헬스클럽과 다이어트 광고가 쏟아지지만 대부분 작심삼일로 끝난다고 저자는 짚었습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너무 비현실적인 계획을 세우기 때문입니다.
급격한 변화는 대개 오래가지 못한다. 하지만 조금씩 꾸준히 실천하면 목적지에 서서히 다다르게 된다. 도중에 길에서 좀 벗어나도 금세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다. 실패가 아니라 조금 지체될 뿐이다.
한 달에 2~3킬로그램은 쉽게 뺄 수 있지만 요요가 곧 따라온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단기간에 확 바꾸기보다 몇 가지 아이디어를 골라 1년 넘게 꾸준히 실천하라는 조언이 이 책 전체에 깔려 있습니다.
옷장은 적을수록 좋다
패션 이야기도 결국 같은 원칙으로 돌아옵니다. 프랑스 여자들은 옷을 잔뜩 쌓아두지 않는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품질 좋고 유행 타지 않는 옷을 소수로 갖추고 새 옷을 하나 사면 낡은 옷 하나를 내보낸다고요.
구두나 옷을 장만하는 것은 일종의 제로섬게임이다. 해지거나 유행에 뒤처진 것을 하나 빼야 새것을 장만한다.
디자이너 베아트리스는 나이가 들수록 검은색만 고집하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프랑스에서 검은색은 미망인의 색이라는 인식이 있어서 오히려 더 나이 들어 보이게 한다고 합니다. 대신 감청색, 암회색, 가지색처럼 검정보다 부드러운 색을 권합니다. 사소한 이야기 같습니다. 그런데 옷장 하나를 대하는 태도에도 '많이 쌓아두기'보다 '제대로 갖추기'라는 마음가짐이 똑같이 깔려 있어서 흥미로웠습니다.
카트린느 드뇌브의 오후 다섯 시
배우 카트린느 드뇌브는 저자가 파리 이웃으로 종종 마주치는 사람입니다. 이제 스틸레토 힐도 새빨간 립스틱도 하지 않습니다. 살이 붙고 목에 주름이 잡힌 모습을 굳이 숨기려 들지도 않고요.
그녀는 요즘도 오후 다섯 시에 레몬스쿼시를 한 잔씩 마신다. 자신에게 만족하며, 멋지고 당당하게 나이 드는 여성의 훌륭한 본보기이다.
이 책이 말하는 '당당함'은 완벽하게 젊어 보이는 일과는 다릅니다. 지금의 자신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최선의 모습을 가꾸는 쪽에 가깝습니다.
이 책은 이런 분들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 거울 속 자신을 볼 때마다 마음이 복잡해지는 분
- 극단적인 다이어트나 시술 대신 꾸준히 실천할 방법을 찾는 분
- 나이 드는 일이 불안한데 조금 다른 시선을 얻고 싶은 분
- 옷장이나 화장대를 단순하게 정리하고 싶은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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