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어제 처리한 업무 중에서 작년에도 똑같은 방식으로 반복했던 일은 몇 가지나 될까요.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전체 일자리의 44퍼센트, 숫자로 따지면 6200만 개를 '틀에 박힌' 업무로 분류합니다. 앤드루 양은 『보통 사람들의 전쟁』에서 바로 이 틀에 박힌 정도가 지금 AI가 어떤 일자리부터 건드리는지를 가장 정확하게 알려주는 기준이라고 말합니다.
화이트칼라도 예외는 없다
자동화라고 하면 흔히 공장 라인이나 트럭 운전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이 구분 자체가 틀렸다고 잘라 말합니다.
"화이트칼라냐, 블루칼라냐 또는 지적 기술이냐, 육체적 기술이냐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실제로 중요한 것은 틀에 박힌 일이냐, 아니냐다."
책에는 방사선 전문의들과 컴퓨터가 종양 판독 대결을 벌인 이야기가 나옵니다. 결과는 컴퓨터의 완승이었습니다. 사람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음영을 잡아내고 수백만 장의 필름을 참고 자료로 삼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딜로이트는 법률 업무의 39퍼센트가 자동화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의사, 변호사, 회계사처럼 오래 수련해야 하는 직업일수록 안전하다는 생각은 적어도 이 책 안에서는 통하지 않습니다.
'전문직'이라는 이름의 반복 훈련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요. 저자는 전문직 수련 과정 자체를 다시 들여다봅니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조금 더 기계에 가까운 사람이 되도록 훈련받고 준비하는 것이다. 하지만 결코 진짜 기계만큼 잘할 수는 없다."
의사도 변호사도 회계사도 여러 해에 걸쳐 같은 절차를 몸에 익히는 훈련을 받습니다. 일관되고 믿음직스럽게, 정해진 방식대로. 그런데 그 방향으로 훈련받을수록 결국 기계와 비슷해지려는 셈이니 진짜 기계가 등장했을 때 밀리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저자는 계약서 조항을 뒤져 비슷한 전례를 찾던 신입 변호사 시절 이야기를 직접 꺼냅니다. 그 대목에서 저도 제가 반복하는 업무 습관을 하나씩 떠올려 봤습니다.
일이 사라지면 사람에게는 무엇이 남을까
책은 여기서 방향을 바꿔 일과 인간성의 관계를 묻습니다.
"인간성과 일 사이에는 음의 상관관계가 존재하며 돈이 연루되어 있다."
부모, 예술가, 교사, 상담사처럼 가장 인간적인 역할일수록 보수는 낮고 변호사나 금융인처럼 인간의 본성을 접어두고 시장 논리에 맞출수록 보수는 높아진다는 겁니다. 씁쓸하지만 부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우리는 정말 일을 사랑하고 있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그 일을 얼마나 좋아하며 하고 있을까요. 갤럽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 노동자 중 자기 일에 몰입한다고 답한 사람은 13퍼센트에 그쳤습니다. 저자는 오스카 와일드의 말을 빌려 옵니다.
"일은 그보다 나은 것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의 도피처다."
일을 미워하면서도 일 없이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릅니다. 자동화 논쟁이 그토록 불안하게 느껴지는 건 어쩌면 이 모순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유 배당, 돈보다 사람이 먼저
저자가 내놓는 해법 중 하나는 보편적 기본소득, 그가 '자유 배당'이라 부르는 제도입니다. 18세부터 64세까지 모든 국민에게 매년 1만2000달러를 지급하자는 것이죠. 이 아이디어 자체는 새롭지 않습니다. 마틴 루서 킹 목사도 1967년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빈곤을 해결하는 방법은 현재 널리 논의되고 있는 수단을 이용해 빈곤을 직접 없애버리는 것입니다. 바로 보장 소득입니다."
저자는 이렇게 정리합니다. "돈은 쉽다. 사람이 어렵다." 제도를 설계하는 일보다 그 제도 안에서 사람들이 존엄을 지키며 살아가게 만드는 일이 훨씬 어렵다는 뜻으로 읽었습니다.
'인간적 자본주의'라는 제안
책은 마지막에 '인간적 자본주의'라는 개념을 제안합니다. 원칙은 세 가지입니다.
"인간이 돈보다 중요하다. 경제 단위는 하나하나의 돈이 아니라 하나하나의 사람이다. 시장은 우리의 공동 목표와 가치에 기여하기 위해 존재한다."
경제학자 사이먼 쿠즈네츠는 일찍이 1934년 GDP 개념을 의회에 소개하면서 이런 경고를 남겼습니다. "경제적 복지는 소득이 사람들 사이에 어떻게 분배되는지 알지 못하는 한 제대로 측정할 수 없습니다." 90년 전의 말이 지금 다시 인용되는 걸 보면, 우리는 아직 이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한 셈입니다.
당신의 일 중 얼마나가 '틀에 박힌' 일인가요
책장을 덮고 나서 제 업무를 다시 나눠봤습니다. 어느 정도는 매번 다른 판단이 필요한 일이었고, 어느 정도는 지난달과 똑같이 처리한 일이었습니다. 후자가 사라진 자리에서 저는 무엇을 하고 싶을까요. 이 질문에 미리 답을 준비해두는 것, 그게 이 책이 저에게 남긴 숙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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