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환자들이 서빙하는 식당이라니.
이 한 문장만으로도 뭔가 엇박자가 나는 것 같았다.
실수투성이가 될 것 같고, 불편한 상황이 반복될 것 같고, 누군가는 민망해할 것 같았다.
그런데 반응은 정반대였다.
웃음이 끊이지 않았고, “괜찮아요”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왔고, 치매 환자들은 오랜만에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은 단순한 프로젝트가 아니다.
우리가 잊고 있었던 ‘포용의 정의’를 되묻는 사회 실험이자, 공감과 존중으로 완성된 ‘치매 친화 사회’의 청사진이다.
‘틀림’을 받아들이는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책 제목처럼, 주문을 틀리는 식당이다.
오므라이스를 시켰는데 라멘이 나올 수 있다. 맥주를 주문했는데 사이다가 올 수도 있다.
그런데 아무도 화내지 않는다.
“아, 이게 나왔어요? 그냥 이걸로 먹을게요.”
이런 반응이 훨씬 많다. 그리고 놀랍게도, 실수한 어르신의 얼굴에 생기가 돌아온다.
이곳에서 중요한 건 ‘정확함’이 아니라 ‘관계’다.
우리는 효율과 정확성, 실수를 줄이기 위한 수많은 시스템 속에 살아간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틀리는 사람’은 도태되거나, 보호의 대상이 되거나, 그냥 사라져야 하는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이 요리점은 반대로 말한다.
틀릴 수도 있다는 전제는 곧 ‘인간다움’을 인정하는 일이라고.
‘잘 먹고 잘 살자’는 말의 진짜 의미
이 프로젝트의 리더 미즈노 시로는 요리와 콘텐츠의 경계를 허문 인물이다.
그는 감동적인 프로젝트를 만들려 한 것이 아니라 정말 ‘맛있는 식당’을 만들고 싶었다.
치매 환자가 서빙하든 말든, 음식만큼은 최고여야 한다.
이 말이 그렇게 인상 깊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의미 있는 프로젝트’라는 말 속엔, 어딘가 모르게 기대치 낮추기가 깔려 있다.
“그래도 치매 환자가 하니까 이 정도면 괜찮지”
“어르신이 만든 거니까 그저 그런 맛도 이해하지”
그런데 미즈노는 이걸 단호히 거부한다.
“멋있고 맛있어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또 온다.”
그렇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감동 스토리도 결국 ‘퀄리티’가 받쳐줘야 지속된다.
그래야 “이 프로젝트가 의미 있어서 가는 게 아니라, 맛있어서 또 가는” 진짜 공간이 된다.
사회적 약자를 ‘도와주는’ 방식은 정말 맞을까?
이 책이 가장 반짝이는 지점은 여기다.
치매 환자를 불쌍한 사람, 보호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는다.
‘능동적인 역할의 주체’로 전환시킨다.
요리점 안에서 치매 환자는 주체가 된다.
서빙을 하고, 주문을 받고, 손님에게 웃음을 주고, 자신만의 페이스로 한 공간을 책임진다.
그 안에서 실수는 아주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누군가 물컵을 떨어뜨릴 수도 있다. 영수증을 헷갈릴 수도 있다.
하지만 손님들이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기 때문에 괜찮은 일이 된다.
"괜찮아요"라는 말이 자연스러운 사회
이게 얼마나 혁신적인 구조인지 우리는 곧 알게 된다.
‘틀린 주문’이 만든 건, 치매에 대한 인식 전환
‘치매’라는 말 앞에 보통은 두려움이 따라붙는다.
“나중에 나도 그러면 어쩌지?”
“가족 중에 그런 사람이 생기면…”
“기억을 잃는다는 건 너무 무서워…”
하지만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은 그 두려움을 일상의 언어로 풀어낸다.
책 속에 등장하는 환자들은 각기 다른 성격과 배경을 지녔다.
어떤 이는 유쾌하고, 어떤 이는 조용하고, 어떤 이는 한 번 틀리면 굉장히 당황해한다.
‘치매’라는 단어로 이들을 뭉뚱그릴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된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 쉽게 ‘질병의 이름’으로 사람을 판단해왔다.
그 병에 걸렸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의 존엄을 빼앗았다.
하지만 이 식당 안에선 누구나, 실수하고, 웃고, 눈 맞추고, 때론 ‘서투름’마저 사랑받는다.
실수가 허용되는 공간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이 책을 읽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사회는 실수에 너무 인색하다.
특히 나이든 사람의 실수에는 더 그렇다.
조금이라도 헷갈리거나, 기억이 나지 않으면 “왜 그래요?”라는 눈총이 돌아온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어딘가에서는 서툴다.
단지 그걸 감출 수 있는 위치에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이 책이 그리는 요리점은 단순한 치매 친화 공간이 아니다.
실수가 허용되는 사회, 다름이 ‘괜찮음’으로 받아들여지는 사회의 축소판이다.
그리고 그 사회는 나이든 사람만을 위한 게 아니다.
우리를 위한 거다.
언젠가 우리도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일상생활이 어려운 날이 올 테니까.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책을 덮고 나면 이런 다짐이 생긴다.
“내가 먼저, 틀린 사람에게 웃어줄 수 있어야겠다.”
“내가 먼저, ‘괜찮아요’라고 말해줄 수 있어야겠다.”
우리는 언제나 완벽함을 추구한다.
실수하지 않는 사람, 기억력 좋은 사람, 매끄럽게 말하는 사람, 일을 정확하게 처리하는 사람.
하지만 이 책은 말한다.
완벽함보다 중요한 건, 함께할 수 있는 마음이라고.
그리고 그건 아주 사소한 것부터 시작된다.
오늘 누군가가 카페에서 주문을 틀려도, 배송 기사가 엉뚱한 곳에 물건을 두고 가도, “괜찮아요”라는 말을 꺼낼 수 있다면…
우리는 조금 더 괜찮은 사회를 만들어가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은 읽기 쉬운 책이다.
하지만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시선을 바꾸고 싶은 분, 따뜻한 혁신이 무엇인지 알고 싶은 분, ‘일’의 의미를 새롭게 느끼고 싶은 분에게
이 책은 깊은 울림을 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을 믿는다는 게 어떤 감정인지 다시 배우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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