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온라인에서 "에코챔버"라는 말이 자주 눈에 띈다. 나와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끼리만 모여 서로의 의견을 되풀이해 듣다 보니, 어느새 그게 세상 전체의 생각인 줄 착각하게 되는 현상이다. 알고리즘이 내 취향에 맞는 글과 영상만 골라다 주니, 굳이 다른 의견을 찾아 나설 필요도 없어졌다. 편하긴 한데,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든다. 지금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누군가 정리해준 생각을 그냥 받아 삼키고 있는 걸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뜻밖에도 1923년생 일본 노학자의 책에서 발견했다. 도야마 시게히코의 『지적 생활 습관』이다. 95세 넘도록 글을 쓴 이 사람은 SNS도 모르고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평생 붙들고 있던 질문 — 정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걸러내고, 어떻게 내 것으로 만들 것인가 — 은 지금 우리가 에코챔버 앞에서 느끼는 불편함과 같은 자리를 겨누고 있다.

지식은 흉내 내기라는 사실부터 인정하자
책에서 가장 뜨끔했던 대목은 앵무새 이야기였다. 저자는 사가미하라에서 도망친 앵무새가 자기 주소를 술술 말해서 주인을 찾아간 실화를 소개하며 인간이 지식을 얻는 과정도 앵무새가 말을 배우는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반복해서 주입하면 외워지고 그렇게 외워진 것이 지식이 된다. 저자는 이런 지식 습득 방식을 시타시즘, 우리말로 옮기면 앵무새처럼 흉내 내기라고 부른다.
지식이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도 생각할 줄 모르는 앵무새족이다.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조금 불쾌했다. 나는 그래도 이것저것 찾아보고 읽는 사람인데, 앵무새라니.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이 불쾌함이야말로 저자가 노리는 지점이었다. 많이 안다고 믿는 사람일수록 자기가 남의 말을 옮기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어렵다. 에코챔버 안에서 누군가의 의견에 공감을 누르고 그걸 내 말처럼 전달하는 행동도 흉내 내기의 한 형태다. 내가 직접 따져본 결론이 아니라 누가 먼저 정리해놓은 결론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라면, 얼마나 많은 정보를 접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스스로에게 "왜?"라고 묻는 습관
그렇다면 흉내 내기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무엇일까. 저자가 내놓는 답은 놀랍도록 단순하다. 뭔가 걸리는 게 있으면 곧바로 검색하거나 책을 펼치지 말고 일단 스스로에게 왜냐고 물어보라는 것이다.
납득이 가지 않는 것, 이해되지 않는 것, 의문점이 있으면 허심탄회하게 “왜?”, “어째서?”라고 스스로 묻는다. 즉시 책을 펼쳐 조사하는 게 반드시 현명한 방법은 아니다.
이 대목이 요즘 우리에게 특히 와닿는 이유가 있다. 지금은 궁금한 게 생기면 답을 찾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거의 0에 가깝다. 검색창에 치면 몇 초 안에 누군가의 결론이 튀어나온다. 그런데 그 속도가 오히려 스스로 생각할 틈을 없애버린다. 답을 찾는 게 아니라 의문을 품는 시간을 견디는 것, 저자는 그게 독자적인 사고의 시작이라고 본다.
지식에도 소화가 필요하다
저자는 지식과 음식을 나란히 놓고 이야기한다. 음식을 계속 먹으면 몸이 알아서 배부르다는 신호를 보내고 필요한 영양만 취한 뒤 나머지는 배설한다. 지식도 똑같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식을 흡수하는 기억은 음식을 먹는 것과 닮았다. 필요 없거나 소화할 수 없는 것까지도 일단 받아들인다.
정보는 이 소화 과정이 저절로 잘 일어나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피드를 스크롤하는 동안 우리는 계속 새로운 자극을 받아들이기만 하고 소화할 시간을 따로 두지 않는다. 좋아하는 의견만 계속 흡입하다 보면 그게 위장에 그대로 쌓이는 셈인데, 이런 상태는 소화불량과 다를 게 없다. 받아들인 만큼 걸러내고 정리하는 시간이 짝을 이뤄야 한다.
망각도 실력이다
이 소화 과정에서 저자가 특별히 강조하는 것이 망각이다. 흔히 잊어버리는 걸 두려워하지만 저자는 잊어버리는 힘이야말로 정보 과잉 시대에 가장 필요한 능력이라고 말한다.
