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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역사

『왜 학교는 불행한가』, 초등학생 폭력 피해 2.5배 급증, 정말 아이들 문제일까

by summaries 2026. 9.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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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열 명 중 한 명 이상이 학교폭력을 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2년 전만 해도 스무 명 중 한 명 수준이었다. 이 통계를 처음 접했을 때 머릿속에 떠오른 질문은 "요즘 아이들이 왜 이렇게 됐을까"였다. 그런데 전성은 전 거창고등학교 교장이 2011년에 쓴 『왜 학교는 불행한가』를 다시 펼쳐보니 질문의 방향이 애초에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을 둘러싼 교육이 무엇을 목적으로 삼고 있는지가 처음부터 잘못 설정돼 있었던 건 아닐까 싶어졌다.

아이들은 원래 싸움을 말리라고 배운다

어떤 부모도 자식들이 싸우면 더 세게 싸워서 이기라고 말하지 않는다. 어떤 교사도 학생들이 다투면 경쟁 연습이라며 부추기지 않는다. 그런데도 학교교육 전체의 목표를 "싸움을 말리는 일"로 세워야 한다는 생각까지는 잘 이어지지 않는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어떤 부모도 자녀들끼리 싸울 때 “그래그래 잘한다, 싸워라 싸워, 사회는 냉혹하다. 이기는 놈만 살아남는다. 자꾸 싸워 힘을 길러야지” 하면서 싸움을 독려하지 않는다. 어떤 교사도 학생들이 싸우면 뜯어말리지, 세상은 경쟁이니까 열심히 싸워서 이기는 연습을 하라고 부채질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왜 교육의 목표가 싸움을 말리는 일이라는 생각은 못 하는 걸까.

학교폭력 대책이 매번 상담 인력 확충이나 처벌 강화로만 흐르는 것도 같은 맥락 아닐까. 애초에 교육이 지향할 목표를 갈등을 줄이고 함께 살아가는 법으로 세워두었다면 상담과 처벌은 보조 수단으로 충분했을지 모른다.

경쟁이 만드는 악순환

학교가 왜 이 지점에 이르지 못했는지를 저자는 역사적으로 짚어간다. 학교는 고대부터 통치 계급이 필요한 인재를 길러내는 기관으로 출발했다. 그 핵심 수단은 늘 경쟁이었다. 경쟁이라는 장치는 그 자체로 특정한 심리적 회로를 만들어낸다.

경쟁은 불안→두려움→공격→불안이 악순환되는 사회를 낳는다.
공존은 안정→협력→기쁨→안정이 선순환하는 사회를 낳는다.

이 도식을 지금의 교실에 대입해보면 낯설지 않다. 성적으로, 반 배정으로, 입시로 끊임없이 줄 세워지는 아이들에게 불안은 기본값에 가깝다. 불안한 사람은 자기보다 약한 대상에게서 통제감을 찾으려 한다. 그래서 학교폭력을 몇몇 아이들의 일탈로만 설명하기가 어렵다. 시스템이 불안을 계속 공급하는 한 그 불안은 어디로든 배출구를 찾아간다.

'인재 양성'이라는 신화

저자는 인재 양성이라는 개념을 가장 힘주어 반박한다. 근대 이후 거의 모든 나라가 학교교육의 목적을 인재 양성이라 말해왔지만 그 인재가 정확히 누구를 위한 인재인지는 따로 물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학교교육의 목적이 인재 양성이라고 하는 것은 신화다. 깨어져야 할 신화다. 그건 기능이지 목적이 아니다. 교육의 목적은 인류 평화다.

인재를 기르는 일 자체가 나쁘지야 않을 것이다. 다만 인재 양성이 목적의 자리에 올라서면 학교는 아이들을 서열화하는 기관이 된다. 서열에서 밀려난 아이, 남들과 다른 아이는 존재 자체가 불편한 대상이 되기 쉽다. 목적이 바뀌지 않으면 대책은 늘 증상 치료 수준에 머무른다.

다름은 죄가 아니다

평화를 평등, 자유, 공존으로 풀어내는 대목에서 저자는 '다름'을 대하는 태도를 짚는다.

다름은 다름일 뿐이다. 다름은 선이나 악이 아니다.

학교폭력의 상당수가 '다르다'는 이유에서 시작된다는 건 새삼스러운 이야기가 아니다. 성적이 낮다는 다름, 집안 형편이 다르다는 다름, 성격이나 취향이 다르다는 다름. 이 다름들에 우열을 매기도록 가르치는 순간 학교는 평화가 아닌 다른 무언가를 이미 가르치고 있다. 저자의 논리대로라면 그렇다.

학교만 탓할 수 없다

저자는 학교교육의 한계도 솔직히 인정한다. 충격적인 사건이 터지면 언론과 여론은 늘 학교에 도덕교육 강화를 요구하지만 저자는 이 처방에 동의하지 않는다.

모든 충격적 사건은 사회 전체의 책임이다. 어느 한 분야의 책임이 결코 아니다.

한 사람의 인격은 몇 시간짜리 교과서 수업으로 바뀌지 않는다는 지적은 뼈아프다. 그렇다고 학교에 책임이 없지는 않다. 문제를 도덕 수업 하나로 좁혀버리면 정작 손봐야 할 구조 — 경쟁으로 아이들을 몰아붙이는 사회 전체의 상식 — 는 그대로 남는다.

그래서 지금, 무엇을 바꿔야 할까

이 책이 처음 나온 건 2011년이다. 저자는 그때 이미 이렇게 썼다.

나는 학교교육이 30년 전보다 더 경쟁을 부추기고 있으며, 오히려 더 비인간적이라고 생각한다.

십수 년이 지난 지금 초등학생 폭력 피해율은 두 배 넘게 뛰었다. 이 소식을 접하고 나면 저자의 저 문장이 예언처럼 들린다. 경쟁을 줄이자는 말은 자주 공허하게 들린다. 그런데 저자가 겨냥하는 건 경쟁의 폐지가 아니다. 학교교육이 지향하는 최종 목적을 다시 세우자고 말한다.

학교교육도 교육이다. 따라서 학교교육의 목표도 평화여야 한다.

뽑기 경쟁을 가르치기 경쟁으로, 서열화를 각자의 재능을 최대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자고 저자는 제안한다.

스스로에게 던져볼 질문

이 책을 덮고 나면 질문 하나가 남는다. 우리 반, 우리 학교, 우리 아이가 다니는 교실은 지금 어느 쪽 순환 속에 있을까. 안정→협력→기쁨인지, 불안→두려움→공격인지.

이런 분들이라면 읽어볼 만하다.

  • 학교폭력 대책을 상담과 처벌 이상으로 고민하는 교사와 학부모
  • 경쟁 중심 교육의 대안을 찾는 교육 정책 관계자
  • "아이들이 왜 이렇게 됐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져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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