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서랍을 정리하다 보면 가끔 마스크 한 장이 툭 떨어집니다. 몇 년 전까지는 그게 없으면 집 밖에 나갈 수 없었는데, 이제는 언제 사 둔 건지도 기억나지 않는 물건이 되어 버렸습니다. 코로나19는 그렇게 우리 일상에서 조용히 빠져나갔습니다. 그런데 정말 다 지나간 걸까요. 저는 최근에 2020년 5월에 나온 책 한 권을 다시 펼쳐 보면서 그때 던졌던 질문들이 지금도 그대로 유효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포스트 코로나 우리는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는 국제경제 기자 임승규, 경제학자 장두석, 부동산 전문가 양석재, 일본연구자 조관자, 의사 김재헌, 국제정치 칼럼니스트 유필립, 교육학자 박남기, 이렇게 일곱 명의 전문가가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0년 봄에 각자의 분야에서 써 내려간 글을 모은 책입니다. 책의 머리말은 1998년 자크 아탈리가 《21세기 사전》에서 던졌던 질문들을 다시 소환합니다. 빈곤은 사라질 것인가, 모두에게 일자리가 주어질 것인가, 서구 선진국이 여전히 세계를 이끌 것인가. 22년이 지나 코로나19 앞에서 다시 같은 질문을 던지게 됐다는 게 저는 묘하게 서글펐습니다.

돈을 아무리 풀어도 공장 대신 주식을 사는 이유
국제경제를 다루는 첫 장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중앙은행들이 쏟아부은 돈이 실제로 어디로 흘러갔는지를 추적합니다. 기업들은 그 돈으로 공장을 짓거나 임금을 올리지 않고 자기 회사 주식을 되사들이는 데 썼습니다.
지난 1982년에만 해도 S&P 500 기업은 이익의 2% 만을 자사주 매입에 썼다. 2018년 말에 이 비율은 59% 로 늘어났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주가가 오르는데도 왠지 경제가 든든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던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돈이 늘어난 건 맞는데, 그 돈이 저와 제 주변 사람들의 일자리나 월급으로 이어지는 통로는 어느 순간부터 막혀 있었던 겁니다.
'오른다'는 세 글자로 요약되는 믿음
부동산을 다룬 장에서는 2020년 당시 대한민국 부동산을 지배하던 패러다임을 이렇게 정리합니다.
결국 대한민국의 부동산에 대한 패러다임은 구구절절한 설명을 모두 잘라내면 ‘오른다’의 세 글자로 요약할 수 있다.
지금 돌아보면 이 책이 나온 뒤로도 집값은 한동안 더 오르다가 결국 꺾였습니다. 저자의 구체적인 전망이 전부 맞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가 짚은 '패러다임' 자체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느낍니다. 위기가 와도 사람들은 집값이 다시 오를 거라는 믿음을 쉽게 버리지 못했습니다.
총과 칼만 없는 전쟁터
국내경제를 다룬 장에서는 자영업자들의 현실을 가감 없이 보여 줍니다.
자영업은 총과 칼만 들지 않았지 전쟁터나 다름없다.
동네 가게들이 하나둘 간판을 바꿔 다는 걸 지켜본 저로서는 이 문장이 과장이 아니라는 걸 압니다. 저자는 손님이 원하는 게 맛과 가격을 넘어선다고, 자신만의 진심을 전하지 못하면 살아남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쉽지 않은 조언이지만 지금도 곱씹을 만합니다.
공포와 혐오에 맞서는 '좋은 바이러스'
사회를 다룬 장에서 가장 마음에 남은 대목은 바이러스라는 단어를 뒤집어 쓴 문장이었습니다.
코로나19 사태는 우리에게 생태계의 공생질서를 이루고 인간의 존엄성을 찾아내라는 자연의 메시지이다.
저자는 사재기나 가짜뉴스처럼 사람들 사이에 퍼지는 나쁜 바이러스에 맞서는 길은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이라고 말합니다. 혐오와 조롱이 넘치는 온라인 공간을 보고 있으면, 이 메시지는 2020년보다 지금 더 필요한 것 같기도 합니다.
각자도생과 연대 사이에서
정치사회를 다룬 장은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방역 모범국으로 떠올랐던 그 봄을 기록합니다. 저자는 위기 앞에서 사람도 나라도 둘 중 하나를 고르게 된다고 말합니다.
위기는 사람을 뭉치게 하지만, 흩어지게도 한다. 위기가 오면 고립을 택할 수 있고, 연대에 동참할 수 있다.
그 뒤로도 세계는 무역분쟁과 갈등을 다시 겪으며 각자도생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래도 저자가 말한 '한 번 성공한 연대의 기억'은 어딘가에 남아 있다고 믿고 싶습니다.
교육의 미래는 오늘이 만든다
마지막 교육 장은 온라인 개학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겪으며 깨달은 것들을 정리합니다. 책은 이렇게 끝맺습니다.
교육의 미래는 오늘의 우리가 만들어 가는 것임을 늘 기억하길 바란다.
저는 이 문장을 교육 이야기로만 읽지 않았습니다. 이 책의 일곱 저자는 각자의 자리에서 똑같은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경제든 부동산이든 사회든, 결국 내일을 만드는 건 지나간 위기가 아니라 오늘 우리가 내리는 선택이라고요.
이런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 2020년 팬데믹 초반을 다시 복기하며 그때의 판단과 지금의 현실을 비교해 보고 싶은 분
- 경제, 부동산, 의료, 교육처럼 서로 다른 분야가 위기 앞에서 어떻게 연결되는지 궁금한 분
- 위기 때마다 반복되는 '각자도생'과 '연대' 사이에서 우리 사회가 어느 쪽으로 가고 있는지 생각해 보고 싶은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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