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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역사

『어떻게 살인자를 변호할 수 있을까?』, 평생 참기만 하던 남자가 끝내 무너진 이유

by summaries 2026. 1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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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는 말 한마디 안 하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폭발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을 겁니다. 다들 "저 사람이 그럴 사람이 아닌데"라고 수습하지만 사실 그런 사람일수록 오랫동안 혼자 참아왔을 가능성이 큽니다. 독일 형법 전문 변호사 페르디난트 폰 쉬라크가 쓴 『어떻게 살인자를 변호할 수 있을까?』는 이런 사람들을 법정에서 가장 가까이 지켜본 사람의 기록입니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 중 하나는, 평생 참기만 하던 한 노인에 관한 것입니다.

어떻게 살인자를 변호할 수 있을까? 표지

이집트에서 한 맹세

의사 프리트헬름 페너는 신혼여행으로 카이로에 갔습니다. 그날 밤 아내 잉그리트는 지난 연애사를 울며 털어놓고는 "나만 바라보고 산다고 맹세해"라고 요구합니다. 페너는 교회에서 이미 한 맹세를 다시 또박또박 반복합니다. "맹세할게!" 그에게는 이것이 가벼운 말이 아니었습니다.

달라지는 집, 변하지 않는 침묵

신혼집에 돌아온 뒤부터 아내는 남편의 음반을 버리고 포크 쓰는 법을 트집 잡고 쓰레기를 안 버린다고 화를 냅니다. 비난은 해가 갈수록 거칠어졌지만 페너는 한 번도 맞서지 않았습니다. 섹스는 오래전에 부부 침대에서 사라졌고 그는 밤마다 혼자 일어나 공상과학소설을 읽었습니다.

약속의 포로

검사는 재판에서 이혼하면 되었을 거 아니냐고 다그쳤습니다. 하지만 변호를 맡은 쉬라크는 그 질문이 핵심을 놓치고 있다고 봤습니다.

페너는 자신이 한 약속의 포로였다. 페너는 잉그리트에게 한 맹세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킬 수 없었다. 이혼은 곧 맹세를 깨는 것과 같았다.

현대인에게 맹세란 그저 하나마나 한 요식행위에 가깝지만 페너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평생 약속을 붙들고 살았고 그 약속 때문에 자기 자신을 지하실에 가둔 사람이었습니다.

72살, 가을 아침에 일어난 일

예순 번째 생일 전날 밤, 페너는 자신이 죽는 날까지 이 집에 갇힌 죄수일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닫고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12년 뒤 어느 가을 아침, 창문을 닫지 않았다고 소리치는 아내의 쇳소리를 들은 순간 그는 정원 도구를 보관해 둔 지하실로 아내를 불렀습니다. 그날 벌어진 일은 여기서 다 옮기지 않겠습니다. 다만 페너는 경찰에 전화를 걸어 자신의 이름과 주소를 또박또박 말했을 뿐,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다고 쉬라크는 적습니다.

처벌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변호사는 법정에서 형벌의 의미를 되물었습니다.

페너가 다시 살인을 하는 일이 있을까? 범행이 부당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 부당함의 무게를 무엇으로 잴 것인가? 이를테면 누가 페너에게 죗값을 물을 것인가? 그를 처벌한다고 해서 정의가 바로 섰다고 믿을 사람이 누구인가?

저는 이 대목에서 법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의 경계를 생각하게 됐습니다. 법은 누가 얼마나 참았는지, 그 참음이 어디서부터 무너졌는지는 재지 못합니다. 그저 결과만 놓고 형량을 매길 뿐입니다.

최후진술

페너는 법정에서 길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아내를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제가 그녀를 죽였습니다. 아직도 그녀를 사랑합니다. 아내에게 약속했었죠, 내 여자는 당신뿐이라고. 내가 죽을 때까지 이는 변하지 않을 겁니다. 약속은 제가 깼습니다. 남은 생애 동안 죄를 안고 살겠습니다.

페너는 3년 형을 받았고 자유 공개 형벌로 복역하며 자신이 기르던 사과를 내다 팔았습니다. 넉 달 뒤 변호사의 사무실에는 사과 한 상자와 "올해는 사과가 좋군요"라는 쪽지가 도착했습니다.

마무리

이 이야기를 읽고 나서 저는 주변에 "참 성격 좋다", "한 번도 화내는 걸 못 봤다"는 말을 듣는 사람들을 다시 떠올려봤습니다. 그 침묵이 정말 평온해서인지, 아니면 어디선가 조용히 쌓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쯤 물어봐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법이 유무죄를 가르는 기준에 대해서는 예전에 재심 변호사 박준영 변호사의 책을 소개하면서도 다룬 적이 있는데, 헷갈리면 무죄입니다라는 글이었습니다. 법과 정의, 참는다는 것의 무게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은 분들께 이 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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