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국은행이 발표한 2분기 국민소득 잠정치를 보고 조금 낯설었다. 실질 GDP는 전분기보다 0.6%, 1년 전보다는 3.7% 늘었고 명목 GDP는 1년 전보다 26.4%나 늘어 47년 만에 가장 큰 증가폭을 기록했다고 한다. 총저축률도 역대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반도체 수출이 이 모든 걸 이끌었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그런데 이 기사를 읽고 나서 통장을 들여다본 사람 중에 "아, 확실히 살림이 나아졌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인 이가 얼마나 될까. 대부분은 뉴스 속 숫자와 자신의 체감 사이에서 고개를 갸웃거렸을 것이다.
이진우의 『거꾸로 보는 경제학』은 이런 순간에 필요한 책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언론과 이른바 전문가들이 만들어내는 '미디어매크로'—경제를 깊이 공부하지 않은 사람들이 던진 주장이 마치 진리처럼 굳어지는 현상—를 경계하라고 말한다. 통계 하나를 볼 때도 그 뒤에 숨은 맥락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는 점묘법으로 자란다
GDP 성장률이 양수라고 해서 모든 국민의 삶이 골고루 나아지는 건 아니다. 저자는 이를 그림 기법에 비유한다.
경제 성장이라는 것이 실제로 현실에서 구현되는 방식은 우리나라 전체를 같은 색의 물감으로 칠하면서 그 색의 농도가 점점 짙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치 회화에서 점묘법의 방식처럼 옅은 색의 물감으로도 점을 찍고 짙은 색의 물감으로도 점을 찍는 것이다.
3.7%라는 성장률도 결국 무수한 점들의 평균 농도일 뿐이다. 반도체 수출 기업과 그 협력업체들이 짙은 점을 찍는 동안, 반대편 어딘가에는 옅어진 점들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성장률이 플러스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모두가 나아졌다고 말할 수는 없는 이유다.
평균이 숨기는 4명의 사연
평균이라는 숫자는 편리하지만 그 안에 누가 웃고 누가 우는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그중에는 소득이 50퍼센트 증가한 사람도 존재하는데, 이런 상황에서도 평균 소득 증가율이 5.7퍼센트에 그쳤다면 소득이 10퍼센트쯤 감소한 사람이 4명이나 존재한다는 뜻이다.
명목 GDP가 26.4% 늘었다는 숫자도 같은 방식으로 읽어야 한다. 이 증가분이 국민 전체에 균등하게 나눠진 몫이 아니라 특정 산업의 수출 실적이 크게 반영된 합계라면, 평균은 오르는데 정작 그 평균을 이루는 개개인의 살림은 그대로거나 오히려 나빠지는 상황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GDP는 집값이 올라도 웃는다
GDP는 무엇이 왜 늘었는지 따지지 않고 거래된 금액을 그저 더한다.
아파트 값이 비싸지면 아파트를 구매하는 소비자나 그런 아파트를 임대해서 사는 국민들의 삶은 더 팍팍해질 뿐이지만 GDP는 상승하니 경제는 성장한 것으로 표현된다.
집값이 오르든, 맞벌이가 늘어 외식비가 늘든 다 성장으로 기록된다. 반도체 수출이 늘었다는 소식과 내 삶이 나아졌다는 감각 사이에 다리가 하나 끊겨 있다면, 그 다리가 정확히 어디서 끊겼는지를 따져보는 게 순서에 맞다.
'사상 최대'라는 제목에 낚이지 않으려면
저자는 매년 가을 반복되는 '1인당 세금 사상 최대' 기사를 예로 든다.
매년 물가가 조금씩 오르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사상 최대’가 되는 것이 당연할 수밖에 없다.
'47년 만에 최대'라는 표현도 다르지 않다. 명목 금액은 물가와 경제 규모가 커지는 한 시간이 지날수록 불어나기 마련이다.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잡아도 '역대 최대'라는 수식어가 붙을 확률이 높다. '최대'라는 단어보다 그 증가폭이 실질적으로 얼마나 큰지가 중요하다.
숫자 뒤의 숫자, '경제 효과'라는 계산법
성장의 파급력을 조 단위로 환산하는 기사들도 자주 등장한다. 저자는 이런 계산이 대개 한쪽만 부풀린 것이라고 지적한다.
‘○○○의 경제 효과는 ~조 원’이라는 식의 분석이 얼마나 공허한 것인지는 그 점 하나만 생각해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경제를 알아야 하는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는 이런 주장에 현혹되지 않고 사안의 본질을 제대로 바라보기 위해서다.
반도체 수출 호조가 성장을 이끌었다는 설명 뒤에는 대개 그 온기가 다른 산업이나 가계로 얼마나 퍼졌는지 따지는 계산이 뒤따른다. 저자가 지적하듯 이런 파급 효과 계산은 마이너스 요인을 슬쩍 걷어내고 플러스 요인만 부풀리는 경우가 흔하다. 수출이 늘었다는 사실과 그 낙수효과의 크기는 별도로 따져봐야 할 문제다.
양이 아니라 질을 보라는 오래된 제안
책은 마지막으로 스티글리츠 위원회의 제안을 소개한다.
경제 성장의 양이 아니라 질을 측정할 것
성장의 총량보다 가계 소득이 실제로 얼마나 늘었는지를 살펴야 한다. 평균이 아니라 중위 소득—전체 국민을 한 줄로 세웠을 때 정확히 가운데 있는 사람의 소득—을 봐야 한다는 제안이다. 성장률 뉴스를 만날 때마다 이 잣대를 떠올려보는 것만으로도 숫자에 덜 휘둘리게 된다.
마치며
다음에 '역대급 성장'이라는 제목의 뉴스를 만나거든 이렇게 물어보면 좋겠다. 이 숫자는 누구의 몫이 늘었다는 뜻인가, 평균의 뒤에는 무엇이 숨어 있는가, 그리고 이 성장이 실제로 내 살림살이의 질을 바꿔놓았는가. 이 책은 경제학 교과서가 아니라 뉴스를 읽는 태도에 관한 책이다. 이런 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 매달 쏟아지는 경제 뉴스 헤드라인에 자주 마음이 흔들리는 사람
- '역대 최대', '역대 최악' 같은 수식어를 볼 때마다 궁금증이 이는 사람
- 성장률과 내 살림살이 사이의 거리를 스스로 가늠해보고 싶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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