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평가 시즌이 되면 회사마다 "올해 매출 목표를 달성했습니다"라는 말이 오갑니다. 그런데 가끔은 그 숫자 뒤에서 "우리 회사는 대체 왜 이렇게까지 커진 걸까"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부서는 늘어나고 회의는 많아지는데, 정작 이 모든 게 무엇을 위한 건지는 흐릿해지는 느낌 말입니다. 서울대 경영대학 김병도 교수가 쓴 《경영학 두뇌》를 읽으면서 회사라는 조직이 왜 이런 모습으로 존재하게 됐는지를 꽤 또렷하게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기차 사고 하나가 만든 학문
경영학이라는 학문은 느긋하게 탄생하지 않았습니다. 1841년 미국 매사추세츠에서 열차 시간 계산을 잘못해 두 기차가 충돌하는 사고가 났습니다. 승객과 승무원이 죽고 열일곱 명이 다쳤습니다. 책임을 진 웨스턴 철도 회사는 이 사고를 계기로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회사를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1841년 열차 충돌 사고에서 비롯된 미국의 관리혁명은 미국 기업들의 사업 운영 방식을 완전히 바꿔놓았고, 대기업과 경영학이 미국에서 태동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조금 의아했습니다. 경영학이라고 하면 뭔가 세련된 이론에서 출발했을 거라 짐작했는데, 실제로는 사람이 다치는 사고를 겪고서야 "이대로는 안 된다"는 절박함에서 시작된 학문이었습니다. 지금 회사에서 당연하게 쓰는 보고 체계나 책임 소재 구분 같은 것들도, 원래는 누군가의 실수와 사고가 반복되지 않도록 만들어진 안전장치였다는 걸 생각하면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엔진을 직접 만들까, 사다 쓸까
경제학자 로널드 코스는 27세에 쓴 논문에서 희한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시장에 맡기면 가장 효율적이라고 믿던 시대에, 왜 어떤 일들은 회사가 직접 끌어안고 처리하는 걸까. 그는 거래비용이라는 개념으로 답했습니다. 광고, 협상, 계약서 작성, 검수 같은 데 드는 비용이 시장에서 더 크면 회사가 직접 하는 쪽이 낫다는 겁니다.
어떤 종업원이 한 부서에서 다른 부서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면 이는 두 부서의 상대적 가격이 변화했기 때문이 아니다. 상급 관리자가 그렇게 하도록 명령했기 때문
이 문장을 보고 저는 제 회사 생활을 떠올려 봤습니다. 부서 이동이나 업무 재배치가 생길 때마다 "이게 다 합리적인 이유가 있겠지"라고 넘겼는데, 코스의 설명을 따라가 보면 그 합리성의 뿌리는 시장 가격이 아니라 누군가의 명령이었습니다. 회사라는 조직이 시장과 다르게 돌아간다는 걸 이렇게 단순한 문장으로 짚어낸 게 신기했습니다.
전기톱이라 불리던 남자의 반성문
1981년 제너럴일렉트릭의 최고경영자로 부임한 잭 웰치는 생산성 하위 10퍼센트 직원을 해마다 해고하고 업계 1위가 아닌 사업부는 가차 없이 팔아치웠습니다. 그 때문에 '전기톱'이라는 별명까지 얻었습니다. 그런데 2009년, 바로 그가 신문에 자신이 평생 설파했던 주주가치 극대화를 두고 입장을 바꿨습니다.
주주가치는 세상에서 가장 바보 같은 아이디어다. 주주가치 극대화는 그 자체로 전략이 될 수 없으며 좋은 전략의 결과일 뿐이다. 주주가치보다는 당신의 종업원, 고객, 제품에 신경을 써라.
20년 동안 회사 가치를 수십 배로 키운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는 게 묵직하게 다가왔습니다. 숫자를 밀어붙이는 데 가장 능했던 사람이 결국 "숫자는 결과일 뿐, 목표로 삼으면 안 된다"고 말한 셈입니다. 저도 업무를 할 때 당장 보여줄 성과에 매몰돼서 그 성과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는 잊어버리는 순간이 있는데, 이 반성문을 보니 뜨끔했습니다.
