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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경영

『화폐의 몰락』, 자산이 늘었다는데 왜 마음은 불안할까

by summaries 2026. 9.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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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년 사이 우리나라 가구의 평균 자산은 5억 6,600만 원으로 27퍼센트 가까이 늘었습니다. 얼핏 보면 다들 부자가 된 것 같은 숫자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이 다릅니다. 금융자산은 30퍼센트 늘었지만 부동산 같은 실물자산은 26퍼센트 느는 데 그쳤습니다. 자산 구성이 조용히 바뀌고 있습니다. 제임스 리카즈는 『화폐의 몰락』에서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가 자산이 늘었다고 믿을 때, 정말 늘어난 것은 자산일까요, 아니면 돈의 가치가 줄어든 것일까요.

『화폐의 몰락』, 자산이 늘었다는데 왜 마음은 불안할까 표지

돈이란 결국 신뢰다

지폐 자체에는 아무 힘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그 종이가 내일도 같은 구매력을 가질 거라고 믿기 때문에 돈으로 통용됩니다. 저자는 달러 한 장이 왜 가치를 갖는지부터 파고듭니다.

"사실 달러는 돈이고, 돈은 가치이며, 가치는 지속적으로 지켜온 신뢰다."

원화도 마찬가지입니다. 통장에 찍힌 숫자가 늘어난 걸 보고 안심하기 전에 그 숫자를 떠받치는 신뢰가 얼마나 튼튼한지부터 물어봐야 합니다.

신뢰는 한 번 무너지면 되돌릴 수 없다

"통화는 특정 부분에서 신뢰를 상실할 수 있는데, 그러면 다시 회복시킬 방도가 없기 때문에 그 자리에 완전히 새로운 시스템이 세워져야 한다."

저자는 이것을 나무가 타서 재가 되는 과정에 비유합니다. 재는 다시 나무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화폐 신뢰도 한번 무너지면 정책 몇 개로 복구되지 않고 아예 새로운 체제가 들어서야 합니다. 최근 몇 년간 금리와 물가를 둘러싼 소동이 유독 예민하게 느껴졌던 것도 어쩌면 이 되돌릴 수 없는 지점에 대한 본능적인 경계심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금은 투자가 아니라 보험이다

그렇다면 그 신뢰가 흔들릴 때는 어떤 자산이 버텨줄까요. 저자는 금을 다시 불러옵니다.

"바로 이 때문에 금을 진정한 제로리스크 자산이라고 하는 것이다."

주식이나 부동산은 수익을 기대하는 대신 위험을 함께 짊어지는 자산입니다. 반면 금은 애초에 누군가의 약속에 기대지 않기 때문에 그 약속이 깨져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J. P. 모건은 이를 한 문장으로 정리했습니다. "돈은 금이지 다른 어떤 것도 아니다." 저는 금을 일종의 보험으로 읽었습니다. 수익을 노리고 사기보다 다른 자산이 흔들릴 때를 대비해 미리 들어두는 자산입니다.

말없이 금을 사들이는 곳들

정작 이 논리를 가장 부지런히 실천하는 쪽은 각국 중앙은행입니다.

"2002년에서 2012년까지 10년 동안 연간 1,000톤 이상이 순판매에서 순매수로 전환되었으며 총량은 세계 금광 연간 생산량의 3분의 1 이상이다."

중국 역시 2012년과 2013년에 각각 1,000톤가량의 금을 수입한 것으로 추산됩니다. 화폐를 찍어낼 권한은 중앙은행에 있습니다. 그런 기관이 정작 자기 화폐만 믿지 않고 금고에 금을 쌓습니다. 화폐 신뢰가 생각보다 견고하지 않을 수 있다는 신호로 읽힙니다.

자산을 나누는 다섯 가지 방식

그러면 개인은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요.

"고인플레이션, 디플레이션, 사회적 혼란 속에서 전체 포트폴리오 중 20퍼센트가 금, 20퍼센트가 토지, 10퍼센트가 미술품, 20퍼센트가 대체 펀드, 그리고 30퍼센트가 현금이라면 자산 보존상 고위험에 대비하고 적절한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어 최적의 조합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비율을 그대로 따를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한 자산군에 자산을 몰아넣지 않고 성격이 다른 자산으로 나눠 쥐고 있으라는 원칙만큼은 새겨둘 만합니다. 한국 가계의 자산 구조는 여전히 부동산 비중이 높으니 더 그렇습니다.

늘어난 숫자 뒤에 남는 질문

다시 처음 통계로 돌아가 봅니다. 금융자산이 부동산보다 빠르게 늘었다는 건 사람들이 유동성 높은 자산으로 조금씩 옮겨가고 있다는 뜻일 수 있습니다. 화폐가치 하락에 대한 불안이 이미 자산 배분에 반영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금융자산의 상당수는 여전히 원화나 원화 표시 상품에 묶여 있습니다. 신뢰의 대상은 그대로 두고 그릇만 바꿨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폭풍이 오기 전에 할 수 있는 일

책의 시나리오는 하나같이 무겁습니다. 그럼에도 저자는 이렇게 끝맺습니다.

"우리는 무력하지 않다. 중앙은행들의 오만에서 빚어진 필연적 결과에 지금부터라도 대비할 수 있다."

당장 큰돈을 금이나 토지로 옮기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금 내 자산이 어떤 신뢰 위에 세워져 있는지, 그 신뢰가 흔들릴 때 버틸 여지가 있는지 한 번쯤 점검해보라는 권유로 들립니다. 지금 내 자산은 정말 신뢰할 수 있는 그릇에 담겨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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