망각도 나쁜 망각만이 아니라 좋은 망각이 존재한다.
나쁜 망각은 필요한 걸 놓치는 것이지만 좋은 망각은 머리를 가볍게 만들어 새로운 생각이 들어올 자리를 마련해준다. 에코챔버에서는 같은 종류의 정보가 계속 쌓이면서 머릿속이 그 정보로만 채워진다. 이게 함정 중 하나다. 비슷한 자극을 반복해서 받으면 그게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느껴진다. 이럴 때 필요한 건 더 많은 정보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좀 잊어버리는 일이다.
얻은 지식을 곧장 쓰지 않는 여유
더 나아가 저자는 지식을 얻은 즉시 사용하지 말라고 권한다. 지식에도 숙성이 필요하다.
지식을 얻고서 즉각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시간을 두고 변화하기를 기다리면서 좋은 망각을 통해 지식을 해체, 정화한다.
이 부분을 읽으며 떠오른 건 뭔가를 읽자마자 곧바로 남에게 전달하고 싶어지는 요즘의 습성이었다. 뉴스를 보면 바로 공유하고 의견을 접하면 바로 동의나 반박을 붙인다. 하지만 저자는 그 사이에 시간을 끼워 넣으라고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지식은 원래 형태에서 벗어나 내 언어로 다시 조립되고 그때야 그 지식이 내 것이 된다. 급하게 반응하는 대신 하루쯤 묵혀두는 것이 생각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가른다.
메모는 남의 말이 아니라 내 생각을 담는 그릇
저자가 소개하는 영국의 문예평론가 토마스 흄의 메모 습관도 인상적이다. 흄은 늘 엽서 크기의 종이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가 뭔가 떠오르면 그 자리에서 적었다고 한다. 그가 무엇을 적었는지가 중요하다.
다른 사람이 한 말을 메모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머리에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써뒀기 때문에 단순한 메모광의 수준이 아니었다.
회의 중에 남의 말을 받아 적는 메모와 산책하다 떠오른 내 생각을 붙잡아두는 메모는 겉모습은 비슷해도 완전히 다른 행위다. 요즘 즐겨 하는 스크랩이나 캡처, 저장도 사실은 전자에 더 가깝다. 남이 정리해놓은 걸 내 서랍에 옮겨놓는 일이지, 내 생각을 남기는 일이 아니다. 저자가 116권의 노트에 쌓아온 건 남의 결론이 아니라 자기 생각의 기록이었다.
그래서 오늘, 무엇을 해볼 것인가
이 책은 알고리즘도, 에코챔버도 몰랐던 시절에 쓰였다. 그런데 그 시절의 저자가 걱정한 것은 지금 우리가 겪는 것과 같은 문제였다. 정보가 넘쳐날수록 사람은 오히려 생각을 덜 하게 된다는, 얼핏 역설적인 사실 말이다. 다음 중 하나라도 오늘 시도해보면 어떨까.
- 궁금한 게 생기면 검색하기 전에 잠깐 스스로에게 왜냐고 물어보기
- 공감이 가는 글을 봐도 곧바로 공유하지 않고 하루 묵혀두기
- 수첩이든 메모 앱이든, 남의 말이 아니라 내 생각만 적는 칸을 하나 만들어두기
- 일주일에 한 번, 최근 본 정보 중 절반은 의도적으로 흘려보내기
비슷한 의견만 맴도는 온라인 환경이 답답하게 느껴지는 사람, 정보는 많이 접하는데 생각은 늘 남의 결론에서 멈춘다고 느끼는 사람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결국 지적인 삶이란 얼마나 많이 아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받아들인 것을 얼마나 내 것으로 소화해내는가의 문제였다.
'자기계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80년생 김 팀장과 90년생 이 대리가 웃으며 일하는 법』, 오래된 대화 습관이 만드는 조직 갈등 (0) | 2026.09.18 |
|---|---|
| 『고수의 일침』,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한 이야기 (16) | 2025.05.23 |
| 『통역사로 먹고살기』를 통해 보는, 프리랜서 시대 통역사의 진짜 삶 (18) | 2025.05.01 |
| 자기소개가 두려운 당신에게… 『누구를 만나도 당당한 사람의 비밀』 (18) | 2025.04.24 |
| 『100만 클릭을 부르는 글쓰기』, 초보 블로거가 글쓰기로 실패하는 결정적 이유는 이것 때문 (29) | 2025.04.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