이익은 목표가 아니라는 말
경영학자들 사이에서도 기업의 목표를 두고 입장이 갈립니다. 한쪽은 이익 극대화가 전부라고 말하고 다른 쪽은 기업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피터 드러커는 이 논쟁에서 조금 다른 지점을 짚었습니다.
기업의 목표는 이익 창출이 아니다. 이익은 목표가 아니라 기업 활동의 결과일 뿐
이 문장이 멋있게 들리는 건, 저 역시 일을 하면서 자꾸 결과(숫자, 평가, 승진)를 목표 자리에 갖다 놓는 버릇이 있어서입니다. 드러커의 말대로라면, 일을 제대로 했을 때 자연히 따라오는 게 성과이고 성과 자체를 목표로 삼는 순간 일이 이상하게 뒤틀립니다. 당장의 숫자를 좇느라 정작 그 일을 왜 하는지를 놓치고 있지 않은지, 한 번씩 되물어볼 만한 질문입니다.
인도의 작은 마을과 우유 회사
1961년 네슬레는 인도 펀자브 주 모가 시에 유제품 공장을 세웠습니다. 당시 이 지역은 수리 시설도 부족하고 위생 상태도 나빠 송아지 사망률이 60퍼센트에 달했습니다. 우유를 공급하던 농민도 180명뿐이었습니다. 네슬레는 농민들에게 투명한 지급 조건을 제시하고 격주로 꼬박꼬박 대금을 치렀으며 낙농 교육과 지역 교육시설 개선에도 공장 설립 초기부터 참여했습니다. 지금 모가 공장에 우유를 대는 농민은 11만 명입니다.
기업의 성장과 사회의 발전은 서로 대립하는 관계가 아니다.
경쟁 업체가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며 우유를 가져가려 했을 때도 모가 시 농민들은 네슬레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50년 동안 쌓인 신뢰가 그 정도로 단단했던 겁니다. 책은 이걸 두고 자선이 아니라 투자라고 말합니다. 당장 손해처럼 보이는 결정이 오히려 가장 튼튼한 경쟁력이 됐다는 이야기, 어디서 많이 들어본 패턴이긴 하지만 그만큼 반복해서 확인되는 패턴이기도 합니다.
상인은 비생산적인 직업일까
동양에는 사농공상이라는 순서가 있었고 서양에서도 상업에 종사하는 사람을 천하게 여기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1893년 경제학자 리처드 일리는 이 오래된 편견에 반기를 들었습니다. 농부가 옥수수를 길러 효용을 만든다면, 상인은 그 옥수수를 덜 필요한 곳에서 더 필요한 곳으로 옮겨 효용을 만든다는 겁니다.
농부는 수확한 옥수수를 모두 소비하지 않고 남김으로써 장차 더 많은 옥수수를 생산하고자 한다.
저는 이 대목을 읽으며 요즘 직업을 바라보는 시선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떤 일은 은근히 더 대단해 보이고 어떤 일은 하찮게 취급받는 분위기가 여전히 있지 않습니까. 일리의 논리를 따라가 보면 그 일이 누구에게 어떤 쓸모를 만들어내느냐가 중요하지, 그 일에 붙은 이름값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 책이 다루는 77개의 주제를 한 줄로 요약하면, 회사는 효율을 좇아 이만큼 커졌지만 그 효율이 결국 사람과 사회를 향해야 오래간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거창한 전략 이론보다 이 단순한 사실을 다시 확인하는 게 더 큰 소득이었습니다. 이런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 회사가 돌아가는 원리를 체계적으로 한 번 정리해보고 싶은 분
- 성과 숫자에 쫓기다 보니 일의 목적을 자꾸 놓치는 분
- 경영학을 어렵게만 느꼈는데 쉬운 입구를 찾고 있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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