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되면 회사마다 비슷한 발표를 합니다. "올해도 매출 목표를 달성했습니다." 박수는 치지만 속으로는 궁금해집니다. 그래서 다음은 뭘까요. 숫자는 분명 중요한데, 숫자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무언가가 자꾸 남습니다. 신현암, 이방실 두 저자가 쓴 《사회를 변화시키며 수익을 내는 비즈니스 모델 빅프라핏》을 읽으면서 그 남는 부분에 대한 답을 조금 얻은 기분이었습니다.

이익은 피, 사회공헌은 심장
책은 첫 장에서부터 비유 하나를 던집니다.
기업에 있어 이익은 우리 몸의 혈액과 같다. 피가 돌지 않으면 죽듯이 기업 또한 이익이 나지 않으면 죽는다.
맞는 말입니다. 피가 없으면 사람은 살 수 없습니다. 그런데 "건강하게 사는 것"이 피를 많이 만드는 일 자체는 아니지 않습니까. 피는 몸을 돌리기 위한 수단이고 진짜 목적은 그 피로 무엇을 하느냐에 있습니다. 저자들은 이익도 똑같다고 말합니다. 기업이 살아 있기 위한 조건이지, 기업이 존재하는 이유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체중계 회사가 식당을 차린 사정
일본의 타니타는 체중계를 만드는 회사입니다. 그런데 도쿄 마루노우치에 가면 '타니타 식당'이라는 사원식당 겸 외부 레스토랑이 있습니다. 토요일 오후인데도 자리가 꽉 차 있었다고 책은 전합니다. 체중계 회사가 왜 식당을 차렸을까요. 당시 사장이 머릿속으로 따라갔던 질문의 흐름이 이렇습니다.
우리 회사는 무엇을 하는 회사인가? 체중계를 만드는 회사다. 사람들은 체중을 왜 재는가? 건강을 측정하기 위해서다. 건강의 적은 무엇인가? 비만이다. 비만을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체지방을 잡아야 한다. 체지방을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운동 못지않게 식생활을 관리해야 한다.
체중 측정에서 건강 측정으로, 다시 식생활 관리로 업의 범위를 넓혀가다 보니 식당이 나온 셈입니다. 처음엔 직원들도 별로 찾지 않던 밥집이었는데, 맛과 영양을 같이 잡은 식단으로 바뀌면서 손님이 몰렸고 메뉴 책이 그해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기까지 했습니다. 업을 뭐라고 정의하느냐에 따라 보이는 기회가 완전히 달라진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임금을 두 배로 올린 사장의 계산법
헨리 포드 이야기도 인상적입니다. 1914년 포드는 업계 평균 일당의 두 배가 넘는 돈을 직원들에게 주기로 했습니다. 당장은 손해처럼 보이는 결정인데, 결과는 반대였습니다. 연 370%에 달했던 이직률이 뚝 떨어지면서 작업 노하우가 쌓였고 생산성이 급격히 올라갔습니다. 소프트웨어 회사 SAS의 창업자도 비슷한 말을 남겼습니다.
행복한 젖소가 더 많은 우유를 생산한다
직원을 가축에 비유한 게 좀 거칠게 들리긴 하지만 솔직한 말이기도 합니다. 종업원을 비용으로만 보면 월급은 줄여야 할 항목이 되지만 생산성의 원천으로 보면 투자가 됩니다. 어느 쪽으로 보느냐에 따라 같은 숫자가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갖게 됩니다.
400년을 이어온 상인의 거래 원칙
일본 오미 지역 상인들에게는 '삼보요시'라는 원칙이 있었습니다.
삼보요시는 구매자와 판매자는 물론 사회까지 3자가 모두 만족하는 거래를 뜻한다.
거래라고 하면 보통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 둘만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엔 거래가 일어나는 사회까지 포함됩니다. 이익이 쌓이면 그 돈으로 지역에 학교를 세우고 다리를 놓는 식입니다. 오늘날로 치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인데, 오미 상인들은 이미 400년 전부터 이걸 당연한 거래 조건으로 여겼던 겁니다. 이 정신을 이어받은 이토추 상사는 지금도 160년 넘게 버티고 있습니다.
아프리카에 공짜로 약을 나눠준 제약회사
제약회사 머크의 이야기는 조금 다른 결의 사례입니다. 머크는 서아프리카에서 사람을 실명하게 만드는 회선사상충 치료제 이버멕틴을 개발했습니다. 문제는 그 지역 주민들에게 약을 살 돈이 없었다는 겁니다. 머크는 그냥 공짜로 나눠주기로 했습니다. 1987년부터 2015년까지 20억 명이 넘는 사람이 이 약의 혜택을 봤습니다. 당시 머크를 이끌었던 조지 머크 2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우리 회사가 지지해온 원칙을 종합적으로 결론짓고자 합니다. 우리는 의약품이 환자를 위한 것임을, 그리고 인간을 위한 것임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의약품은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고, 이익 자체는 부수적임을 기억하는 한 이익은 저절로 따라왔습니다. 이러한 점을 명심할수록 이익은 더욱 커졌습니다.
이익을 좇지 않았는데 이익이 더 커졌다는 말이 역설처럼 들리지만 책 전체를 읽고 나면 꽤 일관된 패턴입니다. 눈앞의 손익계산서만 보면 손해인 결정들이, 시야를 조금 넓히면 오히려 더 튼튼한 사업 기반이 됐다는 이야기가 반복해서 나옵니다.
350년 가문을 지킨 건 화려함이 아니라 자제력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은 1397년부터 1743년까지, 거의 350년 동안 피렌체를 실질적으로 지배했습니다. 그 오랜 세월을 버틴 비결로 책이 꼽는 건 안목과 자제력, 두 가지입니다. 가문의 시조인 조반니 디 비치는 죽기 전 후손들에게 이런 유언을 남겼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널 주목하게 만들지 말고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나라. 만약 사람들 앞에 서야 한다면 꼭 필요한 곳에서만 너의 모습을 보여줘라. 대중의 시선에서 멀어지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절대로 대중의 뜻에 거슬리게 행동하지 마라.
후계자 코시모는 이 말을 그대로 따라서 말 대신 당나귀를 타고 다니며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고 합니다. 자선사업과 공공도서관 설립에도 당시 피렌체 연간 소득의 두 배가 넘는 돈을 썼습니다. 성공을 만드는 힘과 성공을 오래 지키는 힘이 다르다는 걸, 메디치 가문은 공격보다 수비로 증명한 셈입니다.
이 책이 소개하는 회사들은 특별히 대단한 기술이나 천재적인 마케팅을 가진 곳이 아닙니다. 신발 파는 회사, 시멘트 파는 회사, 체중계 만드는 회사처럼 지극히 평범한 업종입니다. 다만 이익 그 자체보다 한 단계 위에 있는 질문, "우리는 왜 이 일을 하는가"를 끝까지 따라간 회사들입니다. 이런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 조직에서 숫자 목표 말고 다른 언어로 성과를 설명하고 싶은 분
- 사회공헌을 비용이 아니라 전략으로 바라보고 싶은 분
- 오래가는 조직의 공통점이 뭔지 궁금했던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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