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달 사이 이 블로그에서는 다루지 않았지만 11월 초가 되면 다들 한 번씩 올해 세운 계획을 되짚어보실 것 같습니다. "아침형 인간이 되겠다", "퇴근하고 운동부터 하겠다" 같은 다짐들, 지금 와서 보면 며칠 못 가 흐지부지된 경우가 더 많으셨을 겁니다. 저도 올 초에 새벽 기상을 하겠다고 호기롭게 선언했다가 지금은 알람을 세 개씩 맞춰놓고도 못 일어나는 처지입니다. 《스스로 움직이게 하라》를 읽으면서 좀 억울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사람이 작심삼일로 끝나는 게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라, 애초에 의지만으로 움직이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니라는 것
저자 김종삼은 오랫동안 기업과 공무원을 대상으로 교육을 해온 사람입니다. 그런데 교육을 많이 할수록 깨달은 건, 교육의 효과가 딱 강의실을 나서는 순간까지만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공자도 이미 비슷한 답답함을 느꼈다고 책은 전합니다.
알면서도 행하지 않으면 차라리 모르는 게 낫다
심지어 한비자가 공자의 제자 70여 명의 행적을 추적해봤더니, 가르침대로 실제로 살았던 사람은 공자 자신 한 명뿐이었다고 합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묘하게 위로를 받았습니다. 우리가 유독 의지가 약해서 매번 다짐을 못 지키는 게 아니라, 원래 사람이라는 게 그렇게 생겨먹은 모양입니다.
단감나무 밑에서 아내가 멈춘 이유
저자가 가족과 산에 갔을 때의 일화가 나옵니다. 잘 익은 단감을 보고 아내가 따먹으려 하자, 아이들이 CCTV에 걸리면 큰돈을 물어줘야 한다며 말렸다고 합니다. 실제로는 카메라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는데도 아내는 끝내 감 따기를 포기했습니다. 저자는 이 장면에서 어느 목사님이 했다는 말을 떠올립니다.
CCTV가 이 시대의 하나님입니다
책은 사람의 행동을 실제로 바꾸는 게 무엇인지 보여주는 사례를 하나 더 듭니다. 한 회사 대표가 직원들이 근무 중 인터넷을 많이 한다는 걸 알고 여러 번 교육을 했지만 소용이 없었는데, 컴퓨터에 모니터링 프로그램을 설치하자 그날부터 아무도 인터넷을 켜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처럼 사람의 행동을 바꾸는 것은 그 사람의 인격이나 의식이 아니다. 모니터링 프로그램이나 감시 카메라 같은 시스템이다.
읽으면서 좀 뜨끔했습니다. 저도 회사 와이파이가 느려지면 누가 유튜브를 보나 싶어 신경이 쓰이는데, 사실은 제 의식 수준이 아니라 그냥 사람이라면 다 그런 거였습니다.
계단에서 피아노 소리가 나자 생긴 일
스웨덴 스톡홀름의 지하철역 이야기도 인상적입니다. 에스컬레이터와 계단이 나란히 있는데도 사람들은 전부 에스컬레이터로만 몰렸습니다. 정부가 계단을 이용해달라는 스티커를 붙이고 안내요원까지 세워봤지만 효과가 없었는데, 계단을 밟을 때마다 피아노 소리가 나도록 장치를 설치하자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이 계단을 설치하자 이전보다 다섯 배 이상의 많은 보행자가 계단을 이용하는 효과를 얻었다.
포스터를 백 장 붙이는 것보다 계단 하나를 다르게 만드는 쪽이 훨씬 효과적이었던 셈입니다. 저는 이 대목을 읽고 집에 있는 분리수거 바구니 위치를 한번 바꿔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00원짜리 동전이 사람을 움직인다
대형마트의 쇼핑카트 보증금도 같은 원리입니다. 카트를 가져갈 때 100원을 넣고, 제자리에 돌려놓으면 그 100원을 다시 가져갈 수 있습니다.
고객이 100원을 포기하고 아무데나 카트를 놓아두면 아르바이트 학생이 100원을 챙기면서 제자리에 가져다 놓는다.
전북의 한 군청에서는 직원들이 사무실 전화를 서로 미루는 문제로 골치를 앓다가, 테이블 중앙에 동전사발을 놓고 전화를 받는 사람이 100원씩 가져가도록 규칙을 정했습니다.
전화벨이 울리기가 무섭게 서로 전화를 받으려고 했다.
몇 달간 순번제도 만들어보고 언성도 높여봤지만 안 되던 일이, 동전 몇 개로 간단히 해결된 겁니다.
죽음의 다리가 생명의 다리가 된 사연
책에서 가장 마음에 남은 사례는 마포대교였습니다. 9년간 한강 다리에서 투신한 사람이 1,090명이었고, 그중 마포대교에서만 188명이었다고 합니다. 서울시와 한 보험사는 다리 난간을 높이거나 CCTV를 다는 대신 다른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다리에 센서를 달아 사람이 지나가면 불이 켜지게 하고, 난간에는 "밥은 먹었니?" 같은 말과 가족·연인의 사진을 넣었습니다. 책은 이 사례를 이렇게 정리합니다.
환경을 바꾸면 사람의 행동은 저절로 바뀐다. 이것이 바로 시스템의 힘이다.
마무리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올해 다짐이 흐지부지된 걸 더 이상 자책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내년 다짐은 '매일 운동하기' 대신 운동화를 현관문 앞에 미리 꺼내놓는 식으로 접근해보려 합니다. 의지를 다그치는 대신 환경을 한 번 손보는 쪽이 훨씬 승률이 높아 보입니다.
이런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매번 다짐하고 매번 포기하는 자신에게 지친 분, 팀원이나 아이에게 "제발 좀 알아서 해줘"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분, 캠페인과 교육을 아무리 해도 조직이 바뀌지 않아 답답한 분이라면 이 책에서 생각보다 구체적인 답을 찾으실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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