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에서 계란 한 판을 집어 들다가 가격표를 보고 잠깐 멈칫한 적, 다들 있다. 별생각 없이 장을 보다가도 그 숫자 하나에 괜히 마음이 복잡해진다. 요즘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장을 보고 나오면 카트는 가벼운데 지갑만 훌쩍 가벼워진다. 그런 사람이 많다. 연합인포맥스 한컷경제팀이 쓴 『1cm 경제학』에는 2016년 겨울 한국을 덮쳤던 '달걀 파동' 이야기가 실려 있다. 몇 해 지난 이야기인데도 지금 마트 앞 풍경과 겹쳐 읽으면 낯설지가 않다.
교과서가 아니라 마트 앞 이야기
이 책은 원래 기획재정부와 연합인포맥스가 함께 만든 방송 프로그램 「한 컷 경제」를 바탕으로 나왔다.
경제란 교과서 속 이론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겪고 있는 일상이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의 챕터들은 뭉크의 그림값, 허니버터칩 열풍, 계란값 같은 눈앞의 소재로 시작해서 그 뒤에 숨은 경제 원리로 넘어가는 식이다. 이번에 눈에 들어온 건 계란 이야기였다.
계란 한 판이 만원이 되던 날
2016년 겨울, 조류인플루엔자가 전국을 휩쓸면서 계란값이 걷잡을 수 없이 뛰었다.
달걀 한 판이 9천 원에서 1만 원까지 치솟았다.
제과점은 계란을 많이 쓰는 빵 생산을 줄였고 김밥집은 계란을 아예 빼거나 양을 줄였다. 명절을 앞둔 주부들은 값이 그나마 싼 곳을 찾아 마트를 돌았다고 한다. 지금 돌이켜보면 웃픈 풍경인데 그때는 다들 진지했다.
장바구니 앞에서 하는 뺄셈
그런데 이게 단순한 불편함으로 끝나지 않는다.
한 달 생활비는 그대로인데 달걀을 사면 다른 생필품이나 식품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월급이나 생활비가 갑자기 늘어나는 게 아닌 이상, 한 품목의 가격이 오르면 다른 무언가를 줄여야 한다. 이 계산이 매달 반복되면 사람은 지친다. 요즘 장을 보다가 담았던 걸 다시 내려놓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물가를 흔드는 손은 재난만이 아니다
책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계란값은 조류인플루엔자 같은 재난 때문에 올랐지만 물가는 다른 이유로도 오른다.
재난이나 질병 등의 이유로 식품이나 농산물 가격이 뛰는 경우도 있지만 정책 때문에 물가가 오르는 경우도 있다.
책은 미국 사례를 든다. 바이오 연료 정책으로 옥수수를 에탄올 생산에 대량으로 쓰면서 옥수수값이 뛰었고 그 여파로 사료값과 곡물값까지 올랐다. 재난은 눈에 잘 보인다. 정책은 그렇지 않은데 지갑에 미치는 영향은 비슷하다.
가난한 나라부터 먼저 무너진다
책은 여기서 '애그플레이션'이라는 개념을 꺼내며 누가 가장 먼저, 가장 크게 타격을 입는지를 말한다.
애그플레이션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본 것은 역시 빈곤국가다.
소득에서 식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클수록 같은 폭의 가격 인상도 더 아프게 다가온다. 한국에서 계란값 몇천 원 오른 게 뉴스가 됐던 것도 어느 가정에게는 그 몇천 원이 결코 작지 않은 액수였기 때문이다.
돈이 휴지조각이 되는 순간
인플레이션이 통제를 벗어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베네수엘라가 보여준다.
물건 하나를 사려면 뭉칫돈을 주고받아야 하니 돈을 세는 것보다 저울에 다는 편이 편할 정도가 됐다.
정부가 재정 문제를 화폐 발행으로 막으려 하면 결국 화폐 가치 자체가 무너진다. 계란값 몇천 원에 마음 상하는 정도와는 비교할 수 없는 붕괴다. 이 사례를 읽고 나면 지금 겪는 물가 부담이 그나마 관리되는 축에 든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물가가 안 오르는 것도 무섭다
그런데 책은 곧바로 균형을 잡는다. 물가가 오르지 않는 쪽도 안전하지 않다.
디플레이션이 발생할 경우 경제 전 영역에 걸친 파산 이후에야 상황이 궁극적으로 안정될 수 있을 뿐.
경제학자 어빙 피셔의 말을 빌려 책은 물가가 계속 떨어지면 사람들이 돈을 쓰지 않고 쌓아두기만 해서 오히려 경제가 얼어붙는다고 설명한다. 물가가 오르느냐 내리느냐보다 '적당히' 오르느냐가 문제다.
책은 2017년 초 한국이 저성장 속에서도 물가가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 조짐을 보였다고 적었다. 그로부터 시간이 한참 지난 지금도 마트 앞에서 느끼는 감각은 비슷하다. 이번 달 장바구니가 유난히 무겁게 느껴졌다면 그게 단순히 기분 탓인지 통계로 한번 확인해봐도 좋겠다. 이 책은 특히 이런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
- 마트 물가에 유난히 예민해진 사람
- 뉴스에 나오는 '물가상승률' 숫자가 늘 낯선 사람
- 경제 기사를 읽고 싶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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