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단지 네모난 벽과 지붕이 있는 구조물일 뿐일까?
우리가 살아가는 ‘집’이라는 공간은, 생각보다 훨씬 더 깊게 우리의 마음을 건드리고 있다.
『우리가 만약 집을 짓는다면』을 읽고 나면, 단순히 "이쁜 집", "좋은 입지", "넓은 평수"라는 기준으로는 더 이상 만족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 책은 공간이 삶을 어떻게 설계하는가에 대해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중심엔 우리가 흔히 간과했던 ‘공간심리학’이 있다.
우리가 사는 공간은, 결국 우리가 누구인지 말해준다
책에서 저자는 아주 기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지금 당신이 살고 있는 공간은, 당신의 삶을 제대로 담고 있는가?”
이 질문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우리는 주로 ‘가능한 범위 안에서’ 공간을 선택한다. 직장의 위치, 예산, 교육 환경, 편의시설 등.
그러다 보니 내가 원하는 삶보다, 외부 조건에 최적화된 공간에 살게 된다.
하지만 공간심리학의 관점에서 보면, 지금의 공간은 내 무의식을 반영하고, 그 무의식은 다시 공간 속 행동을 반복하게 만든다.
작고 어두운 공간에 오래 살면, 사고가 위축되고, 자존감도 따라 흔들릴 수 있다.
반대로 햇빛이 잘 드는 집, 내가 좋아하는 물건이 놓인 곳에서는 사소한 일에도 여유를 가질 수 있다.
공간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감정의 진폭을 조절하는 환경 장치다.
집을 짓는다는 건 삶의 방식에 대한 선언이다
이 책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저자가 집을 짓기 전 '무엇을 먼저 정했는가'다.
디자인? 위치? 비용?
아니다. 그들이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가 먼저였다.
도시의 바쁜 흐름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아이가 흙을 밟고 자라길 바랐다.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중심이 되는 삶을 원했다.
그렇게 정한 삶의 방식이 집의 방향과 구조, 채광, 바람길까지 바꾸었다.
이는 공간심리학에서 말하는 ‘환경 통제감’과 연결된다.
내가 선택한 공간에서 내가 주도권을 가질 때, 사람은 더 안정되고 만족감을 느낀다.
타인의 기준이 아닌 나의 의도를 반영한 공간이 심리적 회복력을 높이는 것이다.
공간은 감정의 온도를 만든다
우리는 왜 어떤 카페에 가면 말이 많아지고, 어떤 집에 가면 침묵하게 될까?
공간심리학은 이에 대해 말한다.
공간의 배치, 색감, 조도, 소리, 향기 하나까지 우리의 감정 반응을 유도한다.
『우리가 만약 집을 짓는다면』에서도, 집 안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어떤 감정이 자주 떠오르는지 기록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결과, 무심코 배치한 식탁의 위치가 가족 간 대화를 단절시키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좁은 복도는 마음을 급하게 만들고, 책상이 햇빛 반대 방향에 놓이면 집중력이 떨어진다.
심지어 벽에 걸린 액자 하나, 주방 수납장의 동선이 스트레스의 누적에 영향을 미친다.
책은 이런 디테일을 ‘집 안의 정서적 기후’로 설명한다.
가장 나다울 수 있는 공간, 그것이 진짜 집이다
우리는 집에서만큼은 편안해지고 싶다고 말하지만,
정작 집 안에서 ‘나답게’ 행동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 이유는 공간이 나를 배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나만의 루틴을 지킬 수 있는 구조가 없다면, 반복되는 방해 요소에 지치기 마련이다.
혼자 있을 수 있는 틈이 없는 집, 서로를 지나치게 마주보게 되는 구조는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이 책은 집을 지을 때, 모든 가족 구성원이 자기만의 '작은 공간'을 갖도록 설계한다.
작지만 분명한 자기만의 코너, 시간을 보내는 방식이 존중되는 구조.
그것이 바로 ‘공간의 자기결정권’이며,
공간심리학에서 말하는 심리적 독립성의 조건이다.
지금 내 집은, 나를 응원하고 있을까?
이 질문을 던지면, 고개를 끄덕이기보다 잠시 멈칫하게 된다.
우리는 집에 너무 많은 기대를 하면서도, 너무 적은 개입을 해왔다.
하지만 『우리가 만약 집을 짓는다면』은 말한다.
공간은 삶의 일부가 아니라, 삶 그 자체라고.
그래서 우리가 만약 진짜 집을 짓고 싶다면, 마음부터 설계해야 한다.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 무엇을 소중하게 여기는지, 어떤 감정과 함께 하루를 시작하고 싶은지.
그 모든 것이 공간을 통해 형상화될 수 있다.
공간은 결국 마음의 형태다
이 책을 덮고 나면, 괜히 가구 배치를 바꿔보고 싶어진다.
햇빛 드는 자리에 책상을 옮기고, 좋아하는 사진을 거실 벽에 걸고, 식물 하나를 들여놓는다.
아주 사소한 변화가, 내 하루의 감정선을 바꾼다는 걸 느끼기 시작한다.
『우리가 만약 집을 짓는다면』은 단순한 건축 이야기가 아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공간으로 말하는 용기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그 첫 문장은, 우리 마음속에 이미